<colbgcolor=#000><colcolor=#fff> 최석현 崔錫鉉 | |
창씨명 | 야마모토 쇼스케 山本祥資 |
별명 | 독립투사의 흡혈귀 |
출생 | 1893년 8월 17일 |
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 |
사망 | 1956년 4월 9일 |
직업 | 관료, 경찰 |
비고 | 친일파 708인 명단 등재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 등재 친일인명사전 등재 |
1. 개요
일제강점기의 관료, 경찰 출신 친일반민족행위자.당시 일본 제국 경찰을 지내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여 잔혹하게 고문을 자행했고 덕분에 노덕술, 하판락, 김덕기, 김태석, 유승운, 이성근 등과 함께 악질 친일 경찰의 대명사로 자주 거론되기도 한다.
2. 생애
1893년 8월 17일 경상북도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1915년 4월 경상북도 헌병보조원에 임용된 후, 같은 해 6월 영주헌병분대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했으며, 1919년 8월 경찰로 전직해 조선총독부 치하 영주경찰서 순사로 임명되어 근무했다. 이후 그는 고등계 형사로 오랫동안 근무하는 동안 독립운동가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고, 고문하면서 탄압했다.2.1. 친일 행적
1919년 11월 경상북도 영주군, 봉화군 일대에서 부호들을 대상으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정응봉 등 6명을 체포했으며, 같은 해 12월 강원도, 경상북도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박만병을 체포했다. 이러한 공로로 경상북도 경찰부장과 대구지방법원 검사정이 주는 특별공로상금을 받았다.하지만 앞서 말했던 내용들은 이후 그가 저지를 악행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1920년대 초반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고문 수사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다. 1924년 12월 도경부 및 도경부보 시험에 합격한 후, 1925년 3월 순사부장으로 승진해 영주경찰서에서 근무했으며, 같은 해 10월 경부보까지 승진해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경부보로써 대구경찰서 경부보를 겸직했다. 경부보로 근무 중일 당시 1926년 4월부터 5월까지 경상도를 중심으로 해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해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이종흠, 손후익, 김화식, 이재락 등을 체포한 뒤 고문했다. 1927년부터는 대구경찰서, 청도경찰서 경부보를 함께 겸직했다. 1927년 6월 독립운동가 김창숙이 상하이에서 체포당해 국내로 압송되자 경상북도 경찰부 고등경찰과 순사부장 남학봉 등과 함께 부산에서 그를 인계받고 대구경찰서로 압송해 취조했는데, 이때 부하들과 함께 무자비한 고문을 가하는 바람에 결국 김창숙은 이후 영원한 불구가 되고 말았다.
1928년 11월 항일 목적의 동맹휴교를 주도한 대구고등보통학교 학생 이상길, 정소수, 박태식 등 총 20여명을 체포했다. 1929년 1월 경부 직급까지 승진해 상주경찰서 경부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