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압도적인 축구실력에 두려움을 느껴, 1934년 4월에 조선의 축구활동을 통제하는 시행령을 내렸다는 루머. 실제로는 전혀 계획되지도, 실행되지도 않은 상상의 통제령이다.2. 내용
1935년과 1936년 조선축구단인 경성축구단과 보성전문학교가 천황배에서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었는데 2003년 5월 대한축구협회가 발간한 한국축구 100년사를 참고하면 1934년 4월에 일제는 조선에 축구통제령을 내리게 된다는 기록이 있어 축구가 일제로부터 호혜를 받은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축구통제령을 발령했다는 건 오류이다.축구통제령이라는 것은 어떤 총독부 관련 공식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축구 통제령은 실제로 시행된 정책도 아니다. 당시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1935년 6월 동아일보 기사에 조만식[1]을 비롯한 관서체육회 관계자들이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 신문기사 내용은 조만식의 회고인데 자신이 축구통제령 관련 반대운동을 주도했고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요구로 반대각서를 제출했다는 것이다. 축구통제령은 일단 소문의 형태로 조선인들 사이에 나돈 것으로 보인다. 대중에게 알려진 축구통제령의 초안 또한 축구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총독부의 허가로 하는 것이었으므로 설사 알려진 대로 시행되었다고 해도 천황배 축구 출전 여부와는 별 상관없었을 것이다.
간혹 기록 미비와 1935년 이후 조선 축구팀의 천황배 출전이 맞물리는 점을 들어서 의혹 운운하면서 증거를 내놓으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대한 것이니 애초에 의혹 운운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실제 존재하지도 않았던 정책의 세부사항을 증거로 내놓으라니 말이 되나?
그러나 이러한 시행하지도 않았던 축구통제령을 한 것처럼 왜곡하여 일제강점기때 일본팀과 경기를 할 때면 압승을 거두는 일이 많아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고 일제의 탄압에 울분을 토해 조선 총독부는 이것을 빌미삼아 축구통제령을 내려 축구경기를 하는 것을 막았다는 식으로 쓴 후빨러 기사가 있었고 특정 종목을 비하하는 악질 축빠들인 파투충들을 위시한 강성 축구팬들은 축구는 일제에 대항한 민족의 운동이며 그 종목은 일제가 조선을 쉽게 지배 하기 위해 심어 놓은 운동 이라는 식으로 비하 주제로 자주 써먹었을 뿐만 아니라 축구인이 쓴 사설에서도 이와 같은 왜곡 된 주장이 쓰여졌다. 지금도 네이버에 축구통제령을 검색해 보면 그러한 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야구는 이미 축구통제령이 언급되기 2년 전인 1932년에 야구통제령이 내려져, 일본의 모든 성인야구가 금지 되고 학생야구만 개최하도록 제한을 둬 조선야구는 위축되게 된다.
3. 옹호론
그렇다고 완전히 허상으로 보기도 뭣한 것이 갈수록 30년대를 거쳐 40년대를 향하면서 갈수록 엄중해지는 조선내의 시국에도 불구하고 조만식이 당대 조선민중들로부터 거짓말(하지도 않은 반대운동을 했다는)로 규탄받았다거나 총독부로부터 유언비어 유포로 제재(총독부 학무국까지 들먹여 가면서 제출한 적 없는 각서를 제출했다는) 기록도 전혀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동아일보에 대놓고 이런 내용을 실었는데도 말이다. 조만식은 민족주의 계열 지도자이므로 총독부가 그런 거짓말 정도는 넘어가주는 편의를 봐주려고 할 동기도 딱히 없다.[1] 조만식 항목에 있는 약력중에 축구통제령이 바로 이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