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06-17 21:37:32

카메라 출동

파일:카메라출동.png

1. 개요2. 역사3. 타이틀 화면4. 주요 내용5. 방영 목록6. 영향7. 여담8. 참고 자료

1. 개요

1974~2005년까지 방영된 MBC 뉴스데스크의 탐사보도 코너.

2. 역사

1974년 2월 4일에 '카메라 고발'[1]이라는 이름으로 첫 방송을 했는데,[2] 보도국 산하 각 부처에서 내놓는 획일적인 보도자료, 취재 영역의 단순화, 기획 능력의 침체가 염려되던 이 시기에 <카메라 고발>은 MBC 보도의 혁신을 보여주었다. 이 코너가 인기를 끈 건 서민의 편에서 제작되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했고, 스튜디오 밖의 현장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사실성을 강조했기에 시청자들의 반향이 컸기 때문이었다. 1975년부터 '카메라 출동'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 같은 해 10월 한국방송대상 보도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등의 영예를 안았고, 초기 몇 년 동안 사회 비리를 꼬집는 데에 중점을 두다가 1981년부터 이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하며 시청자들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가르쳐 주는 계도적 성격을 더욱 강화시켰다. 1987년 9월 15일에 3,000회까지 돌파할 정도로 장수했으나, 1988년 7월 서울올림픽 중계방송 준비를 위해 제작을 일시 중단했으며 구성원들은 올림픽 방송요원으로 투입되었다.

1989년 들어서도 간헐적으로 만들어지다가 몇몇 부서 간의 갈등으로 폐지설까지 나왔다. 이렇게 되자 취재카메라부 측은 코너의 재개를 촉구하는 한편, 보도국 간부 측은 프로그램의 발전을 위해 '기동취재반' 같은 제작 전담부서를 두고 취재-촬영기자의 영역을 두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이러한 모진 진통을 거쳐 양측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서로 타협한 후, 1990년 4월 30일부터 부활하여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기동취재반'을 신설했다. 2005년 종영된 이후에도 '현장출동'과 '현장M출동', '바로 간다' 등의 유사한 포맷으로 방송된 적이 있다.

3. 타이틀 화면

파일:카메라출동84,85_ 타이틀화면.png

4. 주요 내용

각종 사회고발, 사회계도, 실험방송(주택 화재 실험, 자동차 침수 실험 등), 생활 주위의 미담방송 등이 있으며 1985년 12월 6일에는 2,500회 특집 방송을 방영했고, 1987년에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3,000회 리포트까지 나왔다.

담당 부서는 초기에 보도국 편집부였으나 1974년 11월 '카메라취재부'가 신설되면서 그 부서가 제작을 맡아왔고, 1989년 2월에 '취재카메라부'로 변경되었다. 1980년대 초반 이후 카메라기자가 직접 리포터를 맡아왔으나 재개를 전후한 1990년 3월 '기동취재반'이 생기면서 리포터 역할을 취재기자에게 넘기고, 카메라기자가 한 팀에서 이들의 보조를 맡게 되었다. 1993년 기동취재반이 '기획취재부'로 승격되었다가 1998년 11월에 폐지되어 그 기능은 사회부로 넘어갔고, 2000년 11월에는 뉴스편집1부로 옮겨지기도 했으나 2001년 10월 보도기획부가 생겨 그리로 넘겨졌고, 2003년 12월 그 부서의 해체로 사회2부가 2005년 폐지 시까지 맡았다.

파일:카메라출동85.png
파일:카메라출동84,85.png

5. 방영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카메라 출동/방영 목록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 영향

카메라 출동이 방송된 이후 정부나 관계 기관에서는 카메라 출동 보도를 열심히 확인하고 있고 관련 사실이 나온 이후 시정 조치가 많이 이루어졌다. 이 코너 덕분에 뉴스데스크가 한동안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고발 뉴스의 효시' 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코너의 성공은 KBS 뉴스9의 <현장추적>, SBS 8 뉴스의 <기동취재> 같은 후발주자들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7. 여담

굉장히 오래 한 코너이니만큼 MBC의 웬만한 취재기자, 카메라기자들은 이 코너를 거쳐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는 이상로, 김민호[3], 류종현, 신강균, 김광택, 홍순관, 권오성, 노웅래[4], 최일구, 성장경 등이 있고, 보수 정권 시절 MBC 뉴스의 보수화 관련자였던 김장겸, 문호철, 박용찬이 있었으며 스포츠PD 이도윤도 카메라기자 시절 이 프로에서 영상취재를 맡기도 했다. 특히 김민호는 1985년 이 코너에서 '불량 간장 파동', 남북고향방문단 방북 당시 평양 취재 등의 공적을 세웠고, 이상로는 1983년 난지도 폐수 무단방류 실태, 1985년 자동차 충돌 실험 등 현재도 길이 회자될 보도 아이템을 배출했다. 후술할 1984년 <TV가이드> 176호 기사에서 김민호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관공서에 갈 때 공무원들이 <카메라출동> 취재팀을 금세 알아봤는지 들어설 때부터 괴로웠다고 했으며, 공무원들은 코멘트를 사양하는 일이 많았다는 식으로 전했다. 한 번은 서울 영등포 모 유명 술집의 소방시설이 부실하다는 제보를 받고 촬영하다 불량배들에게 구타당하고 녹화테이프까지 빼앗긴 적도 있었다고 한다.

최일구가 취재한 주요 내용으로는 당산철교 부실시공, 부실 상수도관 점검, 그 외 각종 공사장의 부실시공 현장 고발 등이 있었다.[5] 또한 전직 강원도지사인 최문순도 기자 시절 카메라 출동에 자주 나왔었다. 유명인들 중 아동문학가 이미애도 초등학생 시절이던 1977년 3월 7일 방영분에 나왔는데, 동시/줄글집 <꿈초롱 둘이서>를 내기까지의 과정 등 온갖 사연이 나왔다.

보통 기자들이 보도를 끝낼 때 'MBC 뉴스 ○○○ 입니다'라고 하지만 카메라 출동에서는 '카메라 출동이었습니다'[6] 또는 '카메라 출동입니다'[7]라는 멘트로 끝냈다.[8]

카메라 출동 오프닝에 나왔던 배경음악 중 하나인 미국의 영화사 트라이스타 픽처스의 테마음은 1992년 11월 8일부터 1998년 5월 3일까지(1998년 4월 26일 제외) 사용되었으나 1999년 4월 18일부터 다시 부활하여 1999년 5월 16일 방송분까지 또 썼다. 이후 자체 음악을 쓰다가 2002년 8월 29일부터 2005년까지 또 썼다. #

8. 참고 자료



[1] MBC 뉴스센터에도 1981년부터 1982년에 이와 같은 이름으로 방송되었다. 오프닝은 문서 참고.[2] 뉴스의 현장 시절은 '10초 고발(영상은 1979년 5월 11일 방송분)'이었다.[3] 1991년 MBC프로덕션 창립 당시 파견된 이후 PD로 변신하여 <정보데이트>, <주부경제정보 바로 이것>, <여기서 잠깐>, <TV속의 TV> 등을 연출/제작하며 제작1부 부국장대우 등을 지냈고, 2007년 이후 씨앤앰서울미디어원 보도국장, 씨앤앰 이사 등을 역임하며 <김민호의 사람이야기>도 진행했다.[4] 현 더불어민주당 마포구 갑 국회의원.[5] 그는 어린 시절에 와우 시민아파트에 살았었는데 부실 시공으로 인해서 붕괴된 이후 부실 시공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었다고 한다.[6] 1987년경[7] 1990년대 이후.[8] 근데 1988년 경에는 앞에 나온 평소 멘트로 끝낼 때도 있었고 1990년대 이후에도 가끔씩 이렇게 끝맺음을 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