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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9-01 23:23:40

카시오페아(리그 오브 레전드)/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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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배경2. 허물을 벗고3. 구 설정
3.1. 구 단문 배경 13.2. 구 단문 배경 23.3. 구 장문 배경3.4. 구 허물을 벗고3.5. 리그의 심판

1. 기본 배경

뒤 쿠토 장군의 막내딸로 태어난 카시오페아에겐 녹서스 귀족 가문의 자제로서 특권을 누리는 삶이 약속돼 있었다. 어릴 때부터 두뇌가 명석했고 재치가 번득였던 카시오페아는 언니 카타리나가 아버지에게 훈련을 받으며 성장하는 동안 어머니 소레아나의 뒤를 따랐다.

녹서스의 뒤 쿠토 장군은 슈리마 정복에서 큰 공을 세운 뒤, 가족들을 불러 해안 도시 우르제리스의 총독 곁에서 머물게 했다. 낯선 땅에서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인 카시오페아는 어머니 곁에서 사교술과 권모술수를 배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소레아나가 녹서스에서 살던 때와는 다른 걱정에 괴로워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연 소레아나가 저택에서 쓰러졌다. 누군가 빗에 부식성 독을 묻혀 두었기 때문이었다. 소레아나는 사경을 헤맸지만,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암살자들의 술수를 잘 아는 뒤 쿠토 장군은 아내와 두 딸만 남겨 놓고 하인들을 모두 집 밖으로 내보냈다.

소녀였던 카시오페아는 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회복까지는 수개월이 걸렸지만, 두 사람의 애정은 어느 때보다 깊어졌다.

이후 뒤 쿠토 장군은 카타리나와 함께 제국의 숙원이었던 아이오니아 침공을 준비하러 녹서스로 돌아갔지만, 카시오페아는 계속 우르제리스에 머물렀다. 그런 그녀에게 소레아나는 자신이 수 세기 동안 녹서스를 지배해 온 비밀 결사 '검은 장미단'의 일원이며, 드디어 검은 장미단이 슈리마에도 영향력을 뻗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의 감시에서 벗어난 덕분에 소레아나는 제대로 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지도 아래 카시오페아는 아름답고 지혜로우면서도, 동시에 무정한 여성으로 성장했다. 그녀에게 주변 사람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소모품에 불과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카시오페아는 검은 장미단에 가입하기 위해 어머니를 암살하려고 했던 자들을 제거했다. 일 처리는 신속하고 효율적이었으며, 더할 나위 없이 깔끔했다. 소레아나조차 놀랄 정도였다. 가입 시험을 마친 카시오페아는 검은 장미단이 슈리마에서 그리려는 큰 그림에 관해 알게 됐다. 그리고 가문의 막대한 재산과 현지 용병 시비르의 도움을 받아 깊은 사막과 고대 유적을 수없이 탐험했다.

하지만 수도에서 날아든 소식에 카시오페아는 다급함을 느꼈다. 제리코 스웨인이 보람 다크윌 대장군을 몰아내고, 뒤 쿠토를 비롯한 수많은 귀족 가문이 이를 지지했다는 소식이었다.

소레아나는 남편의 배신에 치를 떨었지만, 검은 장미단원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했다. 그녀는 절박한 심정으로 딸을 보내 과거 슈리마를 대제국으로 만들었던 초월적인 힘을 찾도록 했다. 카시오페아는 닥쳐올 전쟁을 위한 무기를 찾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 과정에서 카시오페아는 예전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오래전 잊힌 신화 속 초월체의 무덤을 발견했다. 자신이 찾아 헤매던 힘이 무덤 안에 잠들어 있다고 확신한 카시오페아는 탐험에 동행한 모든 사람을 죽이고 난 뒤에 힘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안내를 맡았던 시비르가 카시오페아의 칼날에 가장 먼저 쓰러졌다. 그 순간 고대의 묘실을 수호하던 석상이 깨어나 카시오페아의 몸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신비로운 독이 온몸에 퍼진 카시오페아는 비명을 질렀고, 용병들은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가는 그녀를 데리고 우르제리스로 돌아갔다.

카시오페아는 저택 지하실에 틀어박힌 채, 끔찍한 변신의 고통을 감내했다. 그렇게 소레아나 뒤 쿠토의 영리하고 아름다웠던 딸은 어둠 속을 기어 다니며 독을 내뱉고 돌을 유리처럼 손쉽게 부수는 괴물로 변해버렸다.

예전 삶을 잃어버린 슬픔에 카시오페아는 오래도록 울부짖었다. 눈물조차 말라 버렸을 때, 그녀는 절망에서 헤어났다. 언젠가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카시오페아가 발견했던 건 바라던 초월체의 힘이 아닌 죽은 슈리마 신의 마법이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그 힘이 커져 가는 걸 느끼면서, 어머니와 약속했던 대로 검은 장미단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활용하기로 했다.

자신의 힘이 얼마나 커질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지만.

2. 허물을 벗고

파일:허물을 벗고.jpg

카시오페아는 무딘 톱니 모양의 옥상 한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우르제리스의 골목길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해안 도시 우르제리스는 몇 년 전부터 녹서스의 지배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변화를 거부한 채 고대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참으로 슈리마다운 도시였다.

반투명 실크 원피스를 입은 카시오페아는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하는 듯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하늘거리는 원피스 너머로 왠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그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부드러운 그녀의 살갗은 엉덩이께부터 물결무늬의 뱀 껍질로 변해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카시오페아가 있는 옥상 꼭대기까지 퍼져 올라갔다. 그곳은 마치 비밀스러운 요새 같았다. 하지만 그 냄새가 아무리 강한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악취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속의 침에 독이 섞여 들자 혀끝이 따끔거렸다. 카시오페아는 근육질의 꼬리에 힘을 준 후 돌로 만든 조각상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단번에 금이 가며 갈라져 버렸다. 그녀는 바스러진 돌 조각을 사람들이 붐비는 골목길로 거침없이 내던졌다.

갑작스러운 돌 세례에 골목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들짝 놀란 쥐들은 떨어지는 돌을 피해 황급히 달아났다. 사람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돌에 맞을까 얼굴을 가린 채 후미진 곳으로 몰려들기도 했고 고개를 푹 숙이고서 도망치기도 했다. 선술집 안팎으로는 비틀거리며 웅성대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거리의 부랑자들은 서둘러 길모퉁이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이 어둠 속, 저 높은 곳에 포식자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시오페아는 기다란 손톱으로 비늘로 뒤덮인 자신의 살갗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흡사 뱀과 같은 그녀의 모습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한때 그녀는 녹서스 최고의 거물이었다.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그녀에게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시오페아 앞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군대 내 추한 비밀까지 실토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장성들은 내심 지원을 기대하며 그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더 이상 녹서스는 그녀의 손안에 있지 않다. 카시오페아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괴수의 형상으로 변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운명과 마주해야 했다. 이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휴우- 깊이 내쉬는 한숨도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렸다.

사막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 그녀는 지하에 숨어 지냈다. 괴상하게 바뀌어버린 모습에 자기 자신조차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빛도 들지 않는 차갑고 눅눅한 곳에서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역겨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군림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던 옛 시절도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끓어오르는 사냥 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카시오페아는 가족들의 눈을 피해 도시로 나왔다. 모든 위험을 무릅쓴 채.

어둠이 내린 저녁, 떡 벌어진 어깨에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 하나가 선술집을 나서고 있었다. 이미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기가 오른 듯 보였지만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카시오페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의 사냥감이었다. 카시오페아는 이내 병사를 쫓기 시작했다. 요새의 벽과 아치형 지붕을 타고 스르륵 소리 없이 그의 뒤를 밟았다. 어느 순간 병사는 작은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숨어들 곳이라곤 전혀 없는 탁 트인 곳! 모든 것이 완벽했다. 카시오페아는 바로 옆 건물 지붕으로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포식자의 맹렬한 눈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압도했다.

병사가 있는 쪽으로 카시오페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가 뒤를 돌아봤다. 취기가 한껏 올라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나와!" 병사가 소리쳤다.

먹잇감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뜬 카시오페아는 꼬리를 실룩거렸다. 그러고는 두 개로 갈라진 혀를 죽 내밀며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했다. "후우우우."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잔뜩 긴장한 사냥감이 내뿜는 숨소리가 더없이 경쾌하게 느껴졌다.

"얼굴 보고 정식으로 붙자고! 무슨 짐승마냥 뒤에 숨었다가 몰래 들이받으면 재미없어!"

약이 오른 카시오페아는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며 분을 삭였다. 병사가 위를 올려다보자 그녀는 정원 반대편으로 스르르 넘어가 그의 머리 위에 멈춰 섰다. 이번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짐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봐? 그렇지?" 카시오페아가 물었다.

병사는 고개를 홱 돌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었다.

"빨리도 건너갔군."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떨리는 목소리에서 그의 긴장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짐승만도 못한 녀석 같으니." 카시오페아가 받아쳤다.

순간 병사는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눈에 보이는 문마다 돌아다니며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어느 하나 쉬이 열리지 않았다. 대체 누가, 왜 자신을 쫓는 것인지 병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카시오페아는 그런 그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병사는 기어코 칼을 뽑아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휘둘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나와 대적하기 싫은 게로군. 너보다 훨씬 끔찍한 적수도 나한테는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졌어! 알아?"

"비단 적수만이 아니었지. 네가 저지른 그 끔찍한 짓들을 난 모조리 알고 있어.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는 순진한 모습? 그게 네 전부가 아니잖아? 다 알고 있어!" 카시오페아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병사가 몸을 돌리자 카시오페아는 그를 향해 퉤! 하고 고약한 독침을 뱉어냈다. "아아악!" 그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동전만 한 작은 불구멍이 병사의 갑옷을 뚫고 타들어 갔다. 재빠른 공격이 단번에 성공하자 카시오페아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흡족한 나머지 고통의 신음 소리에 박자라도 맞출 기색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병사는 맥없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대체 누구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지?"

"널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 네가 누군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고 있어." 카시오페아가 대답했다.

"내가 뭘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아이들을 죽여서 용의 먹이로 쓴다고? 꽤 돈이 되는 장사라지?"

병사는 바로 옆 건물로 달려가 창틀을 내리찍으며 어떻게든 열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지. 선술집에 있던 세 명의 아가씨, 사멜라, 엘민, 릭스. 이들 모두 어제 강변에서 발견됐어. 하나같이 얼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흉측한 모습으로 말이야."

카시오페아는 이들 대신 복수라도 하듯, 날카로운 발톱으로 병사에게 고통의 심판을 내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결투 준비를 마친 병사가 소리쳤다. "그림자와는 대적할 수가 없지. 어서 나와!"

"좋아." 카시오페아가 대답했다.

스르륵, 그녀는 순식간에 정원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드디어 그녀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병사보다 훨씬 큰 키에 체구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병사는 일순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를 압도한 카시오페아는 병사를 향해 매섭게 눈을 흘겼다.

"으악! 괴…괴물이다!" 병사가 소리쳤다.

"괴물이라... 그보다 더한 말도 들었는데 뭐." 카시오페아가 혼자 중얼거렸다.

순간 카시오페아는 재빨리 왼쪽으로 빠져서 병사의 다리를 자신의 꼬리로 후려쳤다. 그러자 그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날쌔게 꼬리를 들어 올려 병사의 가슴팍을 둘둘 감아 지그시 눌러버렸다. 쿵쾅쿵쾅 그의 심장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자 조금씩 강도를 높였다. '으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세게 눌러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카시오페아는 거기서 멈췄다. 그러고는 슬며시 손에 힘을 풀었다. 병사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몸도 가누지 못한 채 거의 기다시피 칼 쪽으로 향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카시오페아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 병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시오페아가 병사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병사는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 카시오페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 기억난다. 카시오페아! 그런 꼴을 하고 있다니!" 다소 놀랍다는 듯 그가 말했다.

병사는 칼에 의지한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녹서스의 더럽고 추악한 곳들만 돌아다니며 나 같은 취객을 잡아다 본때를 보여주는 거. 이게 네 일인가 보지? 그 위대하신 카시오페아가 이렇게 추락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병사가 비꼬듯 말했다.

순간 기분이 확 상한 카시오페아는 누런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는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쉬익 쉬익 성난 소리를 내뿜었다.

카시오페아는 병사의 두 눈을 향해 강한 빛을 발사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된 듯, 그의 두 눈이 얼어붙었다. 과연 눈길만으로 상대를 압도해버리는 섬뜩한 존재였다. "이야아아아아!" 카시오페아는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속에 있는 모든 분노를 쏟아내는 것 같았다. 괴수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비참한 처지, 실패로 끝나버린 불같은 야망. 그 모든 것이 쓰디쓴 원한으로 사무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녀는 몸부림치듯 울부짖으며 속에 있는 감정들을 모조리 토해냈다.

그렇게 한바탕 퍼붓고 나자 그간의 묵은 감정이 일순간 기쁨으로 승화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적할 수 없었던 카시오페아,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타들어 갈 듯 이글거리는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양손을 꽉 움켜쥔 병사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듯 보였다. 병사의 두 눈은 잿빛으로 굳어져 갔다. 몸도 점점 뻣뻣해졌다. 카시오페아의 저주가 먹혀들기 시작한 것이다. 병사의 온몸은 순식간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끄아아악!" 그의 마지막 절규가 울려 퍼졌다.

카시오페아는 완전히 굳어버린 병사의 곁으로 스르륵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매끈하고 따뜻했던 병사의 피부는 마치 가뭄에 바싹 말라 갈라진 강바닥처럼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매수도 하며 살살 구슬려서 내가 원하는 걸 손에 넣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젠 원하는 게 있으면 그 즉시 내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되었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카시오페아가 말했다.

그녀는 꼬리를 앞으로 홱 잡아당겨 병사의 동상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동상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졌다. 돌무더기 속으로 매캐한 먼지가 흩날리자 카시오페아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다. 한때 녹서스를 장악했던 일인자의 인생은 분명 끝났다. 하지만 그녀의 핏속에는 여전히 무한한 괴력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카시오페아 자신이 그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스르륵 미끄러지듯 그녀는 다시 지붕 위로 올랐다. 다음 상대로 누구를 선택할지, 수많은 후보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보다 더 흥미진진한 대결을 기대하며, 그녀는 다시 녹서스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3. 구 설정

3.1. 구 단문 배경 1

반은 여성, 반은 뱀의 형상을 한 카시오페아는 눈길만으로 죽음을 초래하는 끔찍한 존재입니다. 과거 녹서스 최고 명문가의 막내딸이던 그녀는 뛰어난 미모와 교활함을 이용해 아무리 냉정한 사람의 마음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습니다. 슈리마의 오래된 무덤을 지키던 수호령의 독에 의해 괴물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지만, 그 후에도 언제나처럼 녹서스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 방법이 좀더 독해졌을 뿐.

3.2. 구 단문 배경 2

날 막을 해독제는 없을 걸?
카시오페아는 자신의 사악한 의지대로 상대를 조종하는 치명적인 피조물이다. 녹서스의 명망 높은 뒤 쿠토 가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를 자랑하던 막내딸, 카시오페아는 고대의 힘을 찾아 슈리마 아래에 있는 지하묘실 깊은 곳으로 모험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녀는 소름끼치는 묘실의 수호령에게 물렸고, 몸에 독이 퍼져 독사와도 같은 포식자로 변했다. 카시오페아는 이제 밤의 장막에 숨어 교활하고 날렵하게 움직이며 사악한 시선으로 적들을 석화시킨다.

3.3. 구 장문 배경

녹서스 사람들은 뒤 쿠토 장군처럼 훌륭한 딸들을 둔 축복받은 가문은 없다고 말한다. 뒤 쿠토 가문은 카타리나 이전에는 그리 이름을 떨친 인물은 없었지만, 예로부터 녹서스를 섬겨 온 유서 깊은 집안이었다. 장군의 막내딸 카시오페아는 비록 언니 카타리나처럼 암살자의 기질을 타고나진 못했으나 위엄있는 성격과 타고난 우아함으로 이미 녹서스의 고위층에는 널리 정평이 나 있었다. 카시오페아는 아름다운 만큼이나 교활한 요부였고 언제나 해외 사절단의 품에 꼭 안겨서는 천하의 조심성 깊은 수행원의 입에서조차 간계를 통해 기밀을 빼내 왔다.

녹서스의 야만인 토벌 작전이 생각만큼 진전을 이루지 못하던 어느 날, 카시오페아는 얼마 전 프렐요드 지역에서 온 외교사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 손쉽게 넘어오리라 생각하고는 유혹의 손길을 뻗쳤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의 꽉 다문 입술은 여간해서 열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카시오페아의 끝없는 교태와 아양 섞인 간청에 못 이긴 사절이 마침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기이한 검을 내밀고서 이 검에 앞에 비밀을 지키겠노라고 맹세한다면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밀회가 끝난 카시오페아는 야만인 저항군에 대한 기밀을 품고 곧장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이 정보를 모두 내뱉자마자 온몸에 역겨운 느낌이 퍼졌고 혈관을 헤집는 고통에 몸서리를 쳤다. 다음 순간, 비단 같던 그녀의 피부는 파충류의 비늘처럼 딱딱해졌고, 윤기가 흐르던 머릿결은 뻣뻣한 가죽처럼 굳어버렸으며, 단정하고 곱던 손톱은 그 어떤 것도 찢어버릴 듯한 짐승의 발톱처럼 날카로워졌다. 카시오페아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마구 비명을 질러댔다. 그녀는 의식을 완전히 잃은 채 공포에 질린 하인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고, 먼발치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섬광처럼 터지는 그녀의 안광에 그만 돌처럼 굳어버렸다. 마침내 이 참상이 끝났을 때, 피를 뒤집어쓴 이 사람은 더 이상 녹서스 왕국의 눈부신 보석이 아닌 뱀과 여체가 뒤섞인 흉측한 괴물 그 자체였다. 카시오페아는 이제 다신 예전의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리그 오브 레전드로 향했다. 그녀는 이제 정의의 전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녹서스를 섬기기로 결심한 것이다.

"내 동생이 순수한 한 떨기 꽃처럼 보였었을지 몰라도, 사실 속에는 구렁이가 도사리고 있었던 거지." - 사악한 칼날 카타리나

3.4. 구 허물을 벗고[1]

카시오페아는 무딘 톱니 모양의 옥상 한쪽에 비스듬히 기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녹서스 골목길은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반투명 실크 원피스를 입은 카시오페아는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하는 듯 보였다. 보일 듯 말 듯 하늘거리는 원피스 너머로 왠지 남들과는 조금 다른 그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희고 부드러운 그녀의 살갗은 엉덩이께부터 물결 무늬의 뱀 껍질로 변해 있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카시오페아가 있는 옥상 꼭대기까지 퍼져 올라갔다. 그곳은 마치 비밀스러운 요새 같았다. 하지만 그 냄새가 아무리 강한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내뿜는 악취를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입 속의 침에 독이 섞여 들자 혀 끝이 따끔거렸다. 근육질의 몸을 가볍게 푼 카시오페아는 돌로 만든 조각상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단번에 금이 가며 갈라져 버렸다. 그녀는 바스러진 돌 조각을 거침없이 밑으로 내던졌다. 사람들로 붐비는 녹서스의 골목길이었다.

갑작스러운 돌 세례에 골목길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화들짝 놀란 쥐들은 떨어지는 돌을 피해 황급히 달아났다. 사람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돌에 맞을까 얼굴을 가린 채 후미진 곳으로 몰려들기도 했고 고개를 푹 숙이고서 도망치기도 했다. 선술집 안팎으로는 비틀거리며 웅성대는 군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거리의 부랑자들은 서둘러 길모퉁이 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이 어둠 속, 저 높은 곳에 포식자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시오페아는 기다란 손톱으로 비늘로 뒤덮인 자신의 살갗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흡사 뱀과 같은 그녀의 모습은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카시오페아. 하지만 그녀는 한때 녹서스 최고의 거물이었다. 내키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그녀에게 대적할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카시오페아 앞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숨길 수가 없었다. 군대 내 추한 비밀까지 실토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장성들은 내심 지원을 기대하며 그녀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런 그녀는 어디에도 없다. 더 이상 녹서스는 그녀의 손안에 있지 않다. 괴수의 형상으로 변하고 나서부터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운명과 마주해야 했다. 이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휴우- 깊이 내쉬는 한숨도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렸다.

슈리마에서 돌아오고 난 이후 그녀는 지하에 숨어 지냈다. 괴상하게 바뀌어버린 모습에 자기 자신조차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빛도 들지 않는 차갑고 눅눅한 곳에서의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습이 역겨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군림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던 옛 시절도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러던 어느 날, 끓어오르는 사냥 본능을 주체하지 못한 카시오페아는 가족들의 눈을 피해 도시로 나왔다. 모든 위험을 무릅쓴 채.

어둠이 내린 저녁, 떡 벌어진 어깨에 가죽 갑옷을 입은 병사 하나가 선술집을 나서고 있었다. 이미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취기가 오른 듯 보였지만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었다. 카시오페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그녀의 사냥감이었다. 카시오페아는 이내 병사를 쫓기 시작했다. 요새의 벽과 아치형 지붕을 타고 스르륵 스스륵 소리 없이 그의 뒤를 밟았다. 어느 순간 병사는 작은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숨어들 곳이라곤 전혀 없는 탁 트인 곳! 모든 것이 완벽했다. 카시오페아는 바로 옆 건물 지붕으로 미끄러지듯 올라갔다. 포식자의 맹렬한 눈빛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압도했다.
병사가 있는 쪽으로 카시오페아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가 뒤를 돌아봤다. 취기가 한껏 올라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빨리 나와!” 병사가 소리쳤다.

먹잇감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뜬 카시오페아는 꼬리를 실룩거렸다. 그러고는 두 개로 갈라진 혀를 죽 내밀며 시원한 밤공기를 만끽했다. “후우우우.”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잔뜩 긴장한 사냥감이 내뿜는 숨소리가 더 없이 경쾌하게 느껴졌다.

“얼굴 보고 정식으로 붙자고! 무슨 짐승마냥 뒤에 숨었다가 몰래 들이받으면 재미 없어!”

약이 오른 카시오페아는 쉬익 쉬익 소리를 내며 분을 삭였다. 병사가 위를 올려다보자 그녀는 정원 반대편으로 스르르 넘어가 그의 머리 위에 멈춰 섰다. 이번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짐승보다 낫다고 생각하나 봐? 그렇지?” 카시오페아가 물었다.

병사는 고개를 홱 돌리며 눈동자를 굴렸다. 어디서 들려오는 목소리인지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었다.

“빨리도 건너갔군.”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에서 그의 긴장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짐승만도 못한 녀석 같으니!” 카시오페아가 받아 쳤다.

순간 병사는 뭔가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눈에 보이는 문마다 돌아다니며 주먹으로 내리쳤지만 어느 하나 쉬이 열리지 않았다. 대체 누가, 왜 자신을 쫓는 것인지 병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카시오페아는 그런 그의 마음을 훤히 꿰뚫고 있었다.

병사는 기어코 칼을 뽑아 달려들었다. 하지만 어디로 휘둘러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나와 대적하기 싫은 게로군. 너보다 훨씬 끔찍한 적수도 나한테는 맥을 못 추고 나가떨어졌어! 알아?”

“비단 적수만이 아니었지. 네가 저지른 그 끔찍한 짓들을 난 모조리 알고 있어.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는 순진한 모습? 그게 네 전부가 아니잖아? 다 알고 있어!” 카시오페아가 악에 받친 듯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병사가 몸을 돌리자 카시오페아는 그를 향해 퉤! 하고 고약한 독침을 뱉어냈다. “아아악!” 그는 고통 속에 몸부림쳤다. 동전만 한 작은 불 구멍이 병사의 갑옷을 뚫고 타들어갔다. 재빠른 공격이 단번에 성공하자 카시오페아는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너무나 흡족한 나머지 고통의 신음 소리에 박자라도 맞출 기색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병사는 맥없이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대체 누구냐? 나한테 왜 이러는 거냐?”
“널 계속 지켜보고 있었지. 네가 누군지,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다 알고 있어.” 카시오페아가 대답했다.
“내가 뭘 하든 너랑 무슨 상관인데!”
“아이들을 죽여서 용의 먹이로 쓴다고? 꽤 돈이 되는 장사라지?”

병사는 바로 옆 건물로 달려가 창틀을 내리찍으며 어떻게든 열어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지. 선술집에 있던 세 명의 아가씨, 사멜라, 엘민, 릭스. 이들 모두 어제 강변에서 발견됐어. 하나같이 얼굴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흉측한 모습으로 말이야.”

카시오페아는 이들 대신 복수라도 해주듯, 날카로운 발톱으로 병사에게 고통의 심판을 내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며 묘한 쾌감을 느꼈다.

결투 준비를 마친 병사가 소리쳤다. “그림자와는 대적할 수가 없지. 어서 나와!”
“좋아.” 카시오페아가 대답했다.

스스륵, 그녀는 순식간에 정원 안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드디어 그녀의 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병사보다 훨씬 큰 키에 체구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병사는 일순간 죽을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를 압도한 카시오페아는 병사를 향해 매섭게 눈을 흘겼다.

“으악! 괴……괴물이다!” 병사가 소리쳤다.
“괴물이라...... 그보다 더한 말도 들었는데 뭐.” 카시오페아가 혼자 중얼거렸다.

순간 카시오페아는 재빨리 왼쪽으로 빠져서 병사의 다리를 자신의 꼬리로 후려쳤다. 그러자 그는 맥없이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날쌔게 꼬리를 들어올려 병사의 가슴팍을 둘둘 감아 지긋이 눌러버렸다. 쿵쾅쿵쾅 그의 심장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자 조금씩 강도를 높였다. ‘으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 세게 눌러 완전히 없애버리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지만 카시오페아는 거기서 멈췄다. 그러고는 슬며시 손에 힘을 풀었다. 병사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몸도 가누지 못한 채 거의 기다시피 칼 쪽으로 향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카시오페아는 그저 가소롭다는 듯 병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카시오페아가 병사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녀와 시선이 마주친 병사는 뭔가 기억이 났다는 듯 카시오페아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래… 기억 난다. 카시오페아! 그런 꼴을 하고 있다니!” 다소 놀랍다는 듯 그가 말했다.
병사는 칼에 의지한 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녹서스의 더럽고 추악한 곳들만 돌아다니며 나 같은 취객을 잡아다 본때를 보여주는 거. 이게 네 일인가 보지? 그 위대하신 카시오페아가 이렇게 추락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안 그래?” 병사가 비꼬듯 말했다.

순간 기분이 확 상한 카시오페아는 누런 액체가 뚝뚝 흘러내리는 송곳니를 드러내 보이며 쉬익 쉬익 성난 소리를 내뿜었다.
카시오페아는 병사의 두 눈을 향해 강한 빛을 발사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된 듯, 그의 두 눈이 얼어붙었다. 과연 눈길만으로 상대를 압도해버리는 섬뜩한 존재였다. “이야아아아아!” 카시오페아는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속에 있는 모든 분노를 쏟아내는 것 같았다. 괴수처럼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 일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비참한 처지, 실패로 끝나버린 불 같은 야망. 그 모든 것이 쓰디쓴 원한으로 사무쳐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녀는 몸부림치듯 울부짖으며 속에 있는 감정들을 모조리 토해냈다.

그렇게 한바탕 퍼붓고 나자 그간의 묵은 감정이 일순간 기쁨으로 승화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적할 수 없었던 카시오페아, 예전의 자신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두 눈에서 타 들어갈 듯 이글거리는 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양손을 꽉 움켜쥔 병사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듯 보였다. 병사의 두 눈은 잿빛으로 굳어져 갔다. 몸도 점점 뻣뻣해졌다. 카시오페아의 저주가 먹혀 들기 시작한 것이다. 병사의 온몸은 순식간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렸다. “끄아아악!” 그의 마지막 절규가 울려 퍼졌다.

카시오페아는 완전히 굳어버린 병사의 곁으로 스르륵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매끈하고 따뜻했던 병사의 피부는 마치 가뭄에 바싹 말라 갈라진 강바닥처럼 처참하게 변해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을 조종하고 매수도 하며 살살 구슬려서 내가 원하는 걸 손에 넣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이젠 원하는 게 있으면 그 즉시 내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되었어!”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력해진 자신의 힘을 과시하듯 카시오페아가 말했다.
그녀는 꼬리를 앞으로 홱 잡아당겨 병사의 동상을 바닥에 내리쳤다. 그러자 동상은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이 부서졌다. 돌무더기 속으로 매캐한 먼지가 흩날리자 카시오페아의 얼굴에 승리의 미소가 번졌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그녀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그렇다. 한때 녹서스를 장악했던 일인자의 인생은 분명 끝났다. 하지만 그녀의 피 속에는 여전히 무한한 괴력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카시오페아 자신이 그것을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스르륵 미끄러지듯 그녀는 다시 지붕 위로 올랐다. 다음 상대로 누구를 선택할지, 수많은 후보가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오늘보다 더 흥미진진한 대결을 기대하며, 그녀는 다시 녹서스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3.5. 리그의 심판

원문 링크

후보: 카시오페아
날짜: CLE 20년 12월 10일

관찰

카시오페아가 화려한 복도를 따라 서늘할 정도로 우아한 기품을 뽐내며 미끄러져 들어온다. 텅 빈 대리석 복도에 비늘이 스치는 소리가 메아리친다. 우아한 곡선과 당당한 자태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뱀 모양의 하체가 소름 끼치게 혐오스럽다. 코브라 모양의 관을 쓴 아름다운 얼굴엔 오싹한 결의가 흐르고, 뱀 형상의 꼬리는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기어간다.

카시오페아는 양옆에 표범이 새겨진 웅장한 한 쌍의 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선다. 문 위엔 "진정한 적은 그대 안에 있나니."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 글을 읽는 두 눈이 못마땅한 듯 가늘게 찌푸려진다.

카시오페아가 맹수의 발톱 같은 손가락을 문쪽으로 쭉 뻗는다. 손가락 끝이 닿자마자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칠흑같이 어두운 실내가 드러난다. 잠시 주저하듯 어둠 속을 살펴보던 카시오페아는 자세를 꼿꼿이 펴더니 안쪽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간다.

회고

어떻게 된 일인지, 예전에 살던 녹서스 저택의 방 안에 돌아와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 쳐진 아름다운 커튼이 엿보는 자들의 시선을 막아줬다. 커튼의 레이스 틈으로, 누가 보아도 한눈에 알아볼 아버지 마커스 뒤 쿠토 장군이 보였다. 카시오페아는 위엄 어린 군복부터 군인다운 당당한 자세까지, 존경해 마지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아프게 그리운 심정으로 응시했다.

아버지가 앞으로 걸어오며 둘 사이를 막고 있는 커튼 쪽으로 손을 뻗자, 잠시 겁에 질려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매번 가족에게 자기 모습을 보여줘야 할 때면 언제나 불안해서 속이 뒤집힐 지경이 되는 걸 어쩔 수가 없었다.

"절 보지 마세요!" 카시오페아가 비통하게 외쳤다.

장군이 그 자리에 우뚝 멈췄다. 하지만 이내, 애써 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넌 내 딸이야, 카시오페아. 네가 얼마나 예쁜데."

"거짓말!" 카시오페아가 돌아서면서 뱀처럼 쉭쉭대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그래도 소용없이, 커튼이 스치며 아버지가 다가오는 소리가 다 들렸다.

"우리 딸, 아빨 보렴." 장군의 간청하는 말에, 카시오페아는 마지못해 따르며 무시무시한 갈퀴처럼 변해버린 손을 들어 올려 눈물을 훔쳐냈다. 하지만 대답을 이을 순 없었다.

"카시오페아," 장군이 한 걸음 더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내가 소환을 받았단다. 위험한 임무지만 거절할 수가 없어."

"그럼 언닐 데려가세요. 아빠를 지켜 드릴 거에요." 카시오페아가 흐느껴 울며 말했다.

하지만 마커스는 고개를 저었다. "카타리나는 돌아올 수 없단다. 아이오니아와의 문제도 아직 해결 안 났고, 리그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고 올 수가 없어요."

"아빠가 돌아오시지 못하면 전 정말 혼자가 되고 말아요." 그녀가 애원했다.

장군이 손을 뻗어 뺨을 어루만지려 했지만, 딸은 움찔하고 몸을 빼더니 다시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자 장군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넌 뒤 쿠토 가의 딸이다, 카시오페아. 네가 충성을 다 하는 조국 녹서스는 국민을 절대 저버리지 않아. 혼자가 될 일은 절대 없다." 그러더니 장군이 잠시 말을 멈췄다. "언젠가는 너도 네가 져야 할 의무를 다시 기억하게 될게다."

그리곤 뒤 쿠토 장군이 카시오페아의 손을 잡더니, 밀랍으로 봉인한 편지 하나를 조금 구겨질 정도로 손바닥에 꼭 쥐여주며 말을 이었다. "만약 내가 돌아오지 못하거든, 이 편지가 너와 카타리나가 앞으로 갈 길을 일러줄 게다, 카시오페아."

아버지가 떠나려고 등을 돌리는 소리에 카시오페아는 다시 겁을 집어먹었다. 급히 몸을 돌려봤지만, 아버지는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녀는 손에 쥐어진 편지를 자세히 살펴봤다. 밀랍 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인장이 찍혀 있었는데, 누가 벌써 내용을 확인한 듯 봉인이 깨져 있었다. 카시오페아가 편지를 펼쳐 읽었다.

핏빛처럼 붉은색 잉크로 쓴 필체는 이렇게 지시하고 있었다. "상아 지구 초월의 길. 오후 5시." 그 아래엔 흑장미 그림이 찍혀 있었다.

문득 시계탑의 종소리가 뎅뎅 울리더니 소란스런 소리가 이어졌다. 곧 집안이 온통 정신없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 두런두런 속삭이는 소리들에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 이윽고 누군가 주저하듯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지 안 봐도 뻔했다.

"들어와!" 카시오페아는 이미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누가 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버럭 명령했다. 활짝 열린 문 뒤로 아버지의 경호원 하나가 보였다. 그가 커튼 너머에 있는 그녀의 그림자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천천히 방 안으로 발길을 옮겼다. 두려움과 수치심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카시오페아 아가씨,"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부친께서 방금…"

카시오페아가 남자의 말을 끊었다. "변명 따윈 필요 없어, 바보 같은 놈! 어떻게 된 건지만 말해!"

"시장엘 갔는데," 남자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부친께서 글쎄 돌연 사라지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림자처럼 붙어 있으라고 했잖아, 잊었어?" 카시오페아가 남자를 조롱하면서 둘 사이를 막고 있는 커튼 쪽으로 다가왔다. 군인은 면목이 없어 시선을 떨구곤 아무 대답도 하질 못했다. 카시오페아는 드리워진 커튼에 예리한 발톱 끝을 꽂더니 단번에 찢고, 흉물스런 몸뚱어리를 그대로 드러내며 명령했다. "대답해, 이 멍청아!"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치는 경호원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왜 그래?" 카시오페아가 짐짓 놀란 척하면서, 무시무시한 손을 놀리듯 남자의 얼굴로 뻗었다. "내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봐?"

그녀는 예리한 손톱으로 남자의 목을 단단히 거머쥐며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의 몸뚱이를 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순간,

유리가 깨진 회중시계가 놈의 주머니에서 툭 떨어졌다. 고장 나며 멈춘 시계바늘은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희가 찾아낸 건 이게 전붑니다." 목이 꽉 졸린 채 남자가 겨우 대답했다.

카시오페아가 돌로 바꿔버리는 시선으로 뚫어지게 응시하자 남자의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며 부르르 떨렸다. 그런데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렸는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눈에서는 두려운 기색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로소 깨달음이 전율처럼 카시오페아의 기다란 뱀 몸통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 협잡꾼," 카시오페아가 한 마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독액이 뚝뚝 배어 나왔다. "고작 네놈들의 구역질 나는 호기심이나 채우자고 감히 아버지를 잃던 그 순간으로 되돌려놔?"

이 말을 듣던 경호원의 표정도 그 눈빛만큼이나 딱딱하게 변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뭔가, 카시오페아?" 남자가 물었다.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어," 카시오페아가 내뱉듯 대답했다. "너희 중 누군가는 뭔가 아는 게 있을 테지. 난 복수를 원해."

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속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떤가?"

카시오페아가 남자의 두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무표정하게 내뱉었다. "죽어버려." 그러자 남자의 형체가 붙든 손아귀 속에서 스르르 사라지더니 사방에 어둠만이 남았다. 그리곤 리그로 향하는 문이 활짝 열렸다.


[1] 업데이트되기 전의 단편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