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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7 20:11:15

커튼 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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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하면 안 돼요. 선역과 악역이 포옹하면 안 된다고요. 그때 메디슨 스퀘어 가든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이에요.
스톤 콜드 스티브 오스틴
그들이 서로 얼마나 위하는지는 잘 알아요. 하지만 그런 큰 무대에서 그런 식으로 구는 건 안 되는 거죠.
제이크 로버츠

미국 시간 1996년 5월 19일에 WWF 경기 중 일어난 해프닝. 사건의 장소가 매디슨 스퀘어 가든이었기 때문에 '매디슨 스퀘어 가든 사건'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 당시 WWF의 메인이벤터 였던 숀 마이클스, 케빈 내시, 스캇 홀, 트리플 H 4명은 백스테이지 내에서 사조직 클리크를 결성해 그들끼리 뭉쳐다녔는데, 백스테이지의 권력을 활용해 경쟁자들을 묻어버리고 이기적으로 굴며 여러 사건을 일으키는 등, 온갖 패악질을 일삼았다. 지금은 WWE의 2인자가 된 트리플H가 회사 차원에서 꾸준히 클리크 시절을 포장하고 있고, 한국의 레슬링 팬덤도 상당수가 90-00년대 DX와 숀 마이클스를 보며 자라온 세대인지라 지금 '악동' 정도로 미화가 된 것이지, 실제로는 다른 선수들에겐 공공의 적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1]

이들의 멤버인 케빈 내시와 스캇 홀이 WCW의 거액 스카웃 제의를 받아 WCW 이적을 확정하고 5월달에 WWF를 떠날 예정이었다. 당시 스토리 라인상 케빈 내시와 스캇 홀은 디젤 & 레이저 라몬이라는 링 네임을 쓰면서 숀 마이클스 & 트리플 H와 대립을 하고 있었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리는 경기 당일날 태그팀 철장 경기에서 패하는 선수가 WWF를 떠난다는 조항을 걸고 경기를 치렀다.

경기는 각본대로 디젤 & 레이저 라몬이 패했고 그들이 WWF에서 해고되는 것으로 결정났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 4명이 경기가 끝남과 동시에 서로 얼싸안고 전송을 했다는 것.

카메라와 대중의 눈이 없는 백스테이지에서는 그래도 되지만, 카메라와 많은 관중들의 눈이 집중된 링 위에서 언제든지 치고받아야하는 역할 연기가 필수인 프로레슬링의 룰을 공개석상에서 깨버린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됐다.[2]

한 줄로 요약하자면 미국판 프로레슬링은 쇼다 사건이다.

이를 본 빈스 맥마흔은 크게 분노했고, 이들에게 징계를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졌지만 트리플 H의 인터뷰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실 클리크는 빈스에게 경기가 끝나면 잠깐 캐릭터를 벗어도 좋다는 사전 허락을 받았지만 사건이 터지자 레슬링 원로들이 크게 분노했고 여기에 놀란 빈스가 원로들의 분노를 잠재워 보려고 이들을 처벌하기로 결정한 거라고 한다.

다만 문제가 좀 있었는데 클리크 멤버 네 명 중 둘은 경쟁 회사인 WCW로 가버려서 WWF 입장에서는 건드릴 수가 없었으며, 한 명은 당시 챔피언이자 최고 인기 선수인데다 가뜩이나 여러 대표 선수들을 WCW에 빼앗기는 와중에 숀 마이클스까지 섣불리 건드렸다가 괜히 숀 마이클스까지 WCW가 채간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트리플 H가 완전히 독박을 썼으며 처벌로 트리플 H는 상당히 굴욕적인 각본을 수행해야 했다. 돼지 똥통에 빠진다던가... 그렇게 트리플 H가 1년 동안 징계를 받던 중 바짝 치고 나간 선수가 바로 스티브 오스틴.[3]

그러나, 빈스는 예상과는 달리 트리플 H가 순순히 징계를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동업자 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했다.[4] 그래서 처벌이 끝나고 푸쉬를 받았을 때 역할을 잘 해준 덕분에 지금의 사위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카더라. 물론 허락맡고 했다가 봉변맞은 트리플 H는 조금 억울하겠지만.[5]

사실 커튼 콜 사건 자체는 백스테이지 내에서나 큰 일이었지, 일반인들에게는 오랫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이다. 커튼 콜 사건이 유명해진 것은 WWE가 제작한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그 당시 일이 마치 업계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꾼 '대단히 혁명적인 (revolutionary)' 사건처럼 재조명되었기 때문인데, 실제로는 당시 MSG 하우스쇼를 관람했던 관객들이나 하드코어 중의 하드코어인 극소수를 제외하고는커튼 콜 사건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화제가 된 적도 없었다. #

커튼 콜 사건을 중요한 이정표로 보는 사람들은 만약 커튼 콜이 없었다면 nWo가 결성되는 일도, 프로레슬링의 케이페이브가 깨지는 일도, 오스틴이 전설의 3:16 프로모를 뽑아 수퍼스타가 되는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거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고 데이브 멜처는 지적했다. nWo는 에릭 비숍의 아이디어였고, 커튼 콜이 벌어지건 말았건 스캇 홀과 케빈 내시의 이적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다. 프로레슬링의 케이페이브는 커튼 콜이 아니라 1997년 몬트리올 스크류잡을 계기로 깨어졌다. 커튼 콜 자체는 WWF 내부에서나 큰 일이었지, 훗날 다큐멘터리에서 소개되기 전까지는 대중들에게 거의 전혀 알려지지 않었으며,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데이브 멜처의 회고에 따르면, WCW 내부에서는 다음 날이 되자 그런 일이 있었는지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으며, 이야기하는 일조차 없었다고. WWF 각본에서 다룬 경우도 1997년 RAW에서 있었던 짧은 세그먼트가 전부였다. 링크

데이브 멜처는 스티브 오스틴이 수퍼스타가 되는데 3:16 프로모가 큰 방점을 찍은 것도 맞고, 그 사건으로 T셔츠를 어마어마하게 팔아재낀 것도 사실이지만, '커튼 콜 사건이 스티브 오스틴을 수퍼스타로 만들었다'는 일부의 주장은 과도한 논리의 비약이라고 평했다. 오스틴은 3:16 프로모 이전에도 엄청난 상승세를 타고 있었으며, 3:16이 있었건 아니었건 오스틴이 수퍼스타가 된다는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커튼 콜이 없었다면 오스틴도 없었다'는 논리대로라면 제이크 로버츠가 종교 기믹이 아니었거나, 테드 디비아시가 회사를 떠나지 않았거나, 오스틴이 하필 그날 그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했더라면 오늘의 오스틴도 없었을 것이라며, 결과론적인 이야기라고 평했다. 링크[6]

[1] 언더테이커는 개망나니 시기의 숀을 레슬러로는 존중해도 사적으로는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2] 이 룰은 어디까지나 정해진 방송시간+하우스쇼 시간에만 적용된다. 즉 쇼가 끝난 상황에선 적용되지 않는 것. 09년 8월 24일 RAW에서 방송이 끝난 후 DX와 빈스 맥마흔이 링 위에 있는 상황에서 빈스 맥마흔의 생일축하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당시 관객이 촬영한 영상. 이는 쇼의 뒷풀이로 보여주는 것으로 정식 방송에선 나가지 않는다.[3] 참고로 트리플 H는 커튼 콜 사건이 일어난 해에 열리는 킹 오브 더 링의 우승자가 될 예정이었는데 다음해로 미뤄졌다.[4] 위에서 말한 것처럼 빈스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원로들의 분노를 잠재워야 하는 입장과 그렇다고 처벌을 하기에도 애매한 입장에서 끼어 있었으니 이걸 순순히 감내한 트리플 H를 인정하는 것이 당연했다.[5] 트리플 H가 뛰어난 처세술을 발휘하는 인물이라 이 징계 수행도 처세술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넷 중에서 혼자서만 모든 독박을 쓰고 징계를 수행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 그의 직업의식이 폄하받을 이유는 없다. 더군다나 원래 받았어야 하는 푸쉬마저 1년 뒤로 미뤄지게 되었으니 말 그대로 인고의 시간을 견뎠기에 인정할 수 밖에 없다.[6] 오스틴의 3:16 세그먼트 이전 인기와는 별개로 당시에는 WCW와의 경쟁이 심했고 뛰어난 메인 이벤터인 트리플 H가 특성상 아이콘, 단체를 대표하는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선수였다는 맹점을 생각해 볼 순 있다. 오스틴이 받을 푸쉬가 트리플 H에게 갔을 경우 빈스의 성격상 어울리지 않는 탑페이스로 푸쉬하고 주춤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때문에 WCW의 시청률 쟁탈전에서 확실하게 경쟁력을 끌어올린 데에는 트리플 H에게 분산될 오스틴의 집중 푸쉬로 빠른 아이콘화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에티튜드 에라는 빌 골드버그, 헐크 호건, 존 시나 같은 탑 푸쉬를 받는 무적선역 아이콘이 존재하지 않았고(물론 숀 마이클스라는 아이콘이 있긴 했지만 멘탈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자극적인 컨텐츠, 트위너 성향의 오스틴이 아이콘인 특이한 시대였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