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케네트 안데르손 Kennet Andersson | |
본명 | 베른트 케네트 안데르손 Bernt Kennet Andersson | |
출생 | 1967년 10월 6일 ([age(1967-10-06)]세) 스웨덴 에스킬스투나 | |
국적 | [[스웨덴|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93cm / 92kg[1] | |
직업 | 축구선수(공격수[2]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투나포르스 SK (1976~1981 / 유스) IFK 에스킬스투나 (1982~1984 / 유스) IFK 에스킬스투나 (1985~1988) IFK 예테보리 (1988~1991) KV 메헬렌 (1991~1994) → IFK 노르셰핑 (1993 / 임대) → LOSC 릴 (1993~1994 / 임대) SM 캉 (1994~1995) SSC 바리 (1995~1996) 볼로냐 FC (1996~1999) SS 라치오 (1999) 볼로냐 FC (1999~2000) 페네르바흐체 SK (2000~2002) 가르다 BK (2005) |
국가대표 | 83경기 31골[3] (스웨덴 / 1990~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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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스웨덴 국적의 前 축구선수.
90년대 황금세대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선수이며 현재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스웨덴을 대표하는 골잡이라면 90년대에는 안데르손이 스웨덴 바이킹 군단의 공격진을 대표했던 특급 스트라이커였다.
2. 플레이 스타일
마르틴 달린과 더불어 당대 최고의 스웨디쉬 스트라이커로 인정받는 그는 193cm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가진 전형적인 타겟형 포워드였다. 또한 현역 시절 팀을 많이 옮겨 다니기도 했다.
참고로 BBC는 안데르손을 두고 세계에서 가장 공중볼에 능한 포워드라고 평가했을 정도로 느린 발과 테크닉이 떨어지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큰 신장을 바탕으로 한 제공권 능력은 그의 대표적인 장점이었다. 포스트 플레이 또한 잘 수행하며 주변 동료들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성향 덕분에 침투에 능한 달린과는 최고의 호흡을 자랑했다. 그렇다고 공중볼 능력만 뛰어났으면 허우대만 멀쩡했던 그저그런 선수로 남았겠지만 발로 해결하는 결정력 또한 발군인 선수였다.
3. 클럽 경력
1985년 데뷔 후 1991년 해외무대로 이적하기 전까지 알스벤스칸을 대표하던 공격수 였다.1994년 FIFA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점으로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세리에 A의 SSC 바리에서 좋은 활약을 보이며 1시즌만에 볼로냐 FC로 이적했다.
볼로냐에서도 3년간 알토란같은 활약으로 SS 라치오에 입단했으나 3경기 출전에 그치며 주전 경쟁에 실패했고, 다시 친정팀으로 복귀 후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고 떠났다.[4]
같이 활약했던 마르틴 달린이나 토마스 브롤린이 부상으로 신음하며 이른 은퇴를 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30살 중반까지 선수로 활동하고 은퇴했다.
4. 국가대표 경력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83경기 31골을 기록하며 역대 A매치 득점 순위 상위권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1994년 월드컵과 1992년과 2000년 유로 대회에 출전했으며, 1994 FIFA 월드컵 무대는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대회였다.
조별리그에서는 초반 2경기는 존재감 없는 활약을 보여줬으나 3차전 브라질전에서의 첫 골을 기점으로 토너먼트에 돌입하면서 자신의 신체적인 장점을 잘 살렸고,[5] 이후 무려 4골을 넣으며 득점 순위 공동 2위와[6] 동시에 팀의 3위 달성에 큰 기여를 했다.
대회 후에도 대표팀의 스트라이커로 활약했으며, 1998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6골을 득점했으나 팀은 오스트리아와 스코틀랜드에게 밀리며 월드컵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대표팀이 UEFA 유로 2000 본선에 진출하며 6년만에 국제 메이저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1,2차전은 모두 선발로 나왔으나 별 다른 활약 없었고, 3차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후반 30분, 0: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체로 투입된다.
교체 투입된지 2분만에 침투해 들어가는 헨리크 라르손을 보고 이탈리아의 수비진을 순식간에 허무는 기가막힌 패스를 찔러주며 귀중한 동점골을 어시스트하게 된다.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서는 승리만을 필요했던 팀은 이후에도 반격을 했으나 오히려 후반 43분 델피에로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며 탈락하고 말았다. 그렇게 33살 노장의 안데르손은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1.1. 클럽
- 볼로냐 FC (1996~1999, 1999~2000)
- UEFA 인터토토컵: 1998
5.1.2. 국가대표
-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1990~1995)
- 1994 FIFA 월드컵 3위: 1994
5.2. 개인 수상
6. 여담
- 골을 넣은 후에 쌍권총 세레머니로 유명했으며, 그의 시그니처였다.
[1] 선수 시절[2] 스트라이커[3] 대표팀 역대 득점 6위.[4] 은퇴 후 안데르손이 볼로냐 홈구장에 방문했을때 많은 팬들의 박수를 받았다는 점에서 아직도 사랑을 받는 듯 하다.[5] 루마니아 축구 국가대표팀와의 8강전에서 기록한 동점골이 그의 파괴적인 제공권 능력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상대 골키퍼였던 플로린 프루네아보다 머리 하나는 높이 솟아오른체 공포의 고공 타점으로 골문에 공을 꽂아넣는 것이 압권. 물론 프루네아가 183cm로 골키퍼로서는 단신이기는 하지만 안데르손만큼의 제공권 능력이 아닌 이상 힘든 득점이었다.[6] 호마리우, 로베르토 바조, 위르겐 클린스만과 득점수가 동일했다.[7] 컵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