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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23:15:34

마르틴 달린

스웨덴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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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마르틴 달린
Martin Dahlin
본명 마르틴 나다니엘 달린
Martin Nathaniel Dahlin
출생 1968년 4월 16일 ([age(1968-04-16)]세)
스웨덴 우데발라
국적
[[스웨덴|]][[틀:국기|]][[틀:국기|]]
|
[[베네수엘라|]][[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 84kg[1]
직업 축구선수(공격수[2]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룬드 BK (유스)
말뫼 FF (1987~1991)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1~1996)
AS 로마 (1996~1997)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1996~1997 / 임대)
블랙번 로버스 FC (1997~1999)
함부르크 SV (1998~1999 / 임대)
국가대표 60경기 29골(스웨덴 / 1991~1997)

1. 개요2. 플레이 스타일3. 클럽 경력4. 국가대표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
5.1.1. 클럽5.1.2. 국가대표
5.2. 개인 수상
6. 여담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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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국적의 前 축구선수.

토마스 브롤린, 케네트 안데르손과 더불어 90년대 바이킹 군단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스트라이커였다.

2. 플레이 스타일


탄탄한 신체조건을 가진 스트라이커로서 박스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득점을 해냈으며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라인브레이킹 또한 아주 일품인 선수였다.

3. 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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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 FF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1988년, 약관의 나이에 리그 득점왕을 수상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1991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로 이적했다. 그의 경력의 대부분을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에서 뛰었고, 전성기를 맞이했다. 또한 1995년 DFB-포칼에서 팀이 우승하는데 기여하였다.

1996년, BMG에서의 커리어하이 시즌 후 야심차게 세리에 AAS 로마로 이적했으나 반년동안 리그 3경기 출장에 그치며 처참하게 폭망하고 만다.

이후 반년만에 친정팀으로 이적했고 후반기만 뛰었음에도 19경기 10골을 기록하며 여전히 분데스리가에서는 통하는 실력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1997년 여름, 잉글랜드의 블랙번 로버스 FC로 이적했으나 저조한 성적을 거두며 사실상 기량이 쇠퇴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1998-99 시즌에는 함부르크 SV로 임대 이적했지만 훈련 도중 부상을 당한 이유로 5번의 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하였다.

결국 부상을 이유로 만 30살의 한창인 나이에 은퇴를 하고 말았다.

4. 국가대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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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스웨덴 축구 역사상 흑인 선수로는 2번째로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1994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7골을 득점하며 본선 진출에 큰 역할을 했다. 이후 본선에도 참가하며 총 4골을 득점했고 토마스 라벨리, 토마스 브롤린, 케네트 안데르손과 더불어 조국의 3위 달성에 크게 견인했다.

또한 스웨덴이 준결승전에 진출했던 UEFA 유로 1992에서도 참가하였다.

1996년 5월 16일, 서울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렸던 우리나라와의 맞대결에서 득점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결과는 2:0 스웨덴의 승리.

5. 기록

5.1. 대회 기록

5.1.1. 클럽

5.1.2. 국가대표

5.2. 개인 수상

6. 여담

7. 같이 보기


[1] 선수 시절[2] 스트라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