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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5-30 02:52:17

케론케 열차 충돌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일:케론케 열차 충돌.jpg

1. 개요2. 사고 내용3. 사고 이후

1. 개요

Accidente ferroviario de Queronque de 1986

1986년 2월 17일 칠레 발파라조 마르가 마르가(Marga Marga)에서 일어난 열차 정면 충돌사고.

2. 사고 내용

사고 1년 전인 1985년, 마누엘 로드리게스 애국전선#의 공격으로 페냐블랑카(Peñablanca) 역과 리마체(Limache) 역 사이에 있는 케론케(Queronque) 다리가 피해를 입었다. 거기다 폭풍까지 오는 바람에 수리는 1986년 2월 중순이 되어서도 계속됐다. 이로 인해 다리 위 선로 2개 중 1곳만 운용됐다. 복선 구간이 단선 구간이 됐으니, 열차가 두대가 한번에 통과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한 열차가 통과하기 까지 기다려야 다음 열차가 통과할 수 있었다.

사고 당일, 발파라조발 산티아고행 AES-16 열차가 오후 5시 30분 경 출발했다. 반대편에선 로스 안데스발 발파라조행 AES-9 열차가 오고 있었다. AES-16 열차는 단선 구간에 들어섰다. AES-16이 단선 구간을 다 지나야 AES-9 열차가 지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AES-9 열차는 리마체 역에서 대기하지 않고 바로 출발했다. 두 열차는 단선구간에 들어섰다. 사고 전, 역 간의 통신을 맡던 전화들이 케이블을 도둑맞는 바람에 무용지물이 됐다. 1928년에 세워져 사고 당시까지 쓰이던 신호 시스템은 두 열차를 막지 못했다.

오후 7시 45분, 두 열차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당시 AES-16 열차의 속도는 시속 100km, AES-9 열차의 속도는 시속 90km였다. 충돌의 충격이 너무 세서 두 열차가 그대로 뒤엉켜버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두 열차를 분리할 수 있었다.

구조대원이 도착하기 까진 1시간이나 걸렸다. 구조대원이 도착하고, 부상자들은 인근 리마체 역에 세워진 임시 구호소에서 치료받았다. 부상자가 너무 많아 헌혈 캠페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칠레 대통령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사고 현장과 부상자들을 방문했다.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58명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사망자 수 축소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축소 의혹을 주장하는 측에선 최소 100명이 사망했다 주장하고 있다. 부상자 수는 510명에 달했다.

3. 사고 이후

발파라조 - 산티아고 열차 운행은 한동안 중단됐다. 사고 구간은 화물열차만 다니게 됐다가 1992년이 되어서야 다시 재개됐다. 재개되면서 열차에는 새로운 라디오 무선 통신 수단이 추가됐다. 또한 사고 구간도 복구되어 양방향 통행이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