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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코쿠라시 남부 지역에 대한 내용은 코쿠라미나미구 문서, 옛 코쿠라시 북부 지역에 대한 내용은 코쿠라키타구 문서
, 산요 신칸센의 역에 대한 내용은 고쿠라역 문서
참고하십시오.小倉市 / こくらし
1. 개요
현재의 기타큐슈시 코쿠라키타구와 코쿠라미나미구.2. 역사
1871년 코쿠라현이 생겼으며 이후 1876년에 후쿠오카현, 오이타현에 흡수통합된다. 1889년에는 현재의 코쿠라미나미구 쪽에서 주변 마을과 합병해 코쿠라정을 이루었으며 1900년에 코쿠라시로 승격된다.도시 규모도 예전부터 꽤 컸고 특히 인근에 자리한 야하타제철소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투하 목표 도시 중 하나로 올라 있었다. 두 번의 투하 작전때 전부 타겟으로 내정되었으며, 히로시마 폭격 때는 히로시마에 떨어트리기 힘들면 여기 떨어트린다는 제2 목표였고, 나가사키 폭격 때는 제1 목표였다. 첫 번째 원폭은 히로시마 날씨가 그날 흐렸으면 여기에 투하했을 수도 있었고,[1] 두 번째 원폭은 원래 나가사키가 아니라 코쿠라에 투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B-29 복스카가 45분 정도 코쿠라 하늘에서 계속 육안목표확인을 하다 날씨가 안 좋고 기타 몇 가지 이유로 계획한 지점에 정확한 투하가 어려워 코쿠라를 폭격하지 못했다.[2] 결국 제2 목표였던 나가사키로 기수를 돌렸다. 코쿠라 사람들 입장에서는 실로 천우신조(...). 이후 2018년, 미국의 원폭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공문서 중 당시 기밀 자료였던 '글로브스 문서'가 공개되면서 일본이 항복하지 않았다면 원자폭탄 투하 제3 목표지가 코쿠라와 니가타 중 한 곳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 내에서도 코쿠라가 기적적으로 핵폭격을 피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려진 일화지만,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자에 대한 고인드립이 될 수 있어 코쿠라가 운 좋게 원폭을 맞지 않았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 편이다.
1963년 2월 10일 모지시, 토바타시, 야하타시, 와카마츠시와 통합후 기타큐슈시 코쿠라구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3. 관련 문서
[1] 참고로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된 그날 히로시마의 하늘에 처음에는 구름이 끼어 코쿠라 쪽을 봤는데(!) 코쿠라 하늘도 마찬가지로 흐렸다. 제3후보 나가사키까지 검토하던 중 히로시마 하늘의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면서 그대로 원폭을 히로시마에 투하했다.[2] 당시 날씨를 다룬 고찰이 있다. 당시 코쿠라는 당일 아침만 해도 맑았는데, 태평양에 있던 열대 폭풍이 일으킨 수중기로 인해 코쿠라는 12시간 사이에 흐려졌고, 반대로 당일 아침에 흐렸던 나가사키는 12시간 사이에 맑아졌다는 것이다. 결국 간발의 날씨차이로 두 지역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