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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28 19:53:26

쿠투카 베키



1. 개요2. 집사에 나오는 기록3. 몽골비사에 나오는 기록

1. 개요

쿠투카 베키(현대 몽골어: Худуга бэхи/Хутуга бэх, 고전 몽골어:ᠬᠤᠳᠤᠭ᠎ᠠ ᠪᠡᠬᠢ)는 오이라트의 연맹의 왕으로,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생몰 연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전해진 바가 없다. 17세기에 쓰여진 『시라 토지(ᠡᠡᠷᠲᠡᠨᠤ ᠡᠡᠷᠲᠡᠨᠤ ᠡᠡᠷᠲᠡᠨᠤ ᠤᠨ ᠮᠤᠩᠭᠤᠯ ᠤᠨ ᠦᠨᠳᠤᠰᠤᠨᠤ ᠦᠨᠳᠤᠰᠤᠨᠤ ᠶᠡᠭᠡ ᠶᠡᠭᠡ ᠰᠢᠷᠠ ᠤᠷᠤᠰᠢᠪᠠᠢ ᠤᠷᠤᠰᠢᠪᠠᠢ)』[1]에서는 다만 그의 후예가 꽤 길게 유지되었다고 서술하고 있긴 하다.

2. 집사에 나오는 기록

집사 칭기즈 칸기에 나오는 쿠투카 베키의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202년 나이만왕 다얀 칸의 동생과 메르키트왕 톡타이 베키 등이 연합한 세력에 오이라트의 왕 쿠투카 베키가 가담하였다. 그들은 케레이트의 옹 칸과 함께 몽골의 칭기스 칸을 향해 진군했지만 추위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철수했다. 그 다음 해에 칭기스 칸이 옹 칸을 무너뜨려 케레이트를 병합하자 다얀 칸이 중심이 되고 메르키트의 톡타이, 케레이트의 아린 타이지, 오이라트의 쿠투카 베키 등이 칭기스 칸 군과 항가이산에서 싸웠다. 그러나 연합군은 대패해서 타얀칸은 전사하고 그의 아들 쿠출룩은 숙부 불크 칸의 진영으로 달아났다. 칭기스 칸이 계속해서 메르키트를 평정했기 때문에 톡타이도 불크 칸의 진영으로 도망갔다. 칭기스 칸은 1206년 쿠릴타이에서 칸으로 선출된후 불크 칸을 습격해서 죽이고 쿠출룩과 톡타이는 이르티쉬강으로 도망갔다. 1208년 칭기스칸은 이르티쉬강으로 진군했다. 진군로에서 맞닥뜨린 오이라트왕 쿠투카 베키는 칭기스 칸에 항복하고 군사를 내어 쿠출룩, 톡타이의 정벌을 도왔다. 톡타이는 전사하고 쿠출룩은 카라키타이로 달아났다. 이후 오이라트왕 쿠투카 베키는 영지를 인정받아 4개 천인대 대장으로 칭기스 칸을 섬겼다.

3. 몽골비사에 나오는 기록

몽골비사에는 앞의 내용에 이어, 오이라트와 몽골 제국 사이의 혼인 관계 성립 과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칭기스 칸은 주치에게 1208년에 항복한 오이라트에게 가도록 지시하였다. 쿠투카 베키는 만 명의 오이라트 병사들과 함께 칭기즈 칸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칭기즈 칸의 궁정으로 가서 부족의 복종을 표현하였다. 만 명의 군사를 얻은 칭기즈 칸은 서로의 자녀끼리 결혼을 시켜 혼인 동맹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동맹에 대해서는 우노의 논문에 자세히 나온다.





[1] 출판본인 National Great Yellow Book of Ancient Mongolian Kings의 몽골어 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