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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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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유벤투스 FC
1.1.1. 2013-14 시즌1.1.2. 2014-15 시즌1.1.3. 2015-16 시즌1.1.4. 2016-17 시즌1.1.5. 2017-18 시즌
1.2.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1.2.1.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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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의 클럽 경력을 정리한 문서.

1.1. 유벤투스 FC

통산 기록 : 389경기 37골 41도움
가족들이 모두 유벤투스 팬이었고 인터뷰에서도 4~5살부터 경기장을 다니며 유베 유니폼을 입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만큼 뼛속부터 유베의 팬이었고, 7살 때 유벤투스 유스팀에 입단하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하였다. 그 후 2007-2008 시즌 임대를 한번 떠난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프로 커리어를 유벤투스에서 이뤄낸 유벤투스의 자랑거리 중 한 명이다. 여러가지 방면에서 진정한 델피에로의 후계자라는 평가와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리고 은근히 유스 출신 선수가 1군에서 성공한 적이 없는 유베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이다.

2008-2009 시즌부터 유벤투스에서 자리를 서서히 확보하기 시작했다. 이 때 밀란의 레전드 중 한 명인 스테파노 보르고노보는 그에 대한 칼럼을 썼는데 마치 과거 유벤투스의 레전드이자 이탈리아 국가 대표 미드필더 마르코 타르델리를 연상시킨다고 한다.[1] 본인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평가라고 만족해 하는 듯. 라니에리 감독 시절에는 다른 미드필더들의 줄부상 및 기량 저하 등으로 자주 선발로 나섰다. 이때의 기록은 32경기 3골 2 어시스트. 아직 어린 미드필더 치고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2009-2010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 2009년 9월에 클럽 웹 사이트에서 이 달의 선수로 뽑히기도 했으며, 12월 5일에는 인테르와의 이탈리아 더비에서 결승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이 때 인테르의 골키퍼인 줄리우 세자르를 농락하는 골을 넣으며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허나 팀의 상황은 좋지 않아 유벤투스는 유로파 리그도 탈락하고 리그에서도 겨우 7위에 머무르는 부진을 보였다. 이 시즌에는 35경기에 출장해 3골 4도움.

2010-2011 시즌에는 팀에 부상신이 강림하여 유로파 리그에서 6무를 거두는 등 막장 같은 상황에서도 마르키시오는 고군분투하며 자신의 100번째 경기에서 골을 넣는 등 활약했다. 그리고 대망의 2011-2012 시즌에는 아르투로 비달, 안드레아 피를로와 조합을 이뤄 세리에 A 최고의 미드필더진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팀의 공격진이 막장 of 막장인 상황에서도 이 미드필더진이 알아서 다 해결해 줄 정도. 다만 로테이션이 부족해 후반기에 연속으로 무승부를 거두는 등 조금 주춤하긴 했으나 결국 이 시즌 유벤투스는 리그 무패 우승을 거두는 엄청난 위업을 달성했다. 다만 코파 이탈리아에서는 카바니, 함식의 나폴리에게 패하여 더블을 이루지는 못했다. 이 시즌 마르키시오는 39경기 10골 4 어시스트라는 엄청난 스탯과 경기력을 선보였다.

2012-2013 시즌에도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맨유에서 온 폴 포그바콰드오 아사모아 등의 가세로 로테이션이 자주 가동되어 지난 시즌보다 혹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반기까지 25경기 5골 5 어시스트를 기록하고, 첼시와의 원정 경기에서 콸리아렐라에게 멋진 어시스트를 적립하여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맹활약했다.

유소년 시절에는 현재의 포지션이 아닌 스트라이커의 포지션, 섀도우 스트라이커의 위치에서 플레이했다고 한다. 때문에 미드필더임에도 불구하고 퍼스트 터치와 골 결정력, 슛 스킬이 상당히 뛰어난 편이다. 특히 슛 스킬은 웬만한 스트라이커들 뺨 치는 수준. 감아 차기, 칩 샷, 발리 슛같은 스킬들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같은 소속 팀의 아마우리, 이아킨타가 굉장히 투박한 스타일의 스트라이커들로 갑갑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마르키시오와 비교되어 미드필더보다 못한 놈들이라고 덩달아 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점들이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국내 팬들에게는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계보를 있는 진정한 판타지스타라 꼽힌다.[2] 조각 같은 외모와 뛰어난 패스, 드리블, 슛 스킬들 그리고 큰 경기에 강한 점, 득점이 그리 많은 선수는 아니지만 한번 할 때마다 나오는 판타스틱한 골들 등등 판타지스타에 필요한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미드필더라는 약점 아닌 약점이 존재했지만 유소년 시절 섀도우 스트라이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문제도 해결되었다.

1.1.1. 2013-14 시즌

13-14 시즌은 영 좋지 않았다. 유망주인 폴 포그바가 기량을 폭발시키며 주전 자리를 훔쳐 가면서 백업 아닌 백업 신세가 되었다.[3] 거기에 그 전 시즌부터 문제가 되었던 골 결정력 하락과 더불어 벤치를 찾는 일이 잦아졌다. 여기에 중원에 추가 영입 루머가 돌면서 입지는 더욱 좁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중원 사령관 피를로가 부상당하자 피를로의 공백을 마르키시오가 메꾸면서 다시 팀 내 입지가 상승.

피를로가 복귀하면서 다시 밀렸다가 1월 중순 전반기 마지막 경기 팀의 연승 기록이 걸린 중요한 순간에 역시나 또 피를로의 교체로 투입되어 길쭉한 중거리를 성공시키며 시즌 첫번째골이자 결승골, 역전골을 터뜨리며 죽지 않음을 과시했다.

시즌의 대부분을 벤치에서 보내다가 키에보 베로나라는 상대적 약체 팀을 상대로 선발로 기용되었다. 기용되자 마자 비달과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주며 중원을 제대로 장악하였고 골까지 기록, 피오렌티나 전에서도 출장하여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주로 피를로의 롤인 딥-라잉 플레이 메이커로 출장하였으며, 높은 패스성공률과 과감한 공격침투로 피를로의 대체자 걱정을 없애준 한 시즌을 보냈다.

1.1.2. 2014-15 시즌

시즌 초반부터 월드컵 등 무리한 국대 병행의 영향으로 피를로가 퍼지자 이번 시즌 또한 레지스타를 한 동안 보았었다. 한창 포스트 판타지스타로 주목받던 시절에서 축구도사 느낌으로...그렇다고 중앙 미드필더로써의 폼이 죽은 것은 아니고 일취월장하여 원래 주목받던 능력에 후방에서 플레이하면서 얻은 시야와 움직임 등등까지 나아진 모습으로 기대를 계속하게 만드는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다. 피를로와 나올 때는 수비적인 문제가 있는 피를로를 커버하며 플레이 한다. 다만 유벤투스의 공격진이 괜찮아진 영향인지 중거리 득점을 노리는 장면은 줄어든 편.

공격+수비에 축구지능도 좋으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평가를 받았다. 평가에 맞게 마르키시오도 이적 절대 안한다고 하고 유벤투스도 절대 팔생각없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피를로 나이대가 나이대다 보니 사실상 마르키시오가 대안인셈. 차기에는 포그바와 비달 그리고 마르키시오로 새로운 MVP라인이 완성될 듯 하다.

2015년 3월말 A매치 기간에 대표팀에 소집된 마르키시오가 워밍업 도중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되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유벤투스는 챔피언스리그 8강에서 모나코라는 비교적 무난한 상대를 만나서 정확히는 02/03 시즌 준우승 이후 10여년만에 챔피언스리그 4강에 복귀할 수 있을 거란 희망에 부풀어있다. 언제나 감독이 주문하는 바를 성실히 수행해주는 마르키시오의 치명적인 부상은 유벤투스에게도 상당한 전력 누수를 의미했고, 이미 포그바가 부상으로 챔피언스리그 4강이 끝나기 전까지 복귀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래서 일부 극성 팬들이 대표팀의 안토니오 콘테 감독에게 살해 협박을 보내기도 했고 유벤투스의 존 엘칸이 매우 분노하여 콘테의 훈련방식을 비판했고, 여기에 콘테 역시 매우 격앙된 어조로 반박하면서 유벤투스와 대표팀 간 사이가 나빠지기도 했다.

그런데...

토리노로 돌아온 마르키시오의 무릎을 재검사해본 결과 전방십자인대 파열이 아니라는 진단이 나왔다. 때문에 대표팀 메디컬 팀과 소속팀 메디컬 팀 간의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선수 본인이 일주일만에 복귀해 보임으로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염려스러웠던 유벤투스 출신 대표팀 감독 콘테와 유벤투스 간의 사이도 유벤투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 이탈리아의 친선전에서 콘테가 열렬히 환영받음으로서 진정이 되었다. 경기 후 콘테 감독도 "토리노는 좋은 기억이 많다. 아넬리 회장과 마로타 GM을 만나 옛날 이야기를 즐기고 시내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고 화답했다.

리그우승과 컵대회 우승을 달성하며 더블을 확보했는데, 챔스 결승에 진출하며 트레블을 노리게 되었다.

14/15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피를로와 비달이 예전에 비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준 데 비해 결승에서 날카로운 중거리 슛을 많이 때리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팀은 패배해 준우승에 머문다.

1.1.3. 2015-16 시즌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개막전부터 출전을 못하고 있다. 감독의 전술 문제도 있지만 마르키시오가 없는 유벤투스의 미들진은 문자 그대로 붕괴당하며 세리에A 역사상 처음으로 개막 후 2연패를 당하고 있다.

원래 마르키시오가 유벤투스 미드필더진에서 조율 그 자체를 담당하고 있고 이는 공수밸런스에 확실한 기여를 해왔었다. 근데 공격적으로 확실한 비달, 롱패스로 볼배급해주는 안드레아 피를로도 사라졌는데 조율담당인 마르키시오까지 없으니 말그대로 폭망해버린것... 유베입장에서는 어쩔수없이 마르키시오를 기다려야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마르키시오가 돌아온 이후 유벤투스는 챔스에서도, 리그에서도 순항 중이며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다들 재인식하게 된 계기를 마련해 줬다.

그런데.. 33라운드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 십자인대가 나가버리는 큰 부상을 당하고 만다. 당장의 시즌은 이미 승점차를 이미 벌려놓은 것도 있으니 걱정은 없지만 당장 본인의 유로 2016 출전이 좌절되었다.

게다가 유벤투스의 입장에서도 다음 시즌 초반부까지 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 다음 시즌 대비에 비상이 걸리게 된다. 뒤에서 완벽하게 경기를 조율하는 스타일은 아닐지라도 후방에서 활동량과 적절한 위치선정을 바탕으로한 공수 밸런스 유지로 팀에 기여하는 바가 컸기에 문제가 큰 상황.

1.1.4. 2016-17 시즌

상기한 시즌의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여전히 결장중이고 이로 인해서 유벤투스의 시즌 초반 운영이 많이 꼬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마르키시오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음에도 레지스타를 고집하는 알레그리의 성향으로 인해 피야니치, 레미나 등의 자원들을 끝끝내 그 자리에 끼워맞추는 시도를 해봤지만 신통치 않은 상황. 시즌 시작 이후에도 혼자 프리시즌을 돌리게 된 상황 때문에 세비야, 인테르, 팔레르모전 등에서 졸전을 하며 마르키시오의 공백을 실감해야만 했다.

그러나 9월말 즈음을 기점으로 마르키시오 본인이 직접 자신의 몸상태가 조만간 복귀가 가능할 정도로 호전되었다는 언급을 해주면서 유베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거기에 마르키시오의 부재기간동안 레지스타 자리에서 에르나네스가 결국 각성했고 마르키시오의 복귀 이전까지 쏠쏠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유벤투스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큰 호재가 되고 있다. 대략 10월 중순이나 11월 이후로는 복귀전을 치를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마침내 복귀하였고, 10R UC 삼프도리아전과 11R 나폴리전을 합쳐 96분을 소화했다. 이어서 챔피언스리그 4차전 리옹전에도 출장하였다.

마르키시오가 없는 동안 사미 케디라, 미랄렘 퍄니치 등의 조합이 제대로 맞물리지 않았으나, 마르키시오 복귀 후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부상 공백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좋은 폼을 보이고 있다. 차후 유벤투스의 중원에서 마르키시오를 대신할 만한 선수가 없는 만큼 마르키시오의 부상 여부가 유벤투스의 이번 시즌 행방에 중요한 셈이다.

이어서 세비야 FC와의 챔스 조별리그 5차전 경기에서 패널티킥으로 복귀골을 신고했다.

2월 18일 팔레르모 전에서 전반 13분만에 선제골을 기록하며 4-1 승리를 이끌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는 후반에 교체 출전하였으나, 4-1 패배를 막지 못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한다."라고 다음 시즌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1.1.5. 2017-18 시즌

시즌 초반에는 마시밀리아노 알레그리 감독의 미드필드진 전술 변경, 본인의 부상으로 인한 폼 저하 등으로 경기에 많이 출전하지 못했다. 주로 교체 등으로 많이 출전하다가 시즌이 거듭되고 1월 중순부터 결국 알레그리 감독은 전 시즌의 미랄렘 퍄니치, 사미 케디라 그리고 마르키시오로 이어지는 삼각편대를 결국 사용하게 되었고 차츰 선발 출장의 기회도 잦아지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블레즈 마투이디의 부상과 피아니치를 제외하고는 현재 유벤투스의 미드필드진이 모두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모습도 가미되기 때문에 마투이디의 부상복귀, 그리고 여타 선수들의 부진이 떨쳐지는 때가 온다면 마르키시오는 언제든 벤치로 내려갈 수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다 엠레 찬 영입설도 계속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 이탈리아 언론은 마르키시오의 MLS 행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시즌 중반기까지의 마르키시오는 주전경쟁, 개인 기량 등에서 폼이 떨어지며 자리를 잃어가는 실정이다.

18-19 시즌을 앞둔 2018년 8월 17일 유벤투스 FC와 상호 계약 해지에 합의하였다. 유소년 시절 포함 25년간의 인연을 맺은 팀을 떠나게 되었다.
부상 이후 급격하게 죽은 플레이로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많은 출전시간을 원하는 유스 출신 선수들을 배려해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1.2.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

1.2.1. 2018-19 시즌

2018년 9월 FC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공식 채널을 통해 자유 계약으로 마르키시오를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2년이며, 등번호는 10번으로 팀의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본다. 9월 FC 카이라트와의 친선전에서 교체하여 데뷔전을 치렀으며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7라운드인 FC 오렌부르크 전에 교체 출전하여 정식으로 팀에 몸 담기 시작하였다. 안지 마하치칼라전에서 데뷔골을 기록하였으며 부상으로 인해 벤치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장 시 팀 내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는 등,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2019년 7월 2일, 제니트는 마르키시오와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해지한다고 발표했다. 고질적인 무릎 부상이 제니트 재적 기간에도 두 차례 있었으며, 시즌 후반기에는 아예 선수가 토리노로 돌아와서 치료를 받기도 했었기에 부상으로 커리어 말년을 안타깝게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니트와의 상호 계약해지 이후 토리노로 돌아와 유벤투스의 J메디컬 센터에서 재활치료를 하였다. 중국의 장쑤 쑤닝과의 링크가 있었으나 자신은 유벤투스의 선수로써 인테르의 팀에는 합류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고,[4] 자신은 유벤투스가 아닌 세리에 A 팀 소속으로뛸 마음은 없다고 말하며 레전드로써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그 후 유벤투스에 컨퍼런스를 요구하여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언급할 것임을 알렸다.#


결국, 2019년 10월 3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다음은 마르키시오의 은퇴 인터뷰.
축구선수를 꿈꾸던 한 아이와 약속했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서면서, 꿈이 실현되는 경이로움이 느껴질 때까지 뛰자고.
하지만 이제 제가 더 이상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시키는 것을 따라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은퇴를 택한 이유입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뛰도록 나를 독려해준 가족들께 감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맙다, 내 꿈아.
내게 용기와 힘,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 기쁨을 준 것에!
마르키시오의 은퇴 발표 인터뷰 상세


[1] 타르델리는 '타르델리의 포효'라는, 축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골 뒤풀이의 주인공이다.[2] 카사노를 판타지스타의 후계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상 동시대에 뛰었던 사이고 후계보단 카사노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경우도 있다.[3] 다만 그냥 밀린 건 아니고 부상이 컸다.[4] 인테르와 장쑤는 모두 쑤닝그룹이 구단주로 있는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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