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클리셰를 파괴하는 시도를 이르는 말.다른 말로는 클리셰 비틀기, 안티 클리셰, 클리셰 깨기라고도 한다.
Plot twist와도 같은 맥락.
2. 설명
특정 연출이나 전개가 클리셰라고 불리게 되면 그만큼 많은 작품에서 많이 쓰였다는 것이기에 당연히 클리셰가 '진부한 방식, 낡은 방식'이라며 비판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이 영화는 미국식 영웅주의군'이라고 비판하는 행위 그 자체. 할리우드에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유럽 영화계는 클리셰를 충실히 따르는 할리우드 클리셰를 깨려고 한다.여기서 중요한 점은 클리셰를 파괴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작품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클리셰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이 안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없고, 반대로 클리셰를 깼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일도 없다. 작품 내에서 클리셰가 파괴되든 말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다. 만약 작가나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클리셰를 파괴하고 싶다면 독자나 관객이 납득이 가도록 개연성이 있게 만들어야 한다.
클리셰 깨기가 가장 일상적인 장르는 개그물로, 이는 풍자와 해학의 핵인 골계미, 즉 '있어야 할 이치를 부정함으로써 웃음을 자아내면서 동시에 깊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이 클리셰 파괴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패러디가 대표적인 클리셰 깨기 개그의 예시. 원작에서 전개에 개연성과 안정감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클리셰를 깨며 생기는 불안정함도 개그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자면 개그물 이외에서 클리셰 깨기를 시도하는 건 창작자에게 상당한 창의력과 도전 정신이 요구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스크림이나 퍼니 게임 등의 예시처럼 실력 있는 작가나 감독이 기존의 클리셰를 깨거나 뒤집을 경우 엄청난 결과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실력 없는 창작자가 무리해서 클리셰를 깨면 개연성도 없이 전개시켰다면서 망작, 괴작 취급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클리셰 파괴 창작물이라고 해서 모든 클리셰를 비껴가지는 않는다. 흔히 클리셰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정립된 다양한 문학 기법도 포함되며 이걸 전부 비껴간다면 당연히 전개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클리셰 한두 가지를 파괴하는데, 대표적으로 장르 전체에서 만연하는 인기작의 표절에서 벗어나거나, 편리한 전개를 위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제거하거나, 오로지 말초적인 자극을 위해 작품의 질을 계속 저하시키는 여타 풍조를 부정하는 식으로 구현된다.
사실 현대에는 전개나 연출 방식이 이미 확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현재의 클리셰에 대한 거부는 보통 더 이전 세대의 클리셰를 따라가는 복고가 되는 경우가 많다. 20년 전에는 식상한 전개라도 20년간 사용되지 않았다면 지금은 더없이 참신한 전개가 되는 셈이다. 대표적으로 과거 창작물의 악당들은 순수악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으나 점차 악역의 사연과 목적, 캐릭터성이 입체적인 것이 더욱 큰 호응을 얻어 순수악 최종 보스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악역에게 과도한 입체감을 부여하는 것이 미화니 세탁이니 하며 불호를 유도하는 부작용이 생겼기에 반대로 도태되었던 순수악 계열의 악당이 더욱 큰 호응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이런 복고형 클리셰 파괴의 일종이다.
클리셰 깨기를 잘 해낼 경우 기존 시장을 거부하던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블루 오션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그리고 블루 오션이 다 그러듯이 후속 주자들이 이를 따르며 레드 오션으로 변하는데, 이것이 클리셰를 비판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클리셰로 정착되는 경우.
클리셰가 점차 고착되면 '클리셰는 진부하고 클리셰 파괴는 창의적이다'라는 인식이 팽배해지며 클리셰 파괴를 일종인 훈장인 것처럼 평가 기준으로 삼는 빠들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무엇이 클리셰이고 무엇이 클리셰 파괴인지에 대한 병림픽으로 이어진다. 해당 장르에 대해 알지 못해서 이미 이전에 클리셰로 고착된 설정이 참신하다고 착각하거나, 작품의 질을 저하시킬 뿐인 개연성 파괴를 클리셰 파괴라고 칭찬하는 빠도 있다. 반면 가장 기본적인 서사 구조나 장르 자체를 클리셰라며 왜 그건 따라가냐고 비아냥대거나, 클리셰 파괴는 클리셰와 접점이 있는 이상 클리셰의 기출 변형일 뿐이라고 그 자체를 부정하는 까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클리셰를 뛰어넘은 신선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다루는 장르의 클리셰를 완벽하게 구사해야 한다. 피카소의 말처럼, '규칙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먼저 규칙을 완벽하게 익혀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카소는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을 만들기 이전 10대 시절에 이미 그 전의 모든 예술 사조를 완벽히 구사했다.
'나는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며 자신만만하게 시작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실패하고 마는, 또한 상업 예술을 만만하게 보고 뛰어드는 순수 예술가들이 자존심을 구기는 큰 이유 중의 하나이다. 현실에서는 클리셰를 뛰어넘기는커녕, 단지 클리셰를 잘 다루는 작품조차 제대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 기본적으로 어떤 요소가 클리셰로 정착되었다는 것은, 그 방식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방식이 클리셰로 정착할 정도로 호응을 이끌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진부하다는 이유만으로 깨부수는 것은 오히려 그 어떤 호응도 불러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어찌 기발한 아이디어로 클리셰를 파괴하며 인기를 얻었다고 해도, 작가가 정말로 엄청난 천재가 아닌 이상에야 금세 소재가 고갈되어 뒤로 갈수록 전개가 점점 지지부진하고 무리수가 난무하는 망작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고정 팬이 있는 시리즈물의 경우에는 '프랜차이즈의 개성'으로 자리 잡은 요소를 무작정 파괴하려고 들다가 팬덤의 반발을 사는 케이스가 잦다.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 라스트 오브 어스 2 등이 좋은 예. 평론가들은 이를 '새로운 시도'라며 극찬했지만 팬들에게는 그런 클리셰 파괴가 설정 붕괴, 캐릭터 붕괴, 서사 붕괴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판과 함께 보이콧으로 이어져 프랜차이즈의 흥행에 적신호가 켜진다. 비평가와 팬덤의 평가가 극과 극으로 엇갈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 실제로 위의 두 작품도 평론가들은 극찬을 했지만 팬들은 거의 비난에 가까운 혹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