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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3 00:16:23

키노쿠니야 분자에몬




[ruby(紀伊国屋文左衛門, ruby=きのくにやぶんざえもん)]
1669년 ~ 1734년 추정.

1. 개요 2. 대중매체
2.1. 현실2.2. 가상

1. 개요

일본 에도 시대악덕상인호상. 출생지는 제설이 분분하나 와카야마현의 유아사(湯浅)로 추정된다.

분자에몬이 20대일 무렵,[1] 키슈에서는 밀감이 대풍작이어서 값이 폭락했다. 한편 당시 에도에선 대장장이들의 축제 풍습에 신께 밀감을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밀감이 크게 부족해서 반대로 가격이 폭등했다고 한다. 당연히 당대 사람들은 이 수요와 공급을 활용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당시 에도와 키슈를 잇는 항로는 풍랑으로 개판이 돼서 사실상 폐지 상태인 바람에 농민들이 힘들어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나선 것이 키노쿠니야 분자에몬. 분자에몬은 근해의 항로를 쓸 수 없으면 원해의 항로를 쓰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 밀감을 싣고 뱃사람들을 설득해서 태평양으로 나갔다. 그렇게 당시의 조악한 배를 가지고 나간 분자에몬은 몇 번이나 죽을 뻔하면서까지 밀감을 에도에 배달한 결과 순식간에 대부호가 되었다.

그 뒤 오사카에 대홍수가 발발하여 전염병이 돌자, 「전염병에는 연어가 제일」이라는 소문을 퍼트려놓은 뒤 연어를 가져가 비싼 값에 판다던가, 메이레키 대화재가 일어나기 전 노슈 키소다니의 목재를 매점해서 순식간에 백만냥을 버는 등의 뛰어난 지혜(?)로 큰 돈을 벌었다.

분자에몬이 죽은 후 가게와 재산은 자식들이 물려받았지만, 자식들의 능력이 형편 없어 그 재산을 모두 탕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분자에몬의 생애에 대한 사실이 사료 교차검증 결과 불합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전설상의 가공의 인물이라는 무리한 추측도 있지만, 현대 일본 학계의 주류는 실존하긴 했지만 행적을 과장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2. 대중매체

2.1. 현실

2.2. 가상



[1] 미나미 하루오의 낭곡에서는 분자에몬이 태어나지도 않은 1652(承応元)년으로 나온다.[2] 강에서 흘러가는 야채 찌꺼기를 간장에 절여 팔아서 부를 얻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