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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25 21:24:19

키리 테 카나와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키리 테 카나와
Kiri Te Kanawa
출생 1944년 3월 6일 ([age(1944-03-06)]세)
뉴질랜드 자치령 기즈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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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성악가
활동 기간 1968년 ~ 2017년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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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뉴질랜드출신의 세계적인 성악가. 주로 소프라노로 활동했다.

2. 생애

1944년 뉴질랜드 기스번에서 마오리족 혈통의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다른 여성과 혼인관계가 있었고, 결국 친부모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 그녀는 성공한 사업가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즉 그녀의 성인 테 카나와는 양부모의 성이다.

그녀는 오클랜드의 세인트 메리 칼리지라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카톨릭 수녀회가 운영하는 이 학교에는 메리 레오 니콜 수녀라는 저명한 성악 교육자가 있었고, 테 카나와 역시 그녀에게 성악을 배웠다. 그녀는 1963년, 뉴질랜드에서 벌어진 성악 콩쿨에서 준우승했으며[1] 1965년도에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그녀는 영국 런던의 런던 오페라 센터에서 추가적인 교육을 받았는데, 원래는 메조 소프라노였지만 이시기부터 소프라노로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점차 영국과 유럽에서 명성을 얻게 되었고, 1981년에는 당시 왕세자였던 찰스 3세다이애나 왕세자비의 결혼식 축가를 부르게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후로 그녀는 크로스오버 활동을 늘리게 되는데 대표적인 작품은 1984년도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 작품은 이미 1957년도에 초연된 작품이었지만, 1984년도 공연이 유명한 이유는 원작의 작곡자이자 저명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직접 오페라 버전으로 편곡해서 첫 지휘를 한 공연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녀가 여자주인공 마리아 역을 맡았고, 남자주인공인 토니 역할을 맡은 것은 호세 카레라스였다. 이 공연은 1985년 그래미상(뮤지컬부문)을 받았다.

한편 '키리와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자선공연 및 앨범을 내는 등, 자선활동에도 활발히 참여했으며, 2016년도까지 클래식 및 크로스오버에서 많은 공연과 함께 음반을 발표하다가, 2017년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로는 뉴질랜드와 영국에서 음악가를 발굴하는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3. 기타

카톨릭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아서 그런지 의외로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녀 자신도 크로스오버에서 상당히 많은 활동을 가졌음에도, 이쪽 계열에 참여하는 후배 음악가들에게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곤 했는데, 물론 그녀가 비판하는 것은 크로스오버 자체가 아니라 마이크 없이는 노래를 못하는 가수들에 대한 것이지만, 결국 대중음악에 대한 폄하로 비춰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그녀의 팬들에게서도 의견이 엇갈리는 편.

또 같이 공연하기로 한 대중가수가 저속하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해서 위약금을 지불한 적도 있다.

카톨릭에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데, 바로 트리엔트 미사 지지자이다. 이 주장이 현재 카톨릭에서 바로 이단으로 취급받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민감한 주제인 것만은 사실. 다만 클래식 음악가들 중에서는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아무래도 자신들의 음악활동의 상당 부분이 전통 교회음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인지도.
[1] 이때 우승자는 말비나 메이저 역시 메리 레오 니콜의 제자였으며 테 카나와처럼 영국에서 Dame 작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