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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하라 히토시

키하라 히토시
木原 均
파일:3C939AE5-8E8F-4ABA-9F53-CD2E475F3FFA.png
<colcolor=#ffffff> 출생 <colbgcolor=#ffffff,#1f2023>1893년 10월 21일
일본 제국 도쿄부 도쿄시
사망 1986년 7월 27일(향년 92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직업 교수, 유전학자
학력 도호쿠제국대학농과대학(현 홋카이도대학 농학부) 예과
홋카이도제국대학 농학과 학사
교토제국대학 농학박사[1]
지구의 역사는 지층에, 생물의 역사는 염색체에 기록되어 있다.[2]

1. 개요2. 생애3. 씨 없는 수박4. 저서5. 기타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유전학자로 씨없는 수박을 개발한 사람이다. 학자로서는 게놈설, 품종 개량, 세포유전학, 육종식물의 기원 등의 분야에 대해 연구했다.

홋카이도제국대학, 교토제국대학을 거쳐서 학위를 받았고, 교토대학 명예교수, 국립유전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2. 생애

1893(明治26)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시로가네 심상소학교를 나와 도쿄 아자부중학교를 졸업했다.

1912년, 도호쿠제국대학농과대학[3]예과를 졸업하고 1915년에는 농학과 제2부에 입학한다.

도호쿠제국대학농과대학이 홋카이도제국대학으로 이관된 1918년에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했다.

1920년에는 교토제국대학 이학부 식물학교실 조수로 임명된다.

1922년에는 강사가 되고, 1924년에는 교토제국대학 농학부 농림생명학과의 조교수로 임명된다.

1924년에는 교토제국대학 박사 논문이 통과.[4] 1929년에는 일본 학사회[5] 회원에 임명된다.

1964년에는 농림성 식물바이러스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됐다.

1969년에는 키하라 생물학연구소를 개설.

1984년에는 연구소를 요코하마시립대학으로 이관해, 요코하마시립대학 키하라 생물학연구소를 발족하고 명예소장이 된다.

1985년에는 그의 업적을 기려서 키하라 기념 요코하마 생명과학진흥재단이 설립되었다.

3. 씨 없는 수박

수박 꽃에 콜히친을 바르고, 거기에 일반적인 수박 꽃가루를 수정시키는 방식으로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개발했다. 콜히친은 식물세포에서 염색체 비분리 현상을 일으킨다는 점을 이용해, 염색체의 개수가 정상적인 수박의 1.5배가 되게 만들어 생식능력을 잃게 한 것. 이렇게 되면 씨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 '씨 없는 수박'이 만들어진다.

대한민국에는 우장춘 박사가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일반 국민들에게 육종학과 농업기술의 설명하고 개량종자의 생산성 향상과 그것이 초래할 식량증산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 씨 없는 수박과 그 종자를 최초로 한국으로 가져와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운다면 이렇게 신기한 수박도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가르치며 그 중요성을 강조한 게 전부이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6] 당대 생명공학에 생소하고 일반적인 씨가 있는 수박만을 봐왔던 한국 청중들로선 상당한 충격이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이 일화가 이래저래 알려지는 과정에서 와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우 박사 본인이 "내가 씨 없는 수박을 발명했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다.[7]

즉,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아니라, 한국에 씨 없는 수박을 최초로 들여와 알린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게 알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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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저서

5. 기타



[1] 박사학위논문 : Cytologische und genetische Studien bei wichtigen Getreidearten mit besonderer Rucksicht auf das Verhalten der Chromosomen und die Sterilitat in den Bastarden (1924)[2] 키하라 히토시가 남긴 말로 유명한 것으로, 그의 저서 '소맥의 조상(小麦の祖先)'에 적힌 "밀의 역사는 이 염색체에 새겨져 있어 마치 지구의 역사가 지층이라는 책에서 읽히듯이 고리로부터 밀의 분류와 조상의 발견이 이루어지는 것이다."가 후일 정리된 문장이다.[3] 삿포로농학교의 후신이자 홋카이도제국대학의 전신[4] Cytologische und genetische Studien bei wichtigen Getreidearten mit besonderer Rucksicht auf das Verhalten der Chromosomen und die Sterilitat in den Bastarden[5] 제국대학 출신들만 들어갈 수 있는 동문회이다. 이름이 '학사회'인 이유는 당시 일본에서 학사 학위를 수여한 곳이 제국대학들뿐이었기 때문이다. 교명에서 '제국'이 삭제된 지금도 도쿄대학,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나고야대학, 도호쿠대학, 규슈대학, 홋카이도대학의 7대 구 제국대학 출신들은 여전히 회원 자격이 있으며 식민지의 경성제국대학대북제국대학 동문들도 들어갈 수 있었다.[6] 씨 있는 수박만 봐온 사람들에게 씨 없는 수박은 충분히 신선한 충격일 만했다.[7] 우장춘 박사의 업적은 굳이 씨 없는 수박이 아니더라도 차고 넘친다. 당장 현재 우리가 김치로 담가먹는 풍성한 배추가 바로 우장춘 박사의 업적이며, 이외에도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자주 먹는 채소의 상당 부분은 우장춘 박사가 개량한 것이다.[8] 실제로 키하라 히토시는 스키, 테니스, 야구 등을 즐겨했고, 일본 스키 초창기에 과학적 스키 훈련을 제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