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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26 14:15:03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Tarcisio Pietro Evasio Bertone
파일:Tarcisio-Bertone.jpg
<colbgcolor=#C9151E><colcolor=#ffc224> 출생 1934년 12월 2일 ([age(1934-12-02)]세)
이탈리아 왕국 피에몬테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
[[바티칸|]][[틀:국기|]][[틀:국기|]]
재임기간 교황청 국무원장
2006년 9월 15일 ~ 2013년 10월 15일
파일:bertone_tarcisio_03.jpg
Fidem custodire, concordiam servare
(신앙을 보호하고, 단결을 유지하십시오)
[1]

1. 개요2. 생애3. 기타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추기경으로 교황청 국무원장과 교황궁무처장을 지냈다.

2. 생애

1934년 12월 2일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8형제 중 5번째로 태어난 베르토네는 1950년 살레시오 수도회 회원으로 서원했고, 1960년 7월 1일 사제로 서품됐다. 그의 교회법 박사학위 논문은 《교황 베네딕토 14세의 사상 안에서 교회의 통치》를 주제로 한 것이었다.

로마 살레시오 대학교와 라테라노 대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임하던 그는 1988년 마르셀 르페브르 대주교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2]을 보좌한 전문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는 또 2001년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밀링고 대주교 문제를 다루는 특별기구에도 참여함으로써 신앙과 교리 문제에 대한 교회의 권위 있는 결정 과정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다.

1991년 6월 4일에는 이탈리아 베르첼리 대교구장으로 임명됐고 1995년 라칭거 추기경이 장관으로 있던 신앙교리성 차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2000년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가 전한 3번째 비밀에 대한 출판물을 편찬하는 임무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부여받기도 했다. 2002년 10월 10일 이탈리아 제노바 대교구장으로 임명된 그는 2003년 10월 21일 추기경에 서임됐다.

베르토네 추기경은 종종 교회의 침묵을 깨는 뉴스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댄 브라운의《다빈치 코드》에 대한 교황청의 공식 반응이 나오지 않던 2005년 3월, 베르토네 추기경은《다빈치 코드》에 대해서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비록 교황청의 공식 반응은 아니었지만, 그가 지닌 무게로 인해 그의 발언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베르토네 추기경은 2006년 6월 공식적으로 국무원장에 임명했으며, 그해 9월 15일부터 임기가 시작됐다. 그리고 2007년 4월 4일부로 교황궁무처장을 겸임하였다.

만 78세가 된 2013년 9월, 베르토네 추기경은 교회법 제354조에 따라 국무원장과 궁무처장직을 내려놓고 은퇴하였다.

3. 기타

파일:너 이단.jpg
너 이단짤방의 베네딕토 16세 오른쪽 저 살인미소(...)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마침 베네딕토 16세[3]와 베르토네 추기경이 있었던 신앙교리부는 그 이단심문소의 후신이다.
[1] 베르첼리의 주교였던 에우세비오(? ~ 371) 성인이 썼던 편지 내용을 사목 표어로 가져왔다.[2] 훗날의 교황 베네딕토 16세[3] 신앙교리부 장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