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베이츠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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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 ||||
16대 |
잉글랜드의 前 축구감독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테드 베이츠 MBE Ted Bates MBE[1] | |
본명 | 에드릭 손튼 "테드" 베이츠 Edric Thornton "Ted" Bates | |
출생 | 1918년 5월 13일 노포크 주 텟포드 | |
사망 | 2003년 11월 28일 (향년 85세) | |
국적 | 잉글랜드 | |
신체 | 175cm | |
직업 | 축구선수(공격수 / 은퇴) 축구 감독 | |
소속 |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 노리치 시티 FC (1935~1936 / 유스) 노리치 시티 FC (1936~1937) 사우스햄튼 FC (1937~1953) |
감독 | 사우스햄튼 FC (1955~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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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축구인으로, 'Mr. Southampton'이라 불릴 정도로 세인츠에 인생을 바쳤으며, 팀을 유소년 육성형 클럽으로 발전시킨 장본인으로 손꼽힌다.2. 일생
2.1. 선수 시절
현역 시절의 모습.
1948년에 그의 활약상을 풍자한 만화.
1918년에 노포크 주 텟포드에서 태어나 1935년, 17살의 나이로 당시 2부 리그 소속인 노리치 시티의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이듬해에 1군에서 뛰다 1937년에 같은 2부 리그 팀인 사우스햄튼으로 이적했다.
사우스햄튼에서 생활한 지 2년만에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져 베이츠는 헌병으로 징집되어 울스턴에 있는 정유소 등을 지키는 임무를 맡음과 동시에 각 리그에서 비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계속하였고, 1940년에 메리와 결혼한 뒤 찰튼 애슬레틱과 사우스햄튼의 경기를 지켜보는 와중에 집이 폭격으로 부서져 햄프셔 주 웨스트 웰로우로 이사하여 폴랜드 비행기 공장으로 들어가 일을 하면서 공장 축구팀[2]에서 공장 동료이자 프로 선수들인 빌 도진, 프랭크 탄, 클리프 파커, 빌 로치포드 등과 어울려 뛰었다고 한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고 사우스햄튼으로 돌아가 1947년부터 1950년까지 찰리 와이먼과 보조를 맞추기도 했으며, 1952년 12월 20일에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끝으로 1953년에 완전히 은퇴했다.
2.2. 감독 시절
1953년에 은퇴하자마자 친정팀인 사우스햄튼의 코치로 2년간 재직하다 1955년에 조지 로턴 감독의 후임으로 부임하여 당시 3부리그까지 떨어져 있던 팀을 리빌딩하는 데 착수하기 시작하여 기존에 있던 토미 트레이너와 토미 멀그로, 데릭 리브스 등을 축으로 1957년에 팀의 대들보인 에릭 데이를 내보내고 테리 페인과 존 시덴햄을 영입하여 전력을 착실히 다진 뒤 1959/60 시즌에 3부 리그 우승으로 2부 리그에 복귀했고, 이후 1962년에 데릭 리브스, 존 페이지, 토미 멀그류 등을 내보내고 공격수 마틴 치버스와 데니스 홀리우드를 영입하여 1965/66 시즌에 2부 리그에서 준우승하여 마침내 1부 리그로 올라섰다.
이후 1부 리그에서 중위권을 수성하여 1968년에 마틴 치버스가 떠난 뒤에 데이브 워커, 에릭 마틴, 바비 스톡스, 존 맥그래드 등의 젊은 선수들이 차차 성장하여 1968/69 시즌과 1970/71 시즌에 두 번 7위를 수성한 적이 있었으며, 특히 1969년에는 인터-시티 페어스컵에 출전하여 처음으로 유럽 대항전에 발을 들이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에 들어서 팀의 주축인 테리 페인과 존 시덴햄이 떠나면서 팀은 점차 약해졌고, 결국 베이츠 감독은 1973/74시즌 도중인 1973년 12월에 수석코치인 로리 맥메네미에게 감독직을 내주었고, 이로써 그의 오랜 감독 생활은 끝을 고하게 되었다.
그는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고 육성하여 팀 전력을 향상시켜 가는 수법을 취했는데, 이것은 현재 사우스햄튼이 유소년 육성형 클럽이라는 팀 컬러를 확립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다.
2.3. 은퇴 이후
로리 맥메네미, 존 본드와 함께.
매튜 르 티시에와 함께.
은퇴 이후 사우스햄튼의 사장, 부사장, 명예회장 등을 두루 거치면서 팀의 실세로 활약하면서 2001년에 대영제국 훈장 5등급(MBE)을 받았고 관보링크, 2003년 11월 28일 타계할 때까지 팀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열심히 봉사해 왔다고 한다.
베이츠 사후인 2004년 1월부터 사우스햄튼 구단 측은 그를 기리기 위해 '테드 베이츠 트로피'라는 친선경기를 2012년까지 매년 오프시즌 때마다 진행했다.[3] 역대 테드 베이츠 트로피 우승팀(5절 참조)
2007~2008년까지 쓰인 테드 베이츠의 동상.
문제의 동상과 밀란 만다리치와 비교한 짤.
2008년부터 바뀐 현재의 동상.
2007년에는 그의 동상이 사우스햄튼 홈구장인 세인트 메리스 스타디움에 세워졌으나, 라이벌 팀인 포츠머스 FC의 전 구단주인 밀란 만다리치와 똑같다고 팬들이 지적하는 바람에 2008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