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조제 페라시우 베르중 (José Perácio Berjun) |
생년월일 | 1917년 11월 2일 |
사망년월일 | 1977년 3월 10일 (향년 59세) |
국적 | 브라질 연방공화국 |
출신지 | 브라질 합중 공화국 노바리마 |
포지션 | 포워드 |
신체조건 | 176cm | 74kg |
소속팀 | 빌라 노바 AC (1932-1936) 보타포구 FR (1937-1941) → 칸투 두리우 (1941 / 임대) CR 플라멩구 (1942-1948) 칸투 두리우 (1951) |
국가대표 | 6경기 4골 (1938-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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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전 축구 선수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페라시우는 1932년 빌라 노바 AC에 입단했다.1934년의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결승전에서 아틀레치쿠 미네이루를 상대로 출전한 페라시우는 헤더로 후반 24분에 선제 결승골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틀레치쿠 선수들은 페라시우에게 어시스트를 해준 아웃사이드 레프트 토뉴(Tonho)가 크로스를 올리기 전에 빌라 노바의 팬들이 골라인을 넘어가기 전에 지팡이로 공을 막았다고 격렬히 항의했다. 결국 법원에까지 간 이 사건에서 법원은 페라시우의 골을 인정하고 남은 21분을 중립 경기장에서 치르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결국 빌라 노바는 페라시우의 골을 잘 지켜내 미네이루 주 챔피언에 등극했다.[2]
1937년에 페라시우는 보타포구 FR로, 1942년에는 CR 플라멩구로 이적했다.
2.1.2. 국가대표
페라시우는 1938년 월드컵에서 브라질 대표팀에 데뷔했다. 그는 월드컵 4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브라질의 당시 월드컵 최고 성적인 3위 달성에 큰 공을 세웠다.이후 페라시우는 훌리오 로카 컵과 히우 브랑쿠 컵에 한 경기씩 더 출전해서 총 6경기 출전 4골의 기록을 남겼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양발 사용에 능한 포워드.4. 뒷이야기
- 페라시우는 제2차 세계 대전 때 브라질 원정군(Força Expedicionária Brasileira, FEB)에서 복무한 적이 있다. 보직은 운전병이었다.
- 페라시우는 반문맹이었다. 서명하는 법조차 잘 몰랐다고 한다.
- 페라시우는 흡연자였는데 주유소에서 담배를 피우려고 성냥에 불을 붙인 후 담배를 피우면서 성냥을 땅에 던져 동료 마르팅 시우베이라(Martim Silveira)[3]를 당황하게 만든 적이 있다. 그리고 마르팅에게 사과를 하면서 당신이 미신을 믿는 줄 몰랐다고 말했다.
- 음악을 좋아한 페라시우는 항상 경기장에 출근할 때마다 음악의 볼륨을 최대한 키우고 차를 주차했다고 한다.
5. 수상
5.1. 클럽
- 캄페오나투 미네이루 우승 3회: 1933, 1934, 1935(빌라 노바 AC)
- 캄페오나투 카리오카 우승 3회: 1942, 1943, 1944(CR 플라멩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