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4-10-03 14:19:55

대영제국(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개변된 역사
,
,
,
,
,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상세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 등장하는 대영제국을 의미한다. 소설의 행적을 요약하면 고종이 거의 떠 먹여주다시피 기회를 주었고 그 기회를 잘 이용하는 듯 했으나 옛날의 버릇을 고치지 못해서 자신들의 자체 트롤짓으로 결국 자멸해버린 국가.[1]

2. 상세

영국도 바뀐 흐름에 따라 이득을 크게 본 나라인데, 우선 타이완 섬의 할양 자체가 영국 주도의 열강들의 영향으로 이루어졌고, 가장 많은 영향력을 타이완에 투사하는 것도 영국이다. 타이완을 열강 공동 통치 구역으로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타이완 주변의 나라인 류큐 왕국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투사하게 만들었고, 류큐의 현재 주변국이 신생국인 중화제국, 내전 중인 일본이므로, 류큐도 영국의 식민지로 만들 가능성 또한 열어둔 셈이다.

더불어 영국은 다른 열강들과 함께 했지만, 가장 주도적으로 강남을 아예 독립국가인 중화제국으로 분리하여 신생국의 성립이 외세에 의해 이루어질 경우 외세에 가장 많이 의존하게 된다라는 점을 이용해 하남을 확실히 영국의 영향력으로 굳힌 것 또한 그렇다. 티베트도 원역사와 같이 영국령 인도의 방위를 위해 독립시킬 것이 확실한 상황. 더욱이 조선에도 친밀도를 약간이나마 생성하여 조선에도 외교력을 투사할 여지를 남겨둔 상황이다. 일본에도 반 막부파를 지원, 일본에서의 내전에서 경제적 이득을 거둘 것이 확정적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할 때, 극동에서 프랑스 다음으로 이득을 보았으며, 어째보면 원 역사에서도 약간만 쥐었던 극동의 제해권을 완전히 쥘 기회까지 가지게 된 영국이다. 게다가 조선이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승리하면서 얻게 된 금전적 이득도 상당해서 서태후의 보물창고를 중화제국과의 휴전 주선 대가로 챙겨먹었다. 영국이 얌전하게 휴전 주선을 해 준 이유가 서태후의 보물창고를 날로 먹게 해 준다는 점 때문이었다고 묘사됐을 정도.

러시아를 가장 강하게 견제하는 영국의 사정[2]상 조러전쟁 승리 이후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한 프랑스를 대신하는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 영국 국왕(여왕)이 무굴 제국의 제위가 있으니 유목제국 칸 아니냐는 주인공의 말에 토마스 공사가 울컥하기는 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러시아 견제를 위한 파트너로서 대한제국의 성립을 축하, 인정했다.

일본에서 무진전쟁이 끝나고 그 영향으로 대한제국이 류큐 국왕의 요청으로 류큐를 점령하는 일이 벌어지자, 대한제국과 거래, '대한제국은 바다로 나갈 생각도 능력도 없다'는 이형의 확답을 받고, 일본 현 정부(막부)를 인정하는 대신 일본 경제 자체를 집어삼키라는 이형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로서 영국은 러시아 해군에 대항하는 장기말로서 일본 해군을 통제하게 되면서 동아시아의 제해권을 손쉽게 수중에 넣었다. 하지만, 자꾸 자신을 간 보면서 무시하는 토마스 공사와 그 뒤에 있는 영국의 태도 때문에 이형이 개인적으로도 홍차(가 뇌수에 쩌든) 놈들이라면서 매우 싫어해서 벼르고 있는 중. 이형의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대해 프로이센이 관세동맹으로 독일 일대에서 세를 모은 것과 비슷하다고 보고 있으며, 러시아 견제를 위해 동조한다.

허나 한편으로는 관세동맹으로 세를 모은 프로이센이 점차 영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듯이 대한제국도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까 우려해서 영국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만을 사자 몸 속 벌레로 심어두었다. 문제는 이형이 프랑스 국채를 사는 것을 포기한 대신, 영국 국채를 사는 것을 노리고 있다는 점. 시티 오브 런던의 투자자들이 독일에서 채권 회수를 못해 파산하여 알거지가 되는 미래를 예측했다. 즉, 대한제국과 대만이 똥값이 된 시점의 영국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이게 된다면, 영국이 범아시아 조약기구에 관여하려고 해도 채권으로 협박이 가능해진다. 설상가상으로 영국에서 중화제국을 지원하긴 하고 있지만 동양의 사상에 무지한 나머지 대만 인구를 늘려 중국에 넘기지 않겠답시고 닥치는 대로 쌀을 사들여 중화제국 내에서의 쌀값을 미친 듯이 끌어올리고는 풍년이 드니까 그 값으로 매입하지 않는 바람에 지주들이 공급량을 줄여버리려고 쌀을 불태우도록 조장했던 것이 부메랑이 되어 이형이 관여하지 않으면 3년 내로 영국은 극동에서 영향력이 대폭 축소되거나 아예 상실할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가 차분하고 진지하게 설명하자 진짜라는 것을 깨닫고 토마스 공사가 사색이 된 건 덤.

이형은 영국이 보불전쟁에 의한 경제적 파산에 더불어 이번 사태를 통해 스스로 모든 동아시아인의 공적이 되었다고 본다. 유교는 동아시아의 공통된 사상으로 나라마다 말과 문화가 판이하게 다른 동아시아를 하나로 묶는데 큰 기여를 해온 사상이다. 중원과 조선은 말할 필요가 없는 유교 국가였고, 일본도 유교라고 직접적으로 강조하지 않았을 뿐, 에도 시대부터 장유유서 등의 종법질서 법칙을 무가제법도 등에 적용하는 등 실제 일본 문화에서 유교의 영향은 상당히 컸다.[3] 그리고 이번에 영국이 한 일은 이러한 동아시아의 공통된 사상인 유교사상의 역린을 건드린 행위다. 작중에서 유럽으로 따지면 십자가를 뒤집어놓고 앞에 오줌 누고 무슬림 앞에서 코란을 돼지기름으로 불태운 격이라고 표현할 정도. 사실 유교에 있어 쌀 가격 안정=민생안정은 말 그대로 성서 격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유교사상에 영향을 받은 나라는 한중일 어느 나라든 쌀과 농사를 가지고 장난질치는 놈들은 모가지가 성치 못했다. 농사라는 게 결국 '하늘에 맡기는' 부분이 많은 일이기에 성서 문구와 달리 (없는 쌀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해석에 유연성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흉년 한 번 터지면 가장 먼저 왕이 '내가 부덕해서 하늘이 벌을 내리셨다.' 하며 머리 박고 기우제부터 지내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쌀의 위상이다. 그런데 이런 환경에서 뼈 빠지게 고생해서 풍작을 일궜는데, 먹을 수 있는 쌀은 전무하다는 이상 사태를 보고, 자신들이 뼈 빠지게 일군 쌀을 '값 올리겠다고 불태우는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이 어떻게 뒤집힐지는...

당장은 자기 이익을 노리고 쌀값 장난질 친 지주와 상인들, 그런 그들의 뒤를 봐 준 부패한 관료에게 죽창이 꽂히겠지만, 그 뒤에 있을 외국의 존재를 민중들이 눈치 못 챌 리가 없다. 아니. 자기가 살기 위해서라도 들고 일어난 민중들에게 사정을 설명해 줄 '윗놈'들이 존재하고 있다.

따라서 이형은 영국이 강남은 물론이고 극동에서 축출되기까지 1년이면 충분할 것이라 결론 내린다. 사실, 극동에서 축출되기만 하면 양반인 것으로 이 사태가 잘못 폭발하면 중원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난장판이 되어 십중팔구 영국 이외의 열강들도 자신들이 누리던 이권에 막심한 피해를 볼 게 뻔할 터라 최악의 경우에는 국제관계에서 고립되어 보어 전쟁건함 경쟁까지 갈 것도 없이 국력이 급속도로 추락할 위기에 몰렸다.

이형의 정색한 모습에 사태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창백해진 토마스 공사가 그에게 해법을 묻지만 그냥 밤길이나 조심하고 대한제국이 사태 수습하는 거에 딴지 걸지 말면서 공사관에 처박혀 입이나 다물고 있으라는 말만 듣는다. '나도 방법 없으니 네 몸이나 잘 간수해라.'라고 돌려 말한 것이기도 하고 사실상 대영제국의 사냥개 역할을 때려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당장 코 앞의 프랑스 제국이 미쳐 날뛰며 프로이센으로 진격하면 프로이센에 많은 대출을 해 준 영국 경제는 파산할 것이고, 그게 아니어도 최대 이권지대 중 하나인 강남은 다른 열강들도 손을 걸쳤는데 대영제국이 자신들 입장에서 대만을 키우면서 푼돈 좀 아끼겠다고 친 장난질이 강남뿐만 아니라 화북, 대만, 일본, 대한제국 등까지 인류 역사 최악의 도살장으로 바꿔버릴지도 모를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는 지경이라 외교, 경제적으로 국가가 휘청일 위기가 연달아 도래하고 있다. 인도도 세포이 항쟁에서 장악력을 회복하지 못해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

그나마 믿을 만한 것은 자신들의 말단 동맹으로 대영제국의 사냥개를 자처한 대한제국뿐인데, 영국을 '홍차(가 뇌수에 쩌든) 놈들'이라고 부르는 등 자신을 간 보며 무시하는 토마스 공사와 그 뒤에 있으면서 주변국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다니는 영국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이형은 그에게 '(네놈들이 싸지른 똥 치우는 거) 방해나 하지 말고 공사관에 처박혀 있으라.'라는 식으로 대답하며 아예 손절을 선언했다. 지갑: 터져요♡ 적금: 나도요♡ 그리고 결국 최익현에 의해 조선 팔도에 영국의 행위가 알려지자 이에 극도로 분노한 대한제국의 유림이 단숨에 통째로 들고 일어서서 고종에게 집단으로 상소문을 올리거나 상경하여 주청을 올리는 등의 방법으로 영국과의 국교 단절을 외치고, 덕분에 영국인과 영국 유학파들은 스스로를 미국인이나 프랑스 유학파로 속여야 했다. 반사적으로 고종의 요청에 따라 인도차이나 총독부를 통해 대량의 구휼미를 강남에 푼 프랑스를 군자의 나라라고 믿는 건 덤. 최신화 시점에서는 그래도 뭔가 불안한 건지 친영파에게 우선적으로 식량을 풀었는데, 문제는 이 친영파의 대다수가 매국노였던지 이 식량을 매우 비싼 값에 파는 짓을 벌이고 있었다. 이형이 제발 친영파도 가려 뽑으라고 한심하게 생각했을 정도. 또 다른 열강의 간섭이나 소작농들의 반발을 막기 위해 본인들이 풍년 속 흉년을 조장한 게 아니라, 자연재해라고 우겨댄 건 덤이다. 대만에 쌀을 미친 듯이 풀고도 거기에 속을 거 같나. 당연하지만 이 변명을 믿는 사람과 나라는 아무도 없는 상황. 더 가관인 건 강남 해안 지대의 영국 상인들과 친영파 상인들이 범아시아 조약기구에서 보낸 구호물자까지 빼돌려 착복하다가 이게 농민들에게 걸려서 수차례의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

그때서야 위기임을 깨달았는지 상인들 스스로 자기들이 쟁여둔 물자를 풀기 시작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건지 영국 정부마저 시장불간섭 원칙을 깨고 상인들을 압박하여 구호활동을 시작했지만... 중화제국의 많은 농민들이 작년 수확기부터 농사를 포기하고 식량을 약탈하는 도적으로 변한 상황인 데다, 1871년 봄으로 넘어오면서 영국 상인들과 친영파 상인들, 그리고 지주들이 쟁여놓은 쌀마저 다 떨어지면서 범아시아 조약기구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공급되는 구호물자가 강남에 유일한 식량공급선이 되었다. 그야말로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셈. 그런 상황에서 그들은 특명전권대사로 솔즈베리 후작인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을 대한제국에 보내[4] 중화제국이 민란을 진압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하며 이미 자신이 도착하기 한 달 전부터 대량의 군수물자와 구호물자를 실은 첫 번째 화물선단이 인도를 넘어 광저우로 향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프랑스[5]와 청나라[6]에 대영제국까지 끌어들여서 중화제국을 갈가리 찢어놔야 범아시아 조약기구의 안전보장이 확실해질 거라 생각한 이형의 교활한 계획에 의해 어설프게 도덕외교를 지향하는 자유당에서 자국의 이권 사수를 중시하여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호전적인 보수당으로 정권이 바뀔 듯하다. 접견 과정에서 유럽의 정치와 외교, 역사를 언급하며 솔즈베리 후작과 토마스 공사에게 굴욕을 준 고종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밤중에 영국 공사관에 홀로 방문해서 빅토리아 여왕과 영국 보수당의 호전적인 성향을 언급하는 탓에 두 영국 외교관들은 궁궐에서보다 더 심하게 농락 당하고 있다. 그들이 고종을 바라보는 시선은 거의 귀신이나 요괴를 바라보는 수준에 가깝다고. 결국, 솔즈베리 후작과 토마스 공사는 그의 통찰력과 지식에 굴복하며 한 배를 타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한편 J.P 모건의 찌라시로 인해 미국의 금융시장과 여론이 뒤흔들리고 이러한 사실이 영국으로 전달되자 이에 영국의 여론까지 단박에 주전론으로 기울어진다. 마침내 빅토리아 여왕은 자유당 당수로서 내각 총리인 글래드스턴에게 총리 해임과 의회 해산, 조기 총선을 명령하고, 총리 관저로 돌아온 그는 크림전쟁을 겪었음에도 또다시 전쟁을 외치는 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을 흘리며 한탄한다. 그리고 미국발 오보에 휘둘린 나머지, 중화제국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며 의도찮게 대한제국을 돕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주요도시마다 수비병력들을 증강시키는 등 중화제국과 태평천국의 공세에 대비하는 중.

하지만 자유당 내각이 해산되고 들어선 보수당 내각은 그 이상으로 무능하여 자신들의 국력과 군사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나머지 교만하게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러시아 양측 모두가 수락할 리 없는 것을 중재안이랍시고 내놓을 준비를 하고 있으며 만약 이를 거부할 경우 선전포고도 불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본국으로 돌아와 그를 만난 솔즈베리 후작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이런 말이 되지 않는 한심한 계획을 자기 앞에서 늘어놓는 벤저민 디즈레일리 때문에 멘붕 중.

하지만 이 방침이 디즈레일리의 본인의 의중이 담긴 구상이 아니라 사실 빅토리아 여왕의 의중을 디즈레일리가 최대한 유화적으로 다듬은 것이었으며, 죽은 남편의 넋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프로이센을 도와주기로 결정한 결과였던 것.[7] 결국 솔즈베리 후작 또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러시아와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 프랑스와의 협상에 집중하기로 한 상황. 천만다행이도 아직 이성을 잃지 않았던 섭정회의는 과거 나폴레옹 전쟁의 되풀이를 염려해 협상에 응하자는 의견을 보였고 나폴레옹 4세의 요청으로 잠시 전선에서 돌아온 루이 중장 역시 동의견을 보여 영국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성공시킨다. 그러나 신성 로마 제국의 부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가 거부함으로서 영국 역시 제1차 세계 대전에 뛰어들게 된다.

그 와중에 대한이 태평천국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분할한 뒤 대한 왕족들을 번왕으로 임명하자 이는 영국 관점에서 전형적인 분할 지배 수순이었고, 정부부터 민중까지의 적대감까지 더해 동방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상실할 위기에 처한다. 보통 이렇게 되면 힘으로 시비를 걸겠지만 여기에 프랑스 극동본부가 깊이 개입해있어서 그것조차 어려운 상황. 결국 영국은 마지막 똥패를 던져 판을 흔들기로 하고, 러시아가 숨겨두고 있다가 거의 포기한 서태후에게 손을 뻗는다.

이후 2년간의 전쟁으로 총 10~20만의 육군병력 중 10만의 사상자를 내었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불씨를 남긴 채 종전됨으로서 늘 도모하던 유럽 판도의 안정화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더불어 그 동안의 정보를 바탕으로 황제 이형과 대한제국을 주시하면서 견제를 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대한제국을 승전국으로 인정하며 베를린에서 열리는 종전협의에 이형을 참여시킨다. 이는 이형이 더 이상 암약하지 못하게 하고 열강들에게 이형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내정 정비 때문에 대한제국의 황제가 너무 바쁜 관계로 박규수 총리를 대한제국 대표로 베를린에 보내는 바람에 이 계획은 실패한다.

종전협상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신성 동맹의 트롤러. 대사는 군비증강을 하면서 전쟁 준비 중인 것을 모두 아는데도 앞에서는 평화를 부르짖어서 뻔뻔하다고 욕을 먹고, 발칸 문제에서 그나마 오스만의 체면이라도 챙겨주려는 프랑스와는 달리 이미 배를 갈아타고 오스만을 완벽하게 무시한다. 프로이센이 덴마크에게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반환하겠다고 한 약정을 독일 연방 공화국이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는 프랑스에게 옛 프로이센의 조약을 현 독일 연방 공화국에게 적용할 순 없다면서 당사자인 독일 연방 공화국도 지킬 생각이던 약정을 무효라고 주장하며 프로이센의 국력을 보존해 프랑스를 견제할 계획을 하고있다.

그 와중에 독일 연방 공화국이 파산을 선언하면서 엄청난 금융공황을 맞은데다 설상가상으로 박규수가 영국이 일본에게 900만 달러를 지원해 줄 수 밖에 없게 몰아버린 상황.[8]

결국 금융공황이 터져버렸고 급하게 거래소 일시 폐쇄와 증권 거래의 전면적 중단을 하는 등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막대한 식민지를 활용한 끝에 혼란을 진정시킨다. 그러나 그동안 보였던 정부의 시장불간섭으로 인해 조치의 시점이 늦었고, 내부적으로는 템즈 강에 투신 자살자들의 유골이 넘쳐난다는 낭설이 나돌고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대국민 담화를 하던 디즈레일리가 오물을 투척당할 정도로 경제가 악화되고 정권 지지율이 추락한다.

대외 사정 또한 여의치 않아서 악화된 국내 상태를 안정시키고자 자국은 물론 프랑스마저 국외에 파병한 병력들을 본국으로 소환하면서 그 틈을 노린 동맹국의 역습이 먹힌 바람에 종전 협정에서 동맹국이 관철시키는 요구들의 대부분을 들어주게 된다.
게다가 이로 인해 러시아 제국이 북해와 지중해 양쪽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9] 태평양 방면의 진출이라도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하는 만큼, 일본의 캄차카 구입을 성사시키는 데에 필요한 900만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대한제국(의 이형)과 미국(의 카네기 측)이 준비한 860만 달러의 금을 대출받아서 그걸 다시 일본에 대출해줘야 할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그 동안 자신들이 열강조무사 취급하던 두 나라의 눈치를 보게 되니 그야말로 다른 각도에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진 셈.

그래도 이형과 카네기가 주도하여 준비한 금괴로 영국 국채가 팔리게 되면서 일단 한 시름은 놓았다. 인플레이션에 진행 중인 상황에서 금본주의제 자본주의에서는 절대로 물질적 가치가 변하지 않는 금괴로 지불되었기 때문에, 현 경제상황이면 액면가로 860만 달러를 가볍게 뛰어넘기 때문.[10][11] 게다가, 이형이 제안한 대가인 대한제국의 공업화와 경제성장에 대한 전면적인 지원과 협력은 현재 영국 입장에서는 거절하는 게 이상할 정도로 사소한 대가[12]인 만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된 셈.

그럼에도 현재 대영제국이 돌아가는 사정은 매우 심각한 듯하다. 본국 정부에서 각국에 파견된 관료들과 외교관들에게까지 공문을 보내서 나라를 위해 금붙이를 보내달라고 호소하고, 도버 해협 건너에 있는 나라의 청소년 황제에게 '버킹엄의 과부가 먹을 과자도 장만하지 못한다.'라는 조롱을 당하며, 그 동안 자국에서 열강조무사 취급하던 대한제국과 미국(의 카네기 그룹)이 보유한, 검은 월요일 전 기준으로 860만 달러 어치의 금괴 대출 제안에 일개 외교관이 홍콩 매각까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금융공황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작중 언급에 따르면, 거래를 제시한 시점에서 이미 이 금괴는 높게 잡으면 9,000만 달러. 즉 10배 이상까지 가치를 높여 부를 수 있는데다가, 금괴가 바다를 건너는 사이 추가로 가치가 상승할 것을 따지면 1천만 파운드는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타이밍 좋게 벨기에가 굶주린 국민들에 의해 왕정 자체가 무너져버리면서[13] 벨기에 사태 개입 때문에 돈이 더 급해진 영국 비상내각[14]은 대한제국에서 금괴로 영국 국채를 매입하고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소식을 듣고는 인도 할양만 아니면 뭐든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으며, 그 대가가 고작 산업화 노하우를 탈탈 털어주고 경제성장에 도움을 달라는 것임을 알고는 이형의 뒤에서 헤일로가 보인다며 완전히 뿅가 죽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대한제국의 구제금융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여 육군 약 1개 사단을 벨기에에 파병하나 그 배나 되는 병력을 이끌고 온 프랑스와 싸워봤자 신성 로마 제국과 러시아 제국에 이로울 뿐이라는 걸 안 영-란 측에서 협상을 제안하는데... 솔즈베리 후작 같은 문관을 협상대표로 보낸 자신들과 달리 프랑스 측 대표로 그들이 자랑하는 전쟁영웅이자 이제 갓 40대 밖에 안 된 육군 원수인 루이가 나온 것을 두고 협상이 파토나면 전쟁이 터질 거란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왈롱 주는 프랑스에 양보하고 나머지만 네덜란드가 합병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대한제국의 항구에서는 본국의 명령에 따라 전함 3척을 포함한 수십여 척의 군함을 파견한 대영제국 동방 함대가 1천여 명의 수병들을 상륙시켜 간부들의 갖은 쌍소리 하에 11톤의 대한제국(+미국의 카네기 측) 금괴[15]를 정신없이 화물칸에 적재한다. 현장에서 이를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토마스 공사는 혹시나 영국군이 사고 치지 않을까 이를 감시할 겸 시위군을 이끌고 와서 금괴 수송작업을 돕는 걸 지켜보던 이형에게 갖은 공치사를 떨면서 프랑스로부터 대한제국의 안전보장을 대영제국이 보증하겠다고 공언하고, 베를린 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박규수 총리를 극진하게 대접[16]하는 등 예전과는 완전히 뒤바뀐 태도로 대한제국에 최대한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벨기에 분할 이후, 귀국한 솔즈베리 후작은 디즈레일리 수상과 만나서 동맹이든 적이든 유럽 대륙 본토에 단일 패권세력이 등장하는 걸 막아야 한다며 신성 로마 제국과의 회담을 추진하자고 진언한다. 이를 수용한 디즈레일리 수상은 오-헝(신성 로마) 제국의 재상 겸 외무장관인 귤라 안드라시와 스톡홀름에서 만나 양국의 이해관계를 확인하고는 스톡홀름 조약을 체결한다.

이후 프랑스가 대한제국과 동맹을 체결하자 대한제국에서의 영향력을 잃지 않기 위해 중국난민의 남미 이주를 지원하기로 한다.[17]

러시아가 오스만을 침공하고, 프랑스가 아프리카 정복과 동시에 이탈리아와 스페인과의 동맹을 확고히 하자 일단 네덜란드와 포르투갈과 함께 프랑스를 비판하는 여론전을 벌인다. 하지만 정계 내부에서 그레이트 게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귀족원과 그래도 프랑스를 눌러야 한다는 평민원으로 정계 내분이 발생한다. 게다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빅토리아 여왕은 자신이 내각을 바꾸자마자 전쟁의 패하다시피하고 경제공황까지 겪은 사실에 위축되어서 정계를 외면하고 있는 중... 이 때문에 독일로부터 그리스를 주축으로 튀르크 분할제의를 받고도 극심한 의견차로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스만이 그리스를 침공하자 마침내 의견을 모아 오스만을 비난하면서 크레타에 해군을 파견하여 무력시위를 한다. 이후 개입한 프랑스 정부가 파견한 프랑스 함대와 대치를 하지만, 프랑스가 추진하는 아프리카 정복이 잠시 늦춰지는 것에 만족하면서 중재를 실시한다. 그 결과 런던에서 종전협정이 맺어지고 중재의 대가로 오스만에게서 키프로스의 실효지배권을 받는다.

결국 다시 조기총선이 열리면서 보수당이 완패하며 자유당이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그리고 여기에 노동당이 자유당과 연대를 하면서 현 역사보다 30년 일찍 노동당이 평민원에 들어선다. 그렇게 내각에 진출한 노동당은 왕정폐지(!)를 주장하였고 대공황의 여파로 인해 영국정부는 어떤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제는 대외활동을 자제하면서 힘을 키우는 방식으로 국력을 회복하려 하고 있으며, 페르시아가 자신들의 영향력에 벗어나려하자 현 영국령 부왕 겸 총독인 리턴 백작을 파견해서 항의하고, 알렉산드르 황태자가 군대 1만을 이끌고 페르시아로 진출하자 격노한다. 그러다 해외 식민지를 확보하려던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이 개입하자 어이없어하고 여론도 전쟁을 지지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제를 재건해야 되는 상황에서 프랑스를 견제하는데 신성 로마 제국이 필요하였고, 무엇보다 잘못하면 네덜란드를 상실할 위험이 있기에 위신이 떨어지더라도 신성 로마 제국의 중재를 받아들인다. 이에 따라 암스테르담에서 러시아와 조약을 체결하였고, 위신은 깎였지만 러시아를 경계하는 프랑스와 다시 관계가 개선이 되었다.

더불어 장사꾼의 나라답게 대한제국에 대한 기술 지원을 위한 고문단을 파견했지만, 태업이 의심이 될 정도로 성과가 부진하다고 한다.

결국 계속되는 열강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자 페르시아의 자주권과 발칸 반도의 신생국들 내의 영토와 종교 및 민족대립 문제. 그리고 아프리카의 미개척지에 대한 분할 문제를 논의하고자 코펜하겐에서 열린 열강들 간의 교섭에 대표단을 파견한다. 당시 각국은 후작급 이상의 인사들이 참여한 상황이었고, 영국은 공화파의 견제와 왕실의 존재감 과시 및 정세의 심각성에 따라 에드워드 왕세자를 파견한다. 그리고 회의를 통해 남위 5도를 기준으로 아프리카 남쪽을 프랑스와 함께 분할하게 된다. 더불어 이집트 역시 확보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와의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고, 마침내 프랑스와 연합하여 미국의 지원하에 러시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한 편 에드워드 왕세자의 조카인 빅토리아 멜리타 공주와, 대한제국 황자인 이강과의 결혼이 발표되었다. 영국 민중들은 이강이 구교도에다 황인종이기 때문에 상당히 반대하고 있으며, 대한제국의 백성들도 영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않아서 반대의견이 거세다.

하지만 별개로 양국의 상층부는 이 정략결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대한제국은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지닌 대영제국의 확고한 동맹이 필요하고, 대영제국은 러시아 제국을 견제해줄 강력한 후방이자 프랑스의 폭주를 막아줄 대한제국의 확고한 동맹이 필요했다.

프랑스가 루이 베르그송 원수와 150만 대군을 앞세워 침공해오자 네덜란드에 해군육전대를 포함한 정예군을 파병했지만 네덜란드를 지키는 건 실패했고 양군의 해군 총력이 모인 해상결전에서 프랑스 해군을 전멸시켰지만 3만의 육군이 상륙해 런던이 점령당한다. 왕실은 도망치려다 민중의 시선에 들켜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수도 부근에 프랑스 육군을 상대할 수준의 병력이 없는 탓에, 프랑스군이 폭주했다면 런던을 해군 육전대의 귀환까지 버티지 못하고 불바다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다행히 아국과의 보급도 연락도 끊긴 프랑스 상륙군이 이성을 되찾고 런던을 불태우지 않고 항복한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끝내 구하지 못했고 사태를 잘못 판단한 미국이 캐나다를 침공하고, 협상이냐 전쟁이냐로 갈등하다 우방 네덜란드를 외면하고 프랑스와 협상하고는 남은 해군을 동원해 미동부 해안가를 공격한다.

결국 이것 때문에 영국은 본토를 상실하게 되어 영국 왕실은 인도로 망명을 떠났고, 이제 영국의 왕실이 인도의 왕실이 된 상황. 원래 기반을 잃어버린 영국 왕실은 이제 인도 현지인들의 눈치를 살펴봐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1] 본토를 잃고서 인도로 망명한 영국의 왕실은 그대로 인도의 왕실이 되어버렸다. 인도 내부에선 오히려 인도가 영국을 집어삼켜버렸다고 여기고, 영국 왕실도 인도의 민심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2] 프랑스에게 러시아는 유럽 본토에서 같이 독일을 견제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반면 영국은 대놓고 러시아를 견제하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 시기 영국과 러시아는 그레이트 게임이라고 해서 작게는 중앙아시아 크게는 유라시아 전역의 패권을 두고 전략적 경쟁을 했었다.[3] 유교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일본에서는 실제 역사에서 쌀 때문에 잇키가 여러차례 일어난 적이 있다.[4] 대한제국뿐만 아니라 극동지역순방이라는 임무를 받고 왔다고 한다. 주인공 때문에 원 역사와 달리 19세기 동북아시아, 특히 대한제국의 위상이 달라진 걸 체감할 수 있는 대목.[5] 정확히는 극동본부. 본국은 유럽전쟁에 집중해야 할 테니까...[6] 여기 또한 정확히는 프랑스 극동본부와 대한제국이 청나라를 뒷받침하는 식으로.[7] 자신의 시숙인 작센 공작이 죽은 앨버트 공을 팔아가며 도와달라고 꼬드겼기 때문.[8] 일본에게 캄차카 반도를 900만 달러에 팔아치우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클(19세기의 사람들은 비웃겠지만, 이형은 시베리아의 잠재력을 알고 있으니까) 그 옵션으로 예니세이 강 동쪽은 대한제국 지배하는 것을 인정 받았는데, 박규수는 캄차카 반도를 일본이 살 수 밖에 없을 거라는 계산 하에 거래를 마쳤다. 러시아를 압박하는 영국 입장에서는 캄차카 반도를 일본이 사게 되면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이 막히게 되므로 당연히 반길 입장인데다가, 일본은 영국의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에 안성맞춤으로 여기고 일본에게 900만 달러의 빚을 내게 해서라도 캄차카 반도를 구매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9] 북해는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의 협력을 통해서, 지중해는 발칸 소국들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통해서.[10] 심지어 원 역사에서 검은 목요일로 대공황이 왔던 기준으로도 10배인데, 유럽 전역의 파산 직전인 현 상황에서는 10배는 커녕 그 이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11] 다만 그만큼 경제가 종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건 가장 어려울 때 가장 필요한 도움을 줬다는 '마음의 빚'이 생기는 건데, 거래를 제안받은 토마스 공사가 이 점을 걱정했다.[12] 이형이 요구한 것은 결국 '지식의 전수'로 이건 들어주더라도 실질적으로 영국이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대한제국이 영국을 고속으로 따라잡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한제국과 영국은 문자 그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문제가 생겨도 여유가 있고, 대한제국은 그 동안 쭉 우호적으로 대해온 우방국인데다 바다 쪽은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있기에 영국과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은 곳이다. 비유하자면 연대보증에 걸려 쫄딱 망하게 생긴 큰 회사 사장에게 하청업체 사장이 자기 적금 깨 가면서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초대형 자금 수혈을 해주고, 그 대가로 원한 게 '몇 가지 노하우만 좀 전수해주세요'한 상황.[13] 레오폴드 2세를 비롯한 왕가가 성난 민중들의 손에 죽었다고 한다.[14] 수도권 방위 문제가 걸린 일이라 당장 육군을 동원해서 개입해야 하는데도 금융공황 때문에 경제가 엉망이 된 바람에 육군 장교들에게 지급할 급료가 3개월째 밀려서 파병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지경이라고. 이미 해외 식민지와 외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한 걸 시작으로 인도나 캐나다에서는 더 이상 세금을 올리면 봉기가 일어나거나 충직한 신민들에게 면목이 없을 정도로 많은 세금을 거뒀고, 자립조차 불가능한 오세아니아나 거리가 너무 먼 홍콩(+남중국 이권지대)에서의 증세와 자금 조달은 무의미한 상태. 설상가상으로 미국마저 금융공황의 여파로 대서양 경제권이 맛이 가면서 뉴욕 증시가 박살났고, 프랑스는 벨기에 사태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당사국이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자금을 융통한다는 것 자체가 정신나간 발상이며, 발을 맞춰야 할 네덜란드 또한 국경을 맞댄 대독일 신성 로마 제국, 정확히는 옛 상전이었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모든 국가 총력을 쏟아부어 국경 방위에 집중하느라 여력이 없는 상황. 그나마 해외 주재 관료들과 배외공관에서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하고 여왕마저 자신의 패물들을 국고에 헌납하여 간신히 해군을 유지하는 선까진 틀어막았지만, 딱 거기까지인 게 대영제국의 처참한 재정상태.[15] 24K 금괴가 300만 달러 정도였고, 나머지가 14K 금괴였기 때문에 24K 금괴가 약 4톤, 나머지가 7톤 정도인 것으로 추정된다.[16] 영국령 인도에서 최신형 기선으로 환승시켜주고, 동방 함대 소속 함선을 호위함으로 붙여줬다고.[17] 겉으로는 인신매매를 단죄하는 모습으로 이미지 개선이 되고, 난민 이주에 따른 수수료도 챙기니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기는 샘.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315
, 번 문단
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315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