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폴 발레리 Paul Valéry | |
본명 | 앙브루아즈 폴 투생 쥘 발레리 Ambroise Paul Toussaint Jules Valéry |
출생 | 1871년 10월 30일 |
프랑스 제3공화국 세트 | |
사망 | 1945년 7월 20일 (향년 73세) |
프랑스 군정청 파리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작가 |
장르 | 시, 철학, 에세이 |
성향 | 상징주의, 모더니즘 |
학력 | 몽펠리에 대학교 |
가족 | 배우자 자녀 1명 |
종교 | 무종교(불가지론)[1]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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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천박하게 낭만적인 시대의 인간에게 명석함의 전범을 제시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칭송받을 발레리의 공적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의 후계자이자 프랑스 상징주의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다.
2. 생애
1871년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세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코르시카 출신의 세관 직원이었고, 어머니는 제노바 출신으로 이탈리아 영사의 딸이었다. 1884년 몽펠리에로 이사하여 학교를 다녔으나, 당시 제도권 교육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고 빅토르 위고나 보들레르 같은 작가들을 탐독하며 홀로 시를 짓고 희곡과 단편소설들을 집필한다. 바칼로레아를 마친 발레리는 해군사관학교를 포기하고 몽펠리에 대학교로 진학해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이 시기 폴 베를렌과 스테판 말라르메를 접하며 상징주의에 경도되었고 1889년 한 해에만 백 편의 시를 짓기도 했다. 이후 작가인 피에르 루이스의 소개로 말라르메와 앙드레 지드, 그리고 클로드 드뷔시와 만나며 이후 말라르메가 주도한 화요 모임에 참석하면서 예술적인 교류를 이어간다.그러던 중, 1892년 발레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꿀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발레리는 몽펠리에 대학 교수의 부인인 로비라 부인를 짝사랑했는데, 정신적인 갈등과 고뇌로 일상 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10월 4일 폭풍우가 치던 밤에 불면증과 함께 실존적인 위기를 겪는다. 훗날 발레리가 '제노바의 위기'이라 명명한 이 경험 이후 발레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듬해 그는 자신이 소장하던 책들 대부분을 처분하고 몽펠리에를 떠나 파리에 정착하여 자신의 지성을 수련하는데 몰두한다. 이때 발레리가 갈고 닦은 정신의 산물은 미학론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과 에세이 '테스트 씨와의 함께한 저녁'으로 남았다.
1898년, 그의 정신적 스승인 말라르메가 세상을 뜬다. 그간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발레리는 스승의 죽음을 계기로 절필하게 된다. 이후 인상주의 화가인 베르트 모리조의 조카와 결혼하고, 비서일과 말단 공무원으로 소박한 생활을 보내며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침묵에 들어간다. 발레리의 재능을 알고 있던 이들은 끊임없이 그를 설득했지만 발레리는 이를 거절한다. 앙드레 지드 역시 그를 설득한 인물 중 하나였는데, 그는 발레리가 이전에 집필한 글들을 모아 선집으로 출간하자고 제의했고 발레리는 이를 수락하며, 젊은 시절에 대한 작별인사 격으로 짧은 시 하나를 짓고자 다시금 펜을 든다. 그러나 이는 무려 4년이나 이어졌고, 그 결과 걸작 '젊은 파르크'가 탄생한다. 1차 세계대전 와중에 발표된 이 시는 문단의 폭발적인 호응과 함께 작가로서의 복귀를 알린다.
이후 에세이와 평론에 매진하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는다. 1925년에는 아나톨 프랑스의 후임으로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각종 단체와 학회의 회장과 의장을 맡았으며, 국제연맹과 국제지적협력위원회에서 활동하는 등 당시 유럽 지성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한다. 만년에는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시학을 강의했으며 1945년 파리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후 드골 정부는 국장으로 대문호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발레리의 시신은 고향인 해변가 세트에 안장되었다.
3. 저서
-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 Introduction à la méthode de Léonard de Vinci (1895)
- 테스트 씨와의 함께한 저녁 La Soirée avec monsieur Teste (1896)
- 젊은 파르크 La Jeune Parque (1917)
- 정신의 위기 La Crise de l’esprit (1919)
- 옛 시첩 Album de vers anciens (1920)
- 매혹 Charmes (1922)
- 바리에테 Variété (1924, 1930, 1936, 1938, 1944)
- 드가, 춤, 데셍 Degas, danse, dessin (1936)
- 나의 파우스트 Mon Faust (1946)[2]
4. 여담
[1] Paul Gifford, “Paul Valéry and French Catholicism,” Fordham Scholarship Online.[2] 사후 출판되었으며, 발레리가 남긴 유일한 희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