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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인터넷 방송인에 대한 내용은 피닉스박 문서 참고하십시오.<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대한권도협회본관 초대 관장 박현성 Park Hyunsung | |
출생 | 1968년 11월 6일 |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읍[1] | |
사망 | 2014년 7월 24일 (향년 45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배우자, 아들 박기영, 딸 |
학력 | 대천중학교 (졸업) 대천고등학교 (졸업) |
병역 | 전시근로역 (수형) |
수상 | 제49회 전국체육대회 우승 제17회 킹스컵 3위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전 준우승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준우승 프로복싱 전적 5전 5승 0패 (4KO 승) |
별명 | Phoenix Park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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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복싱 국가대표 선수이자 종합격투기 선수 출신 관장.2. 생애
1968년 11월 6일,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읍 태생이다. 제49회 전국체전 우승을 필두로, 만 17세인 1986년 아시안게임,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 때 각각 2위로 입상, 1986년 킹스컵 대회에서는 동메달 수상, 1988년에는 프로로 전향해 5전 5승 4KO 등 매우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나, 앞서 언급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편파 판정 (본인 주장이지 근거는 없다) 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이후 실망한 나머지 복서를 관두고 조직폭력배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3년에 반대파 조직에게 테러를 당해 아킬레스건이 절단 당하고 다시 복수에 나서다 감옥에 수감되고, 또 석방되고 나서는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등 20대 중후반에 험난한 시기를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분신자살 시도로 인해 27차례 수술을 거친 뒤 재활을 하면서 뒷세계 생활을 정리하고 양지로 나와 모교인 대천고등학교와 대천중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들에게 무료로 복싱을 지도하였으며, 1997년에는 충남 장항에 사설 복싱 체육관을 운영[2]하였다. 그러나 인근에 전과 사실이 알려지면서 체육관 운영이 힘들어졌고, 그러다가 2002년 11월 25일에 지인의 소개로 서울 소재 21세기복싱체육관을 맡게 되었다.
지도자로서 많은 선수를 육성했지만 경영난을 호소하다가 2003년에는 종합격투기 대회인 스피릿 MC에 나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6년에는 복싱의 장점을 살린 실전격투기라며 '권도'라는 무술을 창안하였다.
2014년 7월 24일 급사하였는데, 언론에서 사인을 밝힌 보도가 없어 정확한 사인은 알려진 바가 없다.
3. 여담
- 유대경의 시연 영상을 보고 비속어까지 쓰며 크게 비판했다. 주된 내용은 받아주는 상대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기 때문에 실제 움직이는 상대방에게는 쓸 수 없는 동작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실제로 동영상까지 찍어가며 상대방이 움직이면 시연에서 나온 동작이 전혀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고, 심지어 동영상에서 한번 붙어보자는 취지의 발언도 하였으나[3] 유대경은 무술에 대한 의견이 다른 거라며 대응하지 않다가 최근에 댓글을 지웠다.
- 결혼하여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인 박기영은 현재 아버지의 뒤를 이어 권도를 이끌고 있다.
[1] 출생 당시에는 읍, 박현성이 10~20대였던 때는 대천시였다가 그의 암흑기였던 1995년에 보령시와 통합되었다.[2] 체육관 개관 이전에 지도경력 연대가 맞지 않는다. 본인이 체육관 설립 전에 무보수로 5년여 동안 청소년들에게 복싱을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데, 상대 조직에게 테러를 당한 1993년과 1997년 사이가 딱 햇수로 5년여 정도로 수감과 수술시기까지 감안하면 체육관 개관 전 박의 지도경력이 5년이 되기는 힘들다. 아무래도 조직폭력배 시절 후배들에게 복싱을 가르쳐 준 경험 등이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는게 맞을 듯.[3] 다시는 헛소리 못하게 두들겨 패주겠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한 번 실전에서 너의 기술과 실력을 증명해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