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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2 01:34:08

필립 카니

필립 카니
Philip Kearny
파일:1000012699.jpg
본명 필립 카니 주니어
Philip Kearny Jr.
출생 1815년 6월 1일
미국 뉴욕주 뉴욕시
사망 1862년 9월 1일 (향년 47세)
미국 버지니아주 챈틸리
복무 미합중국 육군
프랑스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소장
복무 기간 1837~1851
1859~1861
1861~1862
학력 컬럼비아 대학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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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뉴욕주 뉴욕시에서 부유한 아일랜드계 금융가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군인을 꿈꿨으나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할아버지는 군인이 되는 것에 반대했고 법조인이 되길 원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육군에 입대해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

자신의 삼촌 스티븐 W. 카니가 지휘하는 제1용기병연대에서 복무했고 알제리에 파병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미국-멕시코 전쟁당시 테레호테에 주둔해있다가 리오그란데 강을 건너 윈필드 스콧휘하에 있었다. 대위로 진급 후 콘트레라스, 추루부스코 전투에 참가했고 기병 돌격중 왼팔에 부상을 입었다.

1851년 소령계급으로 퇴역하고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그러다가 1859년 나폴레옹 3세의 요청으로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육군소속으로 있었으며 당시 교황령을 호위하는 교황군으로 바티칸을 지켰고 솔페리노 전투 당시 기병 돌격으로 공을 세웠다.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귀국해 준장으로 북군소속 제1뉴저지여단장이 되었다. 제1차 불 런 전투에 참가했고 윌리엄스버그, 페어뱅크스 전투에 참가했다. 반도 전역당시 포토맥군 휘하에서 공을 세웠으나 소극적인 사령관 조지 매클렐런과 자주 부딪쳤다.

1862년 소장으로 진급하고 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제2차 불런 전투당시 큰 피해를 받았고 챈틸리 전투당시 남군의 A. P. 힐의 부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비바람이 몰아쳐 시계가 한정된 상황에서 남군의 포위망에 걸려들었고 항복 권유까지 당했다. 거부하고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으나 남군의 총탄에 엉덩이, 어깨에 총상을 입고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