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이 전차를 운용하는 목적중 하나가 유사시 전차간의 전투가 벌어질 경우, 적의 전차를 잡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관통력이 떨어지고 고폭탄 위력이 높은 57mm 단포신포를 무장한 치하보다 관통력이 높아 대전차 능력이 높은 37mm 포를 장착해 할힌골 전투 때도 소련의 T-26이나 BT 전차와 대결하여 짧은 유효사정거리를 고속으로 근접해서 사격하는 방식으로 메꾸는 방식으로 싸움으로서 적어도 치로나 치하보다는 유용함을 보여주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에도 보병지원이나 수색용으로도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남방작전 당시 연합군이 생각도 못했던 곳에서도 기어나오는 활약을 펼쳤고, 이는 초창기 일본군 승리의 요인 중 하나로도 평가된다.
필리핀에서 미군의 M2A4 경전차와 M3 스튜어트 경전차와 접전을 벌였는데, M2A4, 스튜어트는 장갑과 화력이 하고보다 더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수적으로 열세인데다가 기습당한 상황, 미군 전차병들의 경험이 부족해서 그다지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M2A4, M3가 쏜 포탄이 하고에 명중하면 전면장갑을 뚫고 차체를 지나 후부장갑까지 뚫고 나가는 완전관통이 발생하는 데 반해, 하고가 M2A4와 M3를 명중시키면 철갑탄이 튕겨나가는 엽기적인 상황이 연출됐다.
이게 엽기적인 이유는 세 전차의 포가 둘 다 앞서 언급한 독일 라인메탈사의 PaK 36을 기반으로 한 포이며, 구경도 37mm로 동등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때부터 하고의 대전차 능력이 37mm 대전차포를 주포로 장비한 전차들 중에서 가장 뒤떨어지는 능력을 보유한다는 사실을 일본군이 알게 된다.
진흙탕에 돈좌된 하고 전차들을 조사하는 연합군
두 대가 뉴기니 섬에 있는 밀른 만 상륙에 투입되어 호주군을 상대로 선전했지만, 상륙한지 며칠 만에 거의 매일 퍼붓는 폭우 때문에 진흙탕에 빠져 유실되었다. 그래도 해당 지역이 늪과 밀림과 강이 얽힌 지역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일본군의 전차치고는 험지돌파능력이 높았다고 한다.
이렇듯 초반에는 나름대로 활약했지만 제정신차린 연합군이 등 보다 좋은 전차를 투입하게 되면서 빠른 속도로 전술적 가치가 하락했다. 그런데 이게 연합군이 제정신을 차려서라기 보다는 아프리카나 유럽 전선에서 도태되는 2, 3선급 장비가 넘겨지는 경우에 가까웠다. 즉, 영미 연합군의 도태장비보다 못한 일본군의 주력전차라는 의미.
프랑스-태국 전쟁 당시 태국군의 주력 기갑차량으로 막 수입된 하고가 투입되었는데, 당시 프랑스 원정군은 잘해봐야 1차 대전 말 ~ 전간기 중반급의 장비만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반면 태국은 일본으로부터 각종 무기 및 영국으로부터 빅커스 Mk. E B형 등 강력한 기갑장비와 폼폼 포 등의 대공화기 및 함선까지 소유하고 있었기에 프랑스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 제국의 중재로 전쟁은 태국의 승리에 가깝게 종결되었으며, 태국 또한 일본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추축국에 가입하게 되었다.
1942년 6월 초 슘슈 섬에 주둔하던 제11전차연대 소속 95식 경전차 하고 중 극소수가 알류샨 제도의 키스카 섬 침공에 투입되었다. 1943년 미군의 키스카 섬 탈환 작전인 Cottage 작전 당시 95식 경전차 하고 2대가 미군에게 노획되어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미국 메릴랜드의 애버딘 병기 시험장으로 보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