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하성구(河成九) |
생몰 | 1893년 5월 25일 ~ 1943년 4월 13일 |
출생지 | 제주도 제주시 삼도동 |
사망지 | 광주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하성구는 1893년 5월 25일 제주도 제주시 삼도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제주도 축항사무소(築港事務所) 인부 감독으로 재직했다. 그러다가 1937년 10월부터 1939년 봄까지 제주읍 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선교사 손신부(孫神父, 다우슨 패트릭)에게 수차례에 걸쳐 제주도 모슬포 소재 일본 해군비행장의 구조와 확장공사, 제주도 동쪽 해상 우도에 위치한 해군 특설망루(特設望樓)의 구조와 임무에 관한 정보를 알려줬다.또한 1940년 9월부터 1941년 9월까지는 제주읍 천주교회의 전도사장(傳道師長)으로서 손신부와 수차례에 걸쳐 "중일전쟁과 영독전쟁(英獨戰爭)의 전황에 관한 일본 신문들의 보도는 거의가 허위이다", "만일 영국과 일본이 전쟁을 벌이게 된다면 마땅히 일본이 패전해야 한다”, “일본은 전몰자가 많다 보니 소집에 응할 만한 군인이 더 이상 없다”는 내용의 시국담을 했다.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그는 1941년 말에 손신부 등과 함께 경찰에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후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국방보안법 및 군기 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과 육해군 형법 위반으로 금고 6개월이 병합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43년 4월 13일 광주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하성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