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호 | 낙삼(樂三) / 백헌(白軒) |
본관 | 청주 한씨[1] |
출생 | 1878년 7월 18일 |
경상도 평해군 원서면 하소태리 (현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 | |
사망 | 1935년 11월 26일[2] |
강원도 울진군 | |
묘소 |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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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한영육은 1878년 7월 18일 경상도 평해군 원서면 하소태리(현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소태리)에서 아버지 한필석(韓弼錫)과 어머니 현풍 곽씨 곽진욱(郭震郁)의 딸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06년 3월 6일 영해군 읍내면(현 영덕군 영해면)에서 의병을 일으킨 신돌석 의병장에게 가담해 도선봉장(都先鋒將)이 되어 30여명의 의병들과 함께 백암산, 일월산에 본영을 두고 영양, 영덕, 영해, 평해, 울진 등지에서 3년여에 걸쳐 일본군과 교전했다.
그러나 신돌석이 순국한 후에는 은거했다가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장날을 기해 일어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여 장터에 모인 수천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주재소를 파괴하며 경찰 제복, 경찰 제모 등을 빼앗고 면사무소, 학교 등의 기물을 파괴했다고 한다.
이후 울진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35년 11월 2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한영육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