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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7 09:51:38

한유수쿠스

한유수쿠스(중국가비알)
Hanyusuchus, Chinese Gharial
파일:Chinese Gharial.jpg
학명 Hanyusuchus sinensis
Iijima et al., 2022
분류
동물계(Animalia)
척삭동물문(Chordata)
계통군 석형류(Sauropsida)
악어목(Crocodilia)
가비알과(Gavialidae)
아과 가비알아과(Gavialinae)
†한유수쿠스속(Hanyusuchus)
  • †한유수쿠스 시넨시스(H.sinensis)모식종
    Iijima et al.,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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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CCCCC,#212121>한국어 한유수쿠스, 중국 가비알
영어 Hanyusuchus, Chinese Gharial
중국어 韓愈鱷屬, 中華韓愈鰐
일본어 ハンユスク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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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유수쿠스.jpg
복원도

1. 개요2. 특징3. 역사 및 멸종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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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sinensis.jpg파일:한유수쿠스 뼈.jpg
파일:한유수쿠스 화석.png
중국 박물관에 전시된 화석
중국 남부 지역에 서식했던 악어의 일종이다. 속명의 뜻은 '한유 악어'이며 '중국 가비알'이라고도 부른다. 고대 가바알아과 중 최근까지 살았던 종이자 인류에 의해 멸종된 악어이다.

2. 특징

파일:Iijima et al.jpg
크기
파일:Hanyusuchus.jpg
생김새

화석은 1963년에서 1980년 사이에 처음 발견되었지만 공식으로 학명이 붙은 건 2022년이다. 이 악어와 외관상 가장 가까운 현생 동물은 말레이가비알이며 몸길이가 5.43~6.19m 정도로 현생 가비알보다 조금 큰 정도였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몸 색깔은 현생 악어들과 별 차이없는 갈색을 띈 노란색 또는 짙은 녹색 혹은 흰색 계열의 색이었다고 하며 새끼는 노란색이나 흰색이었다 한다.

3. 역사 및 멸종

총 6개의 표본이 남아있으며, 모식 표본은 기원전 제4천년기 경의 화석으로 추정된다. 당나라, 송나라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광둥성, 광시 좡족 자치구, 홍콩, 마카오, 하이난섬 등 중국의 제일 남부 지역에서만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천적이자 경쟁 상대로는 호랑이와 비단뱀, 바다악어 외에는 없었을 듯하다. 가비알처럼 물고기만 먹고 살았던 게 아니라 말레이가비알처럼 성격이 사납고 거친 동시에 공격적이여서 육지 동물도 자주 사냥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가축을 자주 사냥했기에 사람과 한유수쿠스의 대립은 상당히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1]

1461년의 보고서에는 항저우 동쪽에 "악어 동굴"에 대한 기록이 있으며 1630년 하이난 섬에서 악어에 의한 가축과 인명피해 기록을 끝으로 더 이상의 보고서가 없다.

결국 중국 남부 지방에 인구가 계속 증가하면서 해수 구제나 가죽 수요 등의 이유로 폭탄, 독극물[2] 같은 여러 방법으로 남획되고, 서식지도 계속 파괴되면서 먹이가 부족해지고 살 곳도 잃어가다가 결국 중국 명나라 시대[3]인 15세기 무렵에 기록이 거의 없는 걸로 보아 멸종한 것으로 여겨진다.[4]

4. 기타

양쯔강악어, 바다악어와 함께 의 모티브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거대한 크기와 인간을 공격했다는 포악한 성격을 고려하면 이쪽이 매우 유력한데, 일례로 기원전 3천년기에 살았던 'SM E1623'라는 표본은 청동기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즉 한유수쿠스와 인간은 낮게 잡아도 최소 기원전 30세기 무렵에 이미 충돌이 있었다는 것인데, 당시 청동무기로 이런 거대한 악어를 상대하는건 그야말로 용을 상대하는 것과 다를바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의 접촉사례가 그대로 전설로 남아 용의 전설로 승화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하지만 위, 진, 남북조 시대에는 이미 양쯔강악어와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해진 모양이다. 당나라 무렵에는 후레이(忽雷)나 고레이(骨雷)라는 호칭으로 악어와 구분해서 불리웠다고 한다. 이때는 이미 전설상의 용과 완전히 인식이 분리된 것으로 보인다.

광동, 대만, 일본의 화석 연구에 따르면 한유수쿠스가 토요타마피메이아에 포함될 수 있어 속명이 변경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화석에서 일부 연조직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한유수쿠스의 고대 DNA를 추출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악어의 진화를 보다 정확하게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만약 멸종되지 않았다면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렸을지도 모르는데 멸종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복원을 시도한다는 소식이 없다.[5]


[1] 당시 중국 남부에서는 '호랑이가 여름에 물속의 악어로 변하고 악어가 가을에 산림의 호랑이로 변한다'는 신화가 퍼지기도 했고, 장이라는 10살 정도의 어린 아이가 한유수쿠스에게 잡아먹히자 해당 개체가 사냥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특히 발굴된 화석 대부분이 날붙이에 절단된 흔적들이 발견된다.[2] 악어가 발견되자 물에 산화칼슘을 왕창 뿌려버렸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3] 당시 한국은 조선 시대였다.[4] 바다악어의 중국 남부 개체 또한 19세기에 멸종했다.[5] 선사 시대에 멸종된 매머드나 털코뿔소도 복원 시도가 있다. 명나라 때 유물은 문화대혁명으로 거의 다 사라져 버렸지만, 동시대 다른 지역의 유물은 많이 남아있다. 복원을 시도할 만큼의 DNA를 추출할 흔적이 문화대혁명으로 사라져버린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