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62633><colcolor=#fff> 해롤드 토마스 핀니 Harold Thomas Finney | |
출생 | 1956년 5월 4일 [1] |
캘리포니아 Coalinga | |
사망 | 2014년 8월 28일 (향년 58세) |
알코어 생명연장 재단에서 냉동수면 중 | |
학력 |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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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프로그래머, 암호학자비트코인의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2] 인물 중 하나
2. 생애
- 1956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 콜링가(Coalinga)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석유 공학자(petroleum engineer)였다.
<colbgcolor=#262633><colcolor=#fff> 1972년 고등학생 시절 - 1979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CalTech) 수학과를 졸업했다.[3]
- 게임개발 분야에서 일했고, 암호학에도 관심이 많을 뿐더러 실력도 뛰어나 최초로 공개키암호화 기법을 도입한 PGP[4] 개발자 중 한 명이다.
- 2004년, 비트코인에서 사용하는 작업증명(PoW) 방식과 유사한 RPOW를 직접 개발하여 화폐를 설계하기도 했다. 관련자료
- 핀니는 2번째 비트코인 채굴자이자 최초의 비트코인 수령자였다. 1번째 채굴자였던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의 거래(트랜잭션)를 하기 위해 비트코인을 할 핀니에게 주었다. 참고로 지갑에서 지갑으로 비트코인을 보내는 게 트랜잭션인데, 채굴은 원래 비트코인이 있던 지갑에서 보내는게 아니라 생성되는 것이므로 "코인베이스 트랜잭션"[5]이라고 부른다. 즉 최초의 코인베이스 트랜잭션은 제네시스 블록의 사토시 나카모토가 한 것이며, 최초의 진짜 트랜잭션은 사토시 나카모토와 할 핀니가 같이 한 것이다.
- 초기 비트코인을 사토시 나카모토와 같이 디버깅한 인물이다. 그는 비트코인포럼에 남긴 유서에서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고쳐야 할 부분을 설명해서 메일로 보내면 사토시 나카모토가 그대로 고쳐서 검수받았다고 한다. 떠오르는 샛별이던 사토시 나카모토와 달리, 할 핀니는 이미 프로그래밍과 암호학에서는 엄청난 업적을 가진 대선배였고, 사토시 나카모토(1975년생이라고 주장)와 20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났기에, 사토시 나카모토를 암호학계의 훌륭한 후배 청년 겸 현자로 생각하면서 그의 탈중앙화라는 신념이 실현되도록 도우려 하였다고 한다.
- 2009년,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진단을 받았다. 그뒤, 병세가 심해져 눈동자와 손가락 일부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핀니는 2013년 비트코인 포럼에 유서에 해당하는 마지막 편지를 작성했는데[6], 자신이 1남 1녀의 아버지였으며 자녀들에게 자신이 초기에 채굴했던 비트코인들[7]을 미리 물려주었다고[8] 밝혔다. 핀니는 이후 2014년 8월 28일 미국 애리조나 주 스코츠데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유언에 따라 현재 냉동인간으로 보존된 상태이다. 유품인 노트북에서 사토시와 주고 받은 이메일이 발견되기도 했다.
3. 사토시 나카모토
핀니를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핀니가 사토시 나카모토와 연락을 주고받은 몇 안되는 인물이며, 비트코인의 핵심적인 개발에 매우 깊게 관여[9]했기 때문이다. 또한 핀니는 본인 자신부터가 암호학계에서 권위있는 인물이었고, 다른 사토시 후보들 중 그처럼 뛰어난 커리어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동일인물 설은 핀니 본인도 알고 있어서 자신은 사토시가 아니라며 부정하긴 했다.이 가설의 확률을 높인 것 중 하나는 핀니가 루게릭병 투병 후 사망했다는 것[10]에서도 상당 수 기인하는데, 사토시는 외부와의 소통을 현재는 거의 하지 않고 있는 상태[11]고 그의 소유로 알려진 코인 지갑의 잔액 변동도 일절 없는 상태인데, 사토시=핀니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소통이 없는 것과 잔액이 변동하지 않는 것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에 대해서 부정적인 증거[12]나 의견도 존재해서 확신의 영역은 아니다.
[1] 살아있다면 ([age(1956-05-04)]세)[2] 가장 강력한 후보[3] 공학학사(BS in engineering)[4] 1990년대초 짐머만과 함께 개발했으며 암호화 프로그램의 프로토 타입이라 불린다.[5] 코인베이스라는 비트코인 거래소는 여기서 이름을 따서 지었다.[6] 당시 이미 말기로 가던 과정이라 손과 발 같은 몸을 전혀 못 움직이는 상태였고, 생전의 스티븐 호킹과 마찬가지로 눈동자 움직임을 추적하여 작동하는 기계로 컴퓨터를 이용하였다.[7] 그는 70여개의 블록을 채굴했었다고 밝혔고 그것이 다 남아있다고 유서에 썼으므로, 3500개가 넘는 비트코인을 물려준 것이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면 800~1000억원어치 정도되지만, 비트코인이 수십만원도 안되던 2013년에 물려준거라 수십억원 정도일때 자녀들이 다 팔았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다.[8] 그는 여기서 비트코인을 일부러 legacy라고 표현하며 재산임을 강조했다.[9] 후술될 자칭 사토시 나카모토인 제임스 칸도 "내가 비트코인 개발과정에서 가장 존경하고 신뢰한 사람은 할 핀니 한명 뿐이었다"라고 글을 썼었다.[10] 할 핀니는 2011년에 루게릭병에 걸려 은퇴했고, 비트코인은 2008년말부터 2009년초에 만들어졌다. 심지어 당시 그는 중년의 아마추어 장거리 달리기 선수였다. 평소 달리기 운동을 좋아하여, 50대의 나이에도 20~30km 사이 거리의 미국 내 일반인 아마추어 달리기 대회에 출전했을만큼 건강하던 사람이었다.[11] 앞서 서술했듯 2020년대 들어 나타난 적이 있으나 그의 평소 지론과 달랐기 때문에 해킹으로 여기는 추측도 있는 상태다.[12] 이를테면 사토시가 활동하던 시간에 달리기 대회에 있었다는 알리바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