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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시 나카모토 サトシ・ナカモト ([ruby(中, ruby=なか)][ruby(本, ruby=もと)][ruby(哲, ruby=さと)][ruby(史, ruby=し)]) | Satoshi Nakamoto | |
<colbgcolor=#000><colcolor=#fff> 직업 | 개발자 |
출생 | 불명[1] |
국적 | 불명[2] |
전문 분야 | 암호학, 컴퓨터과학, 금융공학 |
업적 | 블록체인, 개방형 암호화폐, 비트코인 네트워크 창시 |
자산 | 최소 100만 BTC[3] |
링크 | P2P found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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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원 미상의, 암호화폐 비트코인 창시자.2. 상세
2007년, 비트코인 코드작성을 시작으로 2008년 10월에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제목의 9쪽짜리 논문을 암호기술 메일링 리스트(The Cryptography Mailing List)에 올렸고, 2009년도에 Bitcoin Core 프로그램이 공개되며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다.위치 추적이 어려운 토르 등을 이용해 비트코인 활동을 했다, 언어는 영어만을 사용했는데, 사실 사토시가 활동한 사이트는 영어권 사이트였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구태여 영어 외의 언어를 사용할만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쓰지 않았던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한자명은 비록 밝히지 않았지만 일단 가장 일반적으로 인명에 사용되는 한자를 통해 '中本哲史'라는 표기로 사용한다. 일본 이름에서는 '사토시'가 성씨로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나카모토는 흔하게 있는 성씨인 점, 그리고 동양권은 영어로 이름을 소개할 때 성씨와 이름을 바꾸어 쓰기 때문에 본래대로 읽는다면 나카모토 사토시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로 사용했기에 이 문서에서는 존중 차원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부른다.
Bitcoin Core도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 개발자다.
그는 2010년까지 다른 개발진들과 직접 비트코인 소스코드를 수정하였고, 2011년에 비트코인 개발을 이어나갈 후계자를 선정한 뒤 떠났다.
2021년 2월을 기준으로 세계 27위의 부자이다.# 이 재산 규모는 오로지 그가 갖고 있는 비트코인으로만 계산된 것이다.
참고로 2009년 1월 3일 사토시 나카모토 혼자서 비트코인 첫 채굴을 시작[4]하였다. 이후 보름 정도 당대 유명 암호학자였던 할 핀니와 함께 15일 정도의 디버그 작업[5]을 하였고, 그 뒤부터 다른 이들도 채굴을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사토시가 가진 지갑들[6]에 있는 비트코인을 단 한 번도 판 적이 없다.[7] 즉 사토시는 자기가 만든 비트코인의 값어치가 수천만 배로 늘어나고, 90% 이상의 하락폭을 수차례 겪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출금하지 않고 수 년간 계속해서 채굴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토시가 비트코인의 미래를 다른 수많은 학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낙관적으로 판단했으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강심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8][9] 오히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유저나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진짜 멸망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사토시의 지갑에서 비트코인이 빠져나갔을 때"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10]
2024년 기준으로 밝혀진 것만 최소 100만 BTC(약 100조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이는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암호화폐 투자회사 그레이스케일 트러스트가 보유한 65만여개의 1.7배에 이르고, 전문 암호화폐 투자회사는 아니지만 엄청난 양을 보유하고 있는 MicroStrategy가 보유한 10만 5천개의 10배 이상이다.[12]
3. 정체?
자세한 내용은 사토시 나카모토/후보 문서 참고하십시오.비트코인 시스템을 발명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 그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양한 음모론이 만들어졌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재단 웹 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를 보면 2024년 기준 49세이며, 일본에 거주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를 전혀 사용한 적이 없으므로 나이, 거주지, 이름 등 어떤 것도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정도 영향력이면 전세계의 정보기관들이 탐낼 만한데 아직까지도 영국 MI6, 중국 MSS, 러시아 SVR, 대한민국 NIS, 일본 CIRO 등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모사드나 CIA(!!) 조차도 결국 끝내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13]
반대로 한참 전에 이미 사망한 인물이라는 사망설도 있다. 비트코인 공개 이후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 전 세계가 가장 관심갖는 사람의 정체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는 것은 자신을 각국의 정보기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잘 숨기고 있다는 가능성보다는, 정보기관들의 본격적 추적 이전 시점[14]에 이미 질병이나 사고로 죽었기에 추가 활동을 전혀 안 해서 못 찾는 것이거나, 이미 죽은 걸 정보기관이 확인했기에 공개하지 않는 것일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알려지다시피 사토시의 조력자 할 핀니나 데이브 클라이만 역시 이미 사망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영어표현중 미국식 영어표현과 영국식 영어표현이 혼재되어있었으며 특히 그가 2년 동안에 작업했다고 주장하는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작업은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힘든 작업이라는 점으로 보아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며 영국식 영어를 쓰다가 미국식 영어를 가끔 섞어 쓰는 것이 의도적으로 신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15]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Samsung'[16], 'Toshiba', 'Nakamichi', 'Motorola'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억지로 끼워 맞추기식에 가깝다.
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에 대한 제보를 받았었다. 이것을 찾아내면 그알 팀은 CNN, BBC, NHK도 못해낸 세계적인 탐정방송 팀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큰 소재. 1000여 개 소재 중에서 비교하자면 나머지 모든 소재를 합친 것보다 국제적으로 관심도 높은 이슈이기도 하다.
코인시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면서 오히려 철저하게 익명성을 유지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는 100만 비트코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기 위해 목숨까지 노릴 사람들이 세상에 널렸으니, 살고 싶다면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억측이기도 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이 천문학적인 금액인 것은 맞지만, 해당 논리대로라면 세계적인 대부호들은 전부 신변의 안전을 위해 공식석상에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직 생존해있고, 의도적으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비트코인의 신뢰도와 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익명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비트코인의 신뢰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약 살아 있는 개인이라면, 비트코인의 위상이 그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공공에 모습을 비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체를 드러내거나 그의 코인 지갑에서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 비트코인이 다단계 스캠과 비슷해지며 신뢰도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17]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망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된다면 그에게는 아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비트코인의 현금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가장 많은 물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물량이 사망으로 인해 아예 묶여버리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의 자사주 소각을 빗대어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암호키 등을 이어받는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리하자면, 여러 추측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4. 기타
4.1. 딜레마
2020년 5월 21일 블록체인을 모니터링하는 @whale_alert라는 트위터 계정에서 2009년 2월에 채굴된 40BTC가 다른 계정으로 이체되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이 결과 비트코인은 일시적으로 4% 하락했다.이는 사람들이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파는 것을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사토시는 수십조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세계 20위권의 부자이지만 정작 자신이 비트코인을 매각하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대폭락하여 물거품이 될 수 있는 딜레마존에 놓여 있는 것이다.[18]
다만 그동안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여러 개이며 사실 확실한 것도 있지만 추정인 것도 많은데, 옮겨진 BTC가 비트코인 역사의 극초기인 2009년에 채굴된 것은 맞지만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나오는 고유한 패턴[19]이 해당 지갑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면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 그러니 그냥 초기 채굴자 중 한 명이 비트코인을 10년 넘게 안 건드리고 살다가, 긴 세월 후 큰돈이 필요해져서 전송한 걸 수도 있는 것이다.
의외로 2009년~2010년에 채굴된 비트코인 중 거래가 안되는 비트코인의 양은 매우 많다. 비트코인 코어의 구조가 초기에 많은 양을 채굴하게 되어 있어서 2년이면 2100만개 중 500만개 이상인 25퍼센트나 채굴된 시기이기 때문이고, 시간 내에서는 적은 분실[20] 비율이 나온다 해도 엄청난 양이 분실되기 때문이다.
4.2. 그 밖에
바티칸 기적 조사관의 작가 후지키 린이 소설 투고 사이트 카쿠요무(カクヨム)에 2019년 2월부터 올리고 있는 단편 《투명인간 살인사건(透明人間殺人事件)》에서는 로렌 디루카가 사용하는 가명 중 하나로 나온다. 가상화폐를 발명해 벌어들인 돈이 한 국가의 예산을 넘길 수준이라고 한다.여담으로 사카시 나카모토, 나토시 사카모토 등 이름 오자 표기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당장 사카시 나카모토로 검색되는 기사들이 있을 정도.
2021년 9월 17일, 헝가리 암호화폐 단체들이 만든 사토시의 흉상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원에 설치되었다. #
[1] 언론에서는 주로 1975년생이라고 추측한다.[2] 본인은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과 할 피니가 유서에서 "일본 혈통의 지적인 청년'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라고 언급한 것 외에는 외에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일본의 표현을 인용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본인으로 추측할만한 근거가 거의 없어서 일본인을 자칭한 것일 뿐 일본인은 아니라는 추측도 있다. 또한 사토시가 작성한 소스코드 주석과 포럼의 글 등에 영국식 영어표현(grey·colour·bloody hard 등)이 자주 보이는 것과, 제네시스 블록에 영국의 언론 타임지 1면을 암호화하며 인용한 것을 미루어보아 영국인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위와 같은 영국식 영어표현 역시 영국인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타임지의 경우에는 비영어권에서도 유명한 언론이기 때문에 이를 인용했다고 영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철저히 숨기고 활동했기 때문에 어느 추론에도 확실한 근거가 없어 국적이 불명으로 남아있다. 프로필에는 일본인이라고 적혀있지만 일본 시간대로 오후 2시~8시에 인터넷 활동이 급감하여 수면 시간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본에는 거주하지 않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3] 2025년 1월 기준 최소 150조 원 이상[4] 이 최초의 블록을 제네시스 블록이라고 부른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제네시스 블록과 함께 처음 만든 자기의 최초 지갑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서 딱 첫 채굴인 비트코인 50개가 있는채로 두었고 퍼블릭 키는 공개된 상황이었는데, 훗날 사토시 나카모토를 존경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가 나타나지 않게 된 뒤로 10여년간 계속 그 지갑에다가 존경의 의미로 비트코인을 0.1~0.00001개까지 다양하게 보내기 시작했고, 현재는 67.몇개의 비트코인이 들어있다. 약간 민간신앙의 돌탑 쌓는 심리와 비슷하다.[5] 디버깅을 하면서는 단둘이서만 계속 채굴과 전송을 테스트개념으로 했었다. 처음에 다른 컴퓨터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을 보면서 몇몇 디버깅해야 할 오류를 보고, 채굴은 커녕 비트코인포럼에서 비트코인과 사토시 나카모토를 까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비트코인의 어마어마한 암호학적 가치를 정확히 인지한 암호학 전문가 할 핀니 혼자 적극적으로 도왔다. 처음에는 퍼블릭키-프라이빗키 시스템을 구동하는 코딩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할 핀니가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이메일로 조언하여 고치게 한걸로 알려진다. 이후 그게 문제없이 해결됐는지 보려고 비트코인 최초의 전송을 사토시 나카모토가 할 핀니에게 했던 것이다. 당시 할 핀니는 게임베타버전 돌리듯이 70개가 넘는 정도의 비트코인 블록을 채굴하며, 문제되는 부분을 모두 사토시에게 조언하였다.[6] 한 개의 지갑에 넣은 것이 아니라 십여개의 지갑을 만들어 분산 저금했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하면서 수많은 익명의 채굴자들이 등장했고 할 핀니나 훗날의 laszlo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들을 전부다 명확히 구별할 수는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당시 액션을 통해 명확하게 추정되는 지갑은 9개 정도가 있다. 2020년에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으로 추정되던 지갑에서 10년만에 거액의 비트코인이 출금되어 생존설이 나돌았으나, 이후 오히려 그 사람은 사토시가 아니라 그냥 정체를 알 수 없는 초기 채굴자들 중 한명이었다고 암호화폐 세계에서는 결론내렸다. 어떤 사연으로 프라이빗키를 써놓은걸 잃어버렸다가 세월이 흘러 찾았다거나 하는 경우로 간주된다. (할 핀니도 비트코인에서 손 놓은 뒤, 2011년에서야 자신이 채굴한 비트코인을 찾아서 자녀들에게 전송하였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지금도 사토시 나카모토소유로 추정되는 것 이외에도 장기간 출금 안된 비트코인 지갑들은 꽤 많이 존재하고, 주인이 프라이빗키를 잃어버린 죽은 지갑이라고도 불리지만, 주인이 오랜 세월이 지나 프라이빗키를 찾을 가능성은 있다는 대표 사례이다.[7] 초창기에 할 핀니(사토시에 이어 비트코인 채굴에 두 번째로 참여)에게 시범적으로 10BTC를 보낸 것외엔 아예 지갑에서 꺼내지도 않았다.[8] 초기 비트코인은 화폐나 투자수단이라기보단 일부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의 놀이(?)에 가까웠다. 그런데 장난삼아 5000원을 주고 모은 장난감 지폐가 갑자기 10억원이나 100억원으로 상승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놀이가 아닐 것이다. 심지어 몇 달 뒤 이것이 7천만원으로 급락했고, 시간이 지나 11억원이라는 최고점이 오는 등 급락이 심해 저점에서의 고통, 고점에서의 현금화 욕구를 반복해서 겪는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특히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이 이 장난감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다. 상황이 이런데 안전한 현금자산으로 바꾸겠는가, 아니면 손해를 보면서도 몇 년에 걸쳐 돈과 시간을 써가며 장난감 지폐를 계속 수집하겠는가?[9] 다만 암호키나 비트코인을 저장한 하드웨어 지갑을 분실했을 가능성도 높다. 장난으로 비트코인 몇 개 캐놓거나 다크웹에서 사놓고 암호키, 하드, 혹은 다크웹 아이디를 분실해서 떡상한 후에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꽤 많다.[10] 주식의 경우도 창업자나 경영진이 돈벌이를 위해 주식을 매도하는 소식은 무책임한 행위이자 악재로 여겨지며, 그 이후에 주가가 폭락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산도 깎아먹는 효과가 나게 된다.[11] 사토시가 사용했던 컴퓨터에서 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이며 이보다 많을 가능성도 존재한다.[12] 이후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계속해 보유량을 늘려 2024년 12월 기준으로 약 44만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2배 이상 격차가 있다.[13]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정보기관이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란 정보기관 입장에서 확실한 대어(大魚)이다. 찾아낸다면 그 자체로 정보기관의 실력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에 각국 정보기관이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근데 사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정보기관이 찾지 못했다는 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긴 하다. 아니면 이미 찾았지만 비트코인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굳이 공개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암호화폐 시장 초기에 채굴된, 즉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는 40BTC가 다른 계정으로 이체되었다는 것만으로 가격이 4% 하락했는데 개발자의 정체가 알려지는 순간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14] 초기 비트코인은 딥웹용 거래수단이나 범죄용 화폐 정도 외의 효용이 없었고 이후에도 게임아이템 거래용 정도 화폐로 이용되곤 했기에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세계 여러 정부 측에 딥웹 운영자 정도의 관심 외에 큰 관심을 받지도 않았다. 2011년 비트코인 백서를 중국어로 배포하고 채굴사업에 뛰어든 우지한을 필두로 중국이 채굴시장의 중심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조금씩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2012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의 소송으로 유명한 하버드 쌍둥이들의 등장 등 여러 이슈가 나오며 2013년부터는 전세계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는 범죄 중에서도 세계규모의 범죄인 불법 마약 거래에서 대규모 거래들이 비트코인으로 발생하며 FBI와 CIA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15] 딥웹의 위키백과인 히든위키만 봐도 수많은 트릭으로 자신을 감추라고 친절히 가르치고 있다. 딥웹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신분감추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여러 영어 화자들도 국제교류가 활성화하며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인도식, 크리올(...)식 표현을 아무렇게나 섞어 쓰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16] 'Sanyo'라는 설도 있다. 사토시가 이름 그대로 일본 출신이라면 이 설이 더 가능성이 높다.[17] 비탈릭 부테린도 비슷한 이유로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더리움을 매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다닌다.[18] 이는 주식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주주가 명확한 이유없이 자신의 지분을 매도하면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주주들이 블록딜로 거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비트코인의 문제는 주식보다 등락폭이 훨씬 크다는 거지만.[19] 초기 채굴때 코인베이스 트랜잭션에 암호화된 문구를 종종 넣었다. 하지만 100% 다 넣은 건 분명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 시그니처 패턴이라거나 무조건 있어야만 사토시 나카모토이고 아니면 무조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20] 퍼블릭키나 프라이빗키를 분실하기 쉬웠으며, 하드디스크를 분실하거나 파손될 경우 영영 찾을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