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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9 01:28:04

헝거포드 총기난사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범인3. 사건 전개4. 사건 이후

1. 개요

Hungerford Massacre
1987년 8월 19일 영국 사우스이스트 잉글랜드 버크셔주의 헝거포드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

2. 범인

파일:마이클 라이언.jpg[1]

마이클 라이언(Michael Robert Ryan)은 1960년 5월 19일생으로, 아빠가 50대 중반에 늦게 낳은 외동아들이라 가족 내에서 중요히 여겼다. 하지만 라이언은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6살에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조용히 지냈는데, 그 외엔 가족들간에 문제도 없고 해서 밖에서도 큰 문제 딱히 없었다. 18세가 되어서도 딱히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 마이클 라이언은 밀리터리 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밀리터리 룩과 위장복을 사고, 총에도 관심을 가졌다. 라이언은 총기 동호회에 가입했고, 권총을 시작으로 소총도 소유하게 됐다. 라이언이 소유한 총은 베레타 9mm 권총, AK-47, 그리고 M1 카빈 소총 등이었다.

하지만 총기 동호회에서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라이언은 평소 사격장에서 총을 쏘면서 지냈다. 또 헝거포드 인근에 있던, 소풍 명소로 유명한 새버네이크(Savernake) 숲에서 위장용 군복을 입고 누군가를 몰래 따라다니는 이상한 행동도 보였다. 그냥 따라다니기만 하고 누군가를 해치거나 하진 않았기에 사람들은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다 1985년 아버지가 별세한 이후 행동이 조금씩 달라졌다.

3. 사건 전개

1987년 8월 19일, 오후 12시 30분. 그날도 라이언은 숲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수잔 고드프리(Susan Godfrey. 35)는 소풍을 하러 아이 두명과 함께 숲을 찾았다가 중무장한 라이언과 마주쳤다. 겁에 질린 수잔은 도망쳤고, 라이언은 수잔에게 총을 겨누더니 13발을 쏴 살해했다. 아이들은 차에서 아직 안내려 살아남았으나 어머니가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아이들은 검은 옷 입은 사람이 엄마를 쐈다 말하지만 어른들은 믿지 않았다. 라이언은 자기 차를 타고 현장을 바로 떠났다.

얼마 안가 라이언은 잠시 주유소에 멈춰서 휘발유를 구입했다. 다른 사람이 오는 순간 주유소 내 가게로 들어가 총을 쏴 직원을 살해하려 했다. 직원은 급히 숨었고, 총은 발사가 안되어 간신히 살아남았다. 라이언은 직원을 살해하는 걸 포기한건지 다시 차에 타고 헝거포드로 돌아왔다. 그리곤 집에 들어가 총과 총알을 다시 챙긴 뒤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를 뿌리고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차에 다시 들어가 시동을 걸려 했으나 걸리지 않았고, 화를 내더니 다시 총을 챙겨 키우던 애완견을 쏘고 지나가는 이웃들에게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 향해 쏘고, 집 창문 안으로 사람이 보이면 그대로 쐈다. 사람들은 부상입고 급히 경찰에 신고했다. 7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입은 가운데, 라이언 어머니가 차 타고 돌아왔다. 어머니는 라이언이 총을 든 것을 보고 라이언에게 접근하는데 사람들은 막으려 했지만 어머니는 그대로 다가갔다. 라이언은 그대로 총을 2번 쏴 어머니마저 살해했다. 사우스 뷰 거리(South View Avenue)에서만 그렇게 7명을 살해했다. 그리고 헝거포드 공원에 가서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경찰 1명 출동했으나 그대로 살해당했고, 경찰을 죽인 라이언은 이젠 공동묘지로 걸어가 2명을 또 살해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헝거포드로 오는 모든 도로를 폐쇄,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 과정에서 몇몇 사람은 상황 모르고 그냥 들어갔다가 갇혀버렸다. 라이언이 지른 불로 연기가 높이 치솟아 밖에서 소방차도 왔으나 경찰에게 막혀 마을에 진입하지 못했다. 라이언은 프리오리(Priory) 거리에서 다시 총을 쏴 2명을 살해했다. 소식은 특수부대에까지 전해졌고, 특수부대가 동원되어 라이언을 막기로 했다.

라이언은 지나가는 차량에 또 총을 쏴 운전자를 살해하고, 2명을 부상입혔다. 이 와중에 몇명은 일부러 도망가게 해주는 모습도 보였다. 라이언이 고속도로에 다다랐을 때 경찰은 헬기까지 동원해 라이언을 찾기 시작했다. 라이언은 방향 돌려서 다시 프리오리 거리로 가서 2명을 살해했고, 지나가던 운전자 한명도 총으로 쏴 살해했다.

오후 1시 57분, 라이언은 존 오건트(John O'Gaunt)학교 교실 안에 숨어들었다. 이곳은 과거 라이언이 다녔던 학교기도 했다. 17시 좀 넘어서 경찰은 라이언 위치 파악 후 학교를 포위했다. 라이언은 경찰에게 자기는 어떻게 되는지, 엄마는 괜찮은지 등을 물었다. 그렇게 1시간 동안 대화가 이어졌고, 6시 52분 경 라이언은 마지막으로 몇시인지 물은 뒤 권총으로 머리를 쏴 자살했다.

오후 8시 10분에 경찰이 학교 진입해 라이언이 사망한것을 확인하면서 사태는 끝났다.

라이언은 16명을 살해하고 15명에게 부상입혔다. 이 사건은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난사로 기록됐다.

4. 사건 이후

라이언이 자살하면서 결국 그가 갑자기 왜 이런 일을 벌인것인지는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다.

마가렛 대처 영국 총리는 사건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 및 헝거포드 주민들을 위로했다.

사건 당시 21세였던 칼 해리스(Carl Harries) 21세는 헝거포드에서 5년 째 살던 군인이었다. 휴가 차 마을에 들렀다가 총기난사에 휘말린 칼은 라이언을 최대한 피해다니면서 사람들을 구했다. 이 공로 덕에 칼 해리스는 이후 계급이 올라갔다.

사건을 계기로 영국에서 총기 규제 강해져 1988년에 관련 법안 통과됐다. 더이상 민간인은 펌프 액션, 반자동 소총을 소유하는게 금지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권총은 소유 가능하게 통과됐다. 이 법적인 틈을 통해 9년 뒤 던블레인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17명이 살해당한 끝에야 모든 총기 소유가 금지됐다.
[1] 마이클 라이언의 유일하게 알려진 사진. 여담으로 이 사진은 혼자 찍은게 아니고 옆에 다른 사람과 같이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