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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28 00:27:45

호텔 뉴월드 붕괴사고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뉴 월드 호텔3. 구출 작전4. 사고 이후5. 유사 사고6. 기타


파일:뉴 월드 호텔 붕괴.jpg

1. 개요

1986년 3월 15일 싱가포르 세랑군의 리틀 인디아에 있었던 뉴 월드 호텔이 무너져내린 사고.

2. 뉴 월드 호텔

파일:뉴 월드 호텔 붕괴 전.jpg

1971년에 지어진 뉴 월드 호텔은 67개의 객실이 있었던 호텔로, 기둥은 36개, 층은 6층이었으며 가격이 싸서 인근 말레이시아와 인도에서 온 관광객들이 자주 사용했다. 기사 지하는 주차장, 1층은 은행과 식당이 있었고 2층엔 나이트클럽을 비롯한 상점가와 호텔 리셉션 데스크가 있었으며 3층부터 호텔이었고 처음엔 '세랑군 호텔' 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됐다. 옥상에는 에어컨과 물탱크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건물을 지을 때 건설자가 계산을 잘못해서 건물 자체를 약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건물을 지으면서 기둥이 건물 무게를 견디도록 해야하는데 기둥이 건물 무게를 못 견디는 상태였다. 이로 인해 건설 3년 만인 1974년 벽 곳곳에 금이 가고 1975년 5월엔 일산화탄소가 유출되면서 투숙객 35명이 의식을 잃는 사고도 일어났는데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1974년과 1976년에 호텔 벽에서 큰 금이 발견됐고 1975년엔 은행에 22톤의 금고를 추가했는데 건물 바닥에 큰 하중을 가했다. 1984년 호텔은 '뉴 월드 호텔' 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추가적으로 대형 에어컨을 설치했고 건물 벽에 도자기 타일을 붙이면서 호텔에만 약 50톤의 무게가 더해졌다. 거기다 1976년엔 대형 에어컨이 또 설치되면서 건물에 가해지는 무게 부담이 더 커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건물 옥상에 올라가는 대형 에어컨 실외기는 건물에 큰 부담을 끼친다. 이렇게 건물에 추가된 무게는 무려 100톤에 달했다.

1986년 3월 14일 나이트 클럽의 기둥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자 나이트 클럽 점주는 점검을 요구했는데 잠시 공사가 끝나고 나이트 클럽은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오전 7시 15분에는 벽에 붙은 거울이 벽의 균열을 못 이기고 깨지기도 했다. 다음날인 3월 15일 오전 10시 10분엔 지하 주차장에서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진다는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직원들은 급히 금간 기둥을 보수했지만 2층 호텔 리셉션 데스크쪽에서도 큰 금이 발견됐다. 오전 11시 20분엔 아예 건물 벽에서 통째로 콘크리트 덩어리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26분엔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결국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뉴 월드 호텔이 무너졌다.

3. 구출 작전

사고를 목격한 인근 주민들은 달려와 맨손으로 콘크리트 더미를 옮기면서 구조를 시작했다. 사고 8분 후 인근 소방서에서 급히 구조대가 출동했다. 사고 현장 인근의 피아노 상점이었던 이글 피아노 회사가 임시 구조작전 지휘소로 지정됐고 인근 세랑군의 상가들도 구조대원들이 모여 작전을 짜는 장소로 사용됐으며 인근 축구장은 헬기장으로 이용되어 피해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렇게 소방대, 경찰, 군인, 민간 봉사자 등 500여명이 모여 구조 작전을 시작했다.

사고 당시 호텔에는 28명이 있었고 이 중 11명이 살아남았으나 17명은 사망했다. 2층 나이트클럽은 비어 있었다. 문제는 1층과 지하에 있던 사람들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위에서 깔린 5층 규모의 콘크리트 더미와 에어컨, 물탱크, 가구등을 치워야 했다. 빨리 구조하지 않으면 밑의 산소가 바닥나 구조되기도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있었다. 구조대는 중장비를 동원해 콘크리트를 부숴 치우고 구조 작업을 계속해서 진행했지만 12시간이 지나도록 다 콘크리트 더미를 다 치우지 못했고 여전히 피해자들은 안에 갇힌 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새로운 방법이 제시됐다. 인근에서 지하철이 공사 중이었는데 당시 지하철 공사에 참여했던 아일랜드인 토미 갤러거(Tommy Gallagher)가 터널을 파서 피해자들을 구조하자는 의견을 냈다. 다음 날 6시 구조대는 이 방법을 택했다. 우선 크레인과 굴착기들을 먼저 철수시킨 후 카메라를 동원해 피해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했고 가스가 새어나오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내부를 살폈다. 안에 물이 차오른 것을 확인하고 펌프를 동원해 물을 우선적으로 빼냈다. 2차 붕괴가 조금씩 일어나던 상황에서 터널을 계속해서 이어나갔고 터널 파는 소리가 들리자 피해자들은 금속을 두드리며 자신들의 위치를 알렸다. 그렇게 건물이 무너진 지 2일이 지나서야 미쳐 빠져나오지 못했던 8명을 구조했고 시신 1구를 수습했다.

결국 이 사고로 33명이 사망했고 17명이 부상을 입었다. 기사

4. 사고 이후

싱가포르 정부는 싱가포르에 있는 모든 건물을 점검했다.

구조 작전에 큰 공을 세운 토미 갤러거는 싱가포르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사고 현장의 건물 잔해는 사고 이후 전부 치워졌고 1991년 3월 28일 새로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1994년 사고가 일어난 자리엔 객실 85개가 있는 포튜나 호텔이 들어섰다. 기사

5. 유사 사고

6.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