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98년 |
평안북도 삭주군 | |
사망 | 1927년 |
만주 | |
종교 | 천도교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홍석호는 1898년생이며 평안북도 삭주군 출신이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삭주군에서 3.1 운동을 주도한 뒤 부친과 함께 만주 집안현으로 망명하여 박장호, 조맹선 등이 결성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에 가담했다. 그는 대한독립단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국내외에서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1922년 대한독립단이 서로군정서, 벽창의용대, 과보군총영, 광한단, 보합단 등과 결합하여 대한통군부가 조직된 뒤 그해 8월 대한통의부로 개편되자, 그는 대한통의부에 가담하여 제4중대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제4중대장으로서 평북 위원 등지에서 일제 경찰을 사살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 1923년 1월 30일 위원군 밀산면 남파동에서 일제 경찰 20명과 교전하여 5명을 사살하고, 삭주군 구곡면에서도 교전하여 경찰 2명을 사살하였다. 1923년 6월에는 집안현에 주둔하고 있던 홍석호와 그의 부하 15명은 위원 사람 최문섭(崔文涉)의 밀고로 동월 23일 대안인 직동(直洞) 적 경찰 30여 명의 습격을 받았으나 적 다수를 사살하였다.
1923년 대한통의부가 의군부와 통의부로 분열되자, 그는 통의부 인사들과 함께 그해 8월 참의부를 조직하고 1926년 봄 제4중대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참의부 인사로서 군자금 모집에 활동했고, 1924년 5월에는 남만주 군인대표로 독립운동단체의 대동통일(大同統一)을 고창하는 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7년 독립군 단체간의 알력에 휘말려 살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홍석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