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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00:14:55

홍해성 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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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성 소극장
Honghaeseong Theater
파일:홍해성소극장.jpg
분류 극장, 공연, 영화 제작사
개관일 2023년 6월 11일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길 64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대표 홍혜선 대표(홍해성님의 손녀)
작품 대화, 뮤지컬 흥놀부뎐, 웰컴투 베가스(독립장편영화 포스트 프로덕션 중)
플랫폼 파일:네이버 블로그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홍혜선 대표 계정)

1. 개요2. 홍해성 연출가3. 공연4.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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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연극 전용 극장.

혜화역 근처에 있는 대학로의 소극장으로 연극 공연, 영화 제작, 공간 대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근대극의 선구자인 홍해성 연출가를 기리며 세워진 극장으로, 홍해성 선생의 친손녀인 홍혜선이 대표로 있다. 홍혜선은 홍해성 소극장의 대표이면서 감독과 배우, 작가이자 선교사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홍해성 소극장은 작품 <흥놀부뎐>을 공연할 당시 시각장애인들, 독거노인들, 보육원 아동들을 대상으로 극장에 초대하여 작품을 무료로 관극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홍해성 연출가의 신념중 하나인 '연극인은 사회에 공헌할 줄 알아야 한다.' 라는 정신을 이어나가려 하는 것임을 알렸다.

2. 홍해성 연출가

홍해성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한국의 스타니슬라브스키로 알려진 홍해성(洪海星, 1894년 10월 13일(음력 9월 15일) ~ 1957년 12월 6일)연출가는 본명은 홍주식(洪柱植)이며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연극인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극의 개척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주의에 입각한 연출을 처음 도입하여 서구적인 스타일의 근대극 수용의 기틀을 잡았으며 신연극의 씨앗을 뿌리고 싹 틔우기 위해서 일생을 바친 한국 연극계의 큰 별로 평가되고 있다.

1894년 경상북도 대구부 (현:대구광역시) 덕산동 229번지에서 5형제 중 3남으로 태어나서 대구 대남학교, 계성중학교 (오늘날 계성 고등학교의 전신)를 나왔으며 191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서 도쿄 주오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렇게 법을 공부하던 도중 홍해성과 절친했던 김우진이 "'식민지 청년이 법학을 공부하면 성공한다고 해도 동족 차별밖에 더하겠는가? 나는 극장 운영을 공부해 조선에 돌아가서 가산을 처분한뒤에 극장을 짓겠으니 자넨 그곳에서 활용할 연극 지식을 공부하라.'"라는 대화가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이렇게 그는 그길로 법학과를 자퇴하고 니혼대학 예술과로 학적을 옮겼고, 일본 신파극의 선구자인 오사나이(小山內薰) 가오루의 제자가 되었다. 1924년에 일본 신극의 산실인 스키지 소극장이 서게되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극장의 전속 배우로 입단한다.
1917년에 일본에 유학하던 시절 도쿄에서 학생 극 운동단체인 극예술협회를 결성하여 홍난파, 마해송, 최승일 등과 친분을 쌓기도 했으며[1] 1921년에는 독립운동기금의 모금 마련을 위해서 당대 최고의 여성 성악가이자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과 함께 대구 극장에서 공연을 펼치는 등 독립운동에도 힘을 썼다. 1935년부터는 한국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인 ‘동양극장’에서 연출가로 활동하며 400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이로 인해서 우리나라의 근대극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작품으로 <검사와 사형수>, <어머니의 힘>, <승방비곡>, <벚꽃동산>, <토막>, <검찰관>등 외에 수많은 작품들을 연출 하였으며 특히 일본에서는 축지 소극장에서 개막한 <밤주막>이라는 연극에서 배우로서 출연했으며 크게 히트를 한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본격적인 전문 연출가로서 한국에 근대극을 정착시키는데 큰 역할을 담당한데 이어서 동양극장으로 이적한 후에는 세련된 상업 연극으로 대중적인 극의 수준을 한단계 격상시켰다는 평을 받고있다. 그리고 신파극 식의 낡은 연출 스타일을 과감히 버리고서 사실주의적인 연극 방법론을 도입하여 대중극의 낭만주의와 조화시킨 개혁을 이룩하였다.

8.15 광복 이후에는 1950년에 대한민국 신극협의회의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말년에 불교 성극을 몇 편 연출한 것 외에는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았으며 1957년 7월에 국립극장에서 열린 국립극장 환도기념 공연이자 독일의 작가인 칼 쇤헬 원작의 <신앙과 고향> 을 연출한 것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을 끝으로 지병인 심장마비로 인해서 향년 64세로 별세하였다.

2001년에 방송된 KBS 2TV의 28부작 주말드라마인 동양극장에서는 배우 김영기가 홍해성 역을 맡았다.

홍해성 연출가의 66주기 기일인 2023년 12월 6일에는 홍해성의 연극세계를 조명하는 세미나가 대구예술발전소 수창홀에서 열리기도 했다.

파일:홍해성 세미나.jpg

3. 공연

1)연극 <대화>

파일:대화 포스터.jpg

연극 대화는 홍해성 소극장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연극으로, 대본이 없으며 관객 참여형 연극이다.
대본이 없는 작품이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홍혜선 배우의 연기력과 애드리브, 순발력을 감상할 수 있으며 관객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연극이다.

2)트로트 마당놀이 <흥놀부뎐>

파일:흥놀부뎐 포스터.jpg

트로트 뮤지컬 형식의 극으로, 장르는 코미디이다.
홍해성 소극장에서뿐만 아니라 요양원, 보호센터, 문화센터 등 다양한 장소로 출장공연을 다니며 공연을 진행하였다.

4. 영화

1)웰컴투베가스(Welcome To Vegas)
아직 개봉하지 않았다. 홍해성 소극장의 첫 독립 장편 영화.

2)러브미텐더(Love Me Tender)
홍해성 소극장에서 두번째로 제작하게 될 장편영화.
[1] 그외에도 이 단체의 발기인들로 윤백남, 서항석, 김진섭, 이헌구, 이하윤, 장기제, 정인섭, 유치진, 조희순, 최정우, 함대훈 등 쟁쟁한 멤버들이 있었는데 전원이 1920년대 후반기 일본에서 유학했던 지식인들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