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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1-02 22:49:46

홍상삼

홍33에서 넘어옴
홍상삼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두산 베어스 등번호 47번
이원희
(2004~2007)
<colbgcolor=#ed1c24><colcolor=#fff> 홍상삼
(2008~2014)
방건우
(2015)
두산 베어스 등번호 27번
김명성
(2015~2016.8.)
홍상삼
(2016.9.4.~2016)
김강률
(2017~2024)
두산 베어스 등번호 47번
박세혁
(2016)
홍상삼
(2017~2019)
권혁
(2020)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
유승철
(2019)
홍상삼
(2020~2022)
김사윤
(2023~)
}}} ||
파일:74160_94937_5341.jpg
홍상삼
洪相三 | Hong Sang-Sam
출생 1990년 2월 13일 ([age(1990-02-13)]세)
서울특별시 구로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영일초 - 충암중 - 충암고 - (혜전대)[1]
신체 188cm, 108kg,[2] AB형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좌타[3]
프로 입단 2008년 2차 3라운드 (전체 20번, 두산)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8~2019)
KIA 타이거즈 (2020~2022)
병역 경찰 야구단
(2014년 12월 4일 ~ 2016년 9월 3일)
등장곡 Anaïs - Les Cloches De Bourgogne
에이전트 파일:에이스펙코퍼레이션.png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피칭 스타일5. 여담6. 수상7. 관련 문서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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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소속 우완 투수.

두산 베어스의 대표적인 유망주 투수였으며, 구위는 뛰어나지만 제구의 기복이 심한 투수였다.[4] 제구가 잡힌 2012~2013년엔 팀의 주축 불펜으로 활약하며 팀을 지탱하였다. 원래도 제구가 좋은 투수는 아니였지만, 2013년 준플레이오프 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입스라고 흔히 불리는 스티브 블래스 증후군을 겪고, 그 여파로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고생했다. 그 여파로 굉장히 부진하였으며, KIA 타이거즈 이적 후 반등을 이뤄내기도 하였으나 은퇴년도에 다시 재발하며 결국 이전의 모습을 되찾진 못하고 은퇴하였다.

두산 베어스의 대표적인 충암라인 중 한 명이다.[5] 이혜천의 뒤를 잇는 구위는 좋은데 제구는 좋지 않은 다른손 투수였다. 이혜천은 오른손잡이인데 좌투, 홍상삼은 왼손잡이인데 우투이다.

2. 선수 경력

홍상삼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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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통합 선수 경력: 홍상삼/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12년 2013년
2014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 ||

3. 은퇴 후

은퇴 후 별 근황이 알려지지 않다가, 2023년 5월 서울특별시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역 근처에 '육로' 라는 고깃집을 개업하면서 근황을 밝혔다.# 가족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서빙을 하거나 카운터를 보기도 한다. 리뷰에 의하면 야구팬들이 많이 방문하는지 같이 사진을 찍어주거나 싸인도 직접 해준다고 한다.
키가 커서, 낮은 테이블에서 고기 굽기는 못 하고 다른 서빙과 팬 서비스를 열심히 한다고 인터뷰했다.

2024년 혜전대학교 호텔조리학과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크보졸업생에 출연해 근황을 알렸다. #

4. 피칭 스타일

4.1.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htm_201309012163261006120.jpg
제가 홍상삼 선수를 좀 알지 않습니까. 거의 첫 타자는 쓰리볼부터 시작하고 운이 좋으면 거기서 카운트를 잡아내지만 거의 첫 타자는 볼넷으로 내보낸다, 저는 홍상삼 선수를 기용할 때, '볼넷 하나 주고 시작해...' 이런 마음으로, 그렇지 않고 보면 조급해집니다. 홍상삼 선수는 던지면서 좀 잡아가는 스타일.
김진욱[6]

평균 140km 중후반, 최고 154km/h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을 구사했다. 주로 사용한 변화구는 슬라이더. 신인 시절부터 패스트볼의 위력은 좋은 편이었다. 소포모어 징크스와 부진을 겪은 2010년, 2011년을 빼면 패스트볼의 구속, 구위만큼은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주력 변화구인 슬라이더 또한 변화폭이 크고 구위가 좋아서 상대 타자의 헛스윙을 자주 유도했다.

그러나 특유의 투구폼에 기인한 제구력의 기복이 상당히 심했다. 난공불락의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급작스럽게 장타를 연달아 얻어맞는 모습이 간혹 나왔다. 일단 2016년에는 경찰청 복무 중에 고개가 들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면서 제구력이 향상되었다.# 하지만 2016년 9월 27일 한화전에서 9회말 2사 후 등판해 아웃 카운트 하나를 못 잡고 볼질의 진수를 보여주며 역전패의 일등 공신이 되기도 했다. 투구수 22개 가운데 스트라이크를 고작 6개밖에 못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제구력과 멘탈이 여전히 문제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공이 아예 머리 한참 위로 날아간다거나 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져서 양의지를 웬만한 공은 다 잡을 수 있도록 키운 게 홍상삼이라는 말도 자주 나온다.

4.2.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홍상삼커브.gif
2020년 8월 13일 잠실 LG전에서 오지환을 삼진으로 잡아내는 홍상삼의 커브. 홍상삼답게 저 삼진 전후로 볼넷을 허용했고 ⅔이닝 1K 2볼넷 무실점을 기록했다.

KIA 이적 이후에도 플레이 스타일의 큰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큰 각으로 꺾이는 폭포수 커브를 결정구로 삼아 임팩트 있는 삼진을 잡아내며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만큼 볼넷도 많았지만 볼넷을 내 준 만큼 삼진을 잡았기 때문에 KIA 팬들은 주사위 투구법으로 이름짓고 그의 투구 내용을 즐겼다.

일반적으로 투수의 대량 실점 패턴이 볼넷을 주며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 한 방 크게 얻어맞고 무너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홍상삼은 구위와 변화구 궤적이 워낙 막강하다 보니 피안타가 적어 볼넷을 내주는 것을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고 개의치 않았다. 그 절정이었던 2020년에는 볼넷과 삼진이 거의 1:1 비율이었고, 피출루율은 4할에 육박하는데 피안타율이 고작 .188이었다.

볼넷을 내주면서도 절대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관중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한 경기를 만들어 준 덕분에 필승조까지 맡아본 적 있는 등 KIA 불펜의 든든한 한 축을 도맡았다. 이른 시기에 은퇴한 것이 아쉽게 다가오긴 하지만 큰 기대를 받지 않았던 영입 당시에 비하면 팬들의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인 투구를 보여준 덕에 은퇴 후에도 자주 이야깃거리가 된다.

5. 여담

6. 수상

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홍상삼의 수상 경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16

파일:인천일보 로고.svg
2006년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000000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최우수 선수상
박세진
(충암고등학교)
홍상삼
(충암고등학교)
강지광
(인천고등학교)

파일:퐁황.jpg 2007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파일: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jpg 2009 조아제약 프로야구대상 신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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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수 은퇴 후 입학. 호텔조리계열·조기취업형 계약학과 24학번[2] 선수 시절에는 프로필 상으로 85kg이었다.[3] 우완투수이나 왼손잡이이다. 타격은 원래대로 좌타로 친다.[4] 긁히는 날엔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그렇지 않은 날엔 볼넷을 남발하여 위기를 자초하는 모습을 보였다.[5] 두산 베어스의 충암고 출신 프랜차이즈들이 다들 똘끼로 한가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호연부터 내려오는 유서 깊은 라인으로 박명환이 그 뒤를 이었다. 이후 2010년대로 넘어와서는 홍상삼류지혁이 대표적이었다. 충암 똘끼라는 표현 자체가 유명해지면서 타구단의 충암고 출신인 선수들에게도 쓰이기도 한다.[6] 2016년 9월 15일 NC전 9회 1사에 등판하여 제구가 불안정한 것을 두고 김진욱 해설위원의 두산 감독 시절의 홍상삼을 회상하는 발언. 과연 홍상삼은 그 말대로 볼넷을 내주더니 이후엔 깔끔한 제구를 보여주며 세이브를 기록했다.[7] 이 장면은 2011년 4월 27일 9회초 2사 박한이 타석 때의 장면이다. 이날 두산은 11:0으로 깨졌다.[8] 아닌 게 아니라 두끝홈 이후 인터뷰에서 '뭐 이름 남기면 좋죠'라고 인터뷰를 했었다.[9] 참고로 이대형의 통산 홈런은 총 9개이며, 권용관의 커리어하이는 스몰샘플이긴 하지만 은퇴 시즌인 2016년의 2할 5푼이다. 그것도 꾸준히 욕만 먹어가며 대수비로만 나오면서 기록한 것.[10] 동시에 KBO 최고령 데뷔 홈런 기록까지 허용했다.[11] 홍상삼이 주자가 있어야 더 잘 던진다는 건 드립이 아니라 사실이다. 2사 이전 3루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의 통산 피OPS는 0.567, 주자 없는 상황에서의 통산 피OPS는 0.959. 3루주자가 있는 상황보다 모든 베이스가 텅 빈 상황에서의 피OPS가 눈에 띄게 더 높은 괴랄한 유형의 투수다.[12] "1=폭투, 2=볼, 3=걸치는 볼, 4=스트라이크, 5=걸치는 스트라이크, 6=삼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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