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탐화 화성 花城 | |
<colbgcolor=#a10606><colcolor=#FFFFFF> 이름 | 화성(花城) |
호칭 | 혈우탐화(血雨探花)[1] 홍의귀왕(红衣鬼王)[2] 절경귀왕(绝境鬼王) 화성주(花城主)[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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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 190cm[4] |
생일 | 양력 6월 10일[5] |
소속 | 귀계 |
성우 | 마정양[애니메이션] 진장태강[오디오드라마] 우명록[오디오드라마][유년기] 후쿠야마 쥰[애니메이션] 정주원[애니메이션] 류지아[애니메이션][유년기] 제임스 칙[애니메이션] |
배우 | 장릉혁[길성고조] 왕사요[길성고조][유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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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 영원히 당신의 가장 충실한 신도입니다. |
사대해(四大害) 중 하나인 '혈우탐화(血雨探花)'라는 호를 가진 귀왕. 동로산이라는 곳에서 다른 요괴들을 모두 죽이고 나오는 시련을 극복한 '절경귀왕(绝境鬼王)'에 해당하는 자 중 하나.
그에 관해 확실한 정보는 붉은 홍의를 입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피비린내와 함께 나타나며, 은나비가 옷자락과 소매 사이를 따라다닌다고 한다. 출신에 대해서는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 오른쪽 눈이 없는 기형아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괴롭힘을 당해 세상을 증오하게 되었다던가, 고국을 위해 전사한 소년 장병의 억울한 망혼이라거나, 은애하던 사람을 잃고 고통에 빠진 우둔한 자라는 설도 있다. 가장 괴의한 판본으로는 사실 선경에 올랐던 신관이었으나 스스로 뛰어내려 귀신으로 타락했다는 설이 있다.
- [스포일러]
- 설이라고는 하나, 내용상 전부 진실에 가깝다.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자비가 없다. 이는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자에게도 마찬가지.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련에게는 다정하고 친절하며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이고, 사련 한정으로 무조건적인 헌신을 보인다.
여러 분야에 대해 박학다식하며, 요리나 청소 같은 집안일도 잘하고 손재주도 좋아 조각[18]이나 그림도 잘 그린다. 세간에서는 이미 잊혀진 선락태자를 알고 있어서 보제관에 신상이 없는 것을 지적하고는 직접 선락태자열신도를 그려주기도 했다.[19]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상천정의 신관 서른다섯 명에게 대결을 신청해서 자신이 지면 자신의 유골을 넘기고[20][21] 신관들이 지면 천계에서 나가 평범한 인간이 되는 조건으로 일종의 캐삭빵을 걸어서 승부에 응하지 않은 두 명을 뺀 서른세 명 모두에게 이겼다. 거기다 신관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패배한 신관들의 사당을 싸그리 태워버리기까지 한 일로 악명을 떨쳐서 상천정 신관들이 아주 꺼리는 상대이다.
- [스포일러]
- 화성이 서른다섯 명의 신관들에게 대결을 신청한 이유는 과거 사련이 첫 번째 폄적 이후 힘들어 하던 시기에, 수련을 위해 영기 가득한 산을 찾았을 때 사련을 마주치고 모욕을 준 것도 모자라 자신들이 영산을 차지하겠다고 먼저 온 사련을 쫓아낸 신관들이기 때문이었다.[22] 풍신과 모정의 경우 화성을 사련이 가장 힘들어 하던 시기에 떠났기 때문이라고 추정.[23]
2. 모습
애니메이션 | |
웹툰 | 오디오 드라마 |
작중 최고 미남. 처음에는 비뚜름하게 머리를 묶은 소년(삼랑)의 모습으로 둔갑한 채 사련과 마주했지만, 화성의 본모습(본존)은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이다. 인상착의가 상당히 화려한데, 검은 생머리를 길게 풀어 내리고 옆머리에 붉은 산호주를 달아 장식했으며 이마 위에는 미인첨이, 오른쪽 눈은 안대로 가려져있다. 허리 옆에는 액명이라는 곡도를 차고 다니며 양쪽 팔엔 그의 무기 중 하나인 사령 나비가 스며드는 은제 호완을, 왼쪽 팔엔 문신이 있다. 키는 본래 190cm이지만 때에 따라 조절할 수 있는 듯하다. 초반에 등장한 소년과 같은 점은 홍의를 입었다는 것.
- [스포일러]
- 사실 그의 산호주는 홍홍아였던 어린 시절 사련에게서 훔친 것이다. 또한 왼쪽 팔의 문신은 사련의 이름인데, 사련은 화성이 워낙 악필이라 처음에는 못 알아 봤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아채게 된다.[24]
원작에서는 혈색이 없는 흰 살갗과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된다. 눈동자 색의 경우 오른눈은 적안이였으며, 왼눈은 흑안으로 애니에서는 능력을 쓸 때 붉게 변한다. 웹툰 한정으로 뾰족한 송곳니[25]도 가지고 있다.
또한 천관사복의 최고 미남이기도 하다. 작중 그의 미모를 찬양하는 묘사가 수없이 많을 뿐더러, 무명옷을 걸치고도 얼굴과 몸매가 좋아 보제 마을 어른들이 너도나도 신랑감으로 점찍을 정도이며 마을 처녀들이 수줍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만한 풍채를 지녔다. 화성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매념경마저 그의 얼굴이 낭자들이 좋아해 마지않을 얼굴이라며 사련의 안목이 나쁘지 않다고 인정하는 등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화성은 작중 초반 사련에게 만약 자신의 원래 모습이 못생겼다면 어떡할 것이냐고 물을 정도로 자신의 외모를 못생겼다고 여긴다. 이는 작가에 따르면 어렸을 적부터 못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살아 그 관념이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자신이 괜찮게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하지만, 어쨌거나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여전히 무의식적인 열등감이 있다고.
어렸을 적에는 붉은 오른눈 때문에 사람들이 무서워했고, 얻어 맞느라 상처가 많아 붕대를 감고 있었다.
3. 작중 행적
3.1. 과거
시간 순서대로 정리해 보자면 가장 먼저 정월 제천유 행사 가운데 성루에서 추락해 사련이 받아내 살려준 꼬마 홍홍아(红红儿)(10세)[26]→ 3년 후 선락태자의 사당에서 삶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사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 나를 위해 살아가렴."이라는 답을 들은 소년(약 12~13세)[27] → 온유향에 고통 받는 사련의 곁을 호위하고, 이후 사련이 이끄는 군대에서 전사한 소년 병사(少年兵士)(약 16~17세)[28] → 선락국이 망한 후 사련이 어느 불한당에서 구해준 혼령 도깨비불 중 "전하를 위해 전사한 것은 제 지고무상한 영광입니다."라고 하며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한 소년병 혼백 → 사련이 숲에서 인면역을 두려워한 백성들의 칼에 몇 번이고 찔릴 때[29] 절규하며 악귀가 된 도깨비불[30][31] → 영안국에 인면역이 퍼져[32] 사련이 괴로워할 위기에서 스스로의 영혼을 희생해 인면역을 막은[33] 망혼이자 사련의 마지막 신도 무명(无名).
일련의 내용은 대부분 사련 시점이라 화성의 속내는 직접적으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화성이 언제부터, 어째서 사련을 추종하고 연모하게 되었는지나 얼마나 열렬히, 오랫동안 그를 생각했는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묘사된다.
사련은 자신의 마지막 신도가 인면역을 막은 후 영혼째 부스러져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으나 나중에 매념경이 하는 어느 악귀 이야기[34][35]에 따르면 어느 젊은 귀신이 혼백이 산산이 부서진 상태에서 의식도 반쯤 몽롱한 채로 계속 '떠나지 않을 겁니다, 떠나지 않을 겁니다' 중얼거리며 떠돌았다고 한다.[36] 그러다 동로산이 열려 악귀와 인간들이 요괴들에게 먹힐 위기에 빠지자, 갑자기 미쳐 날뛰더니 스스로 제 오른눈을 파내서 무기(곡도 액명)를 제련하여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한다.[37] 이후 동로산에서 끝까지 살아 남아 빠져나온 후 절경 귀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련은 작품 중반까지도 과거에 화성과 만난 일이 있는 줄 몰랐다가 그가 성루에서 떨어진 꼬마(홍홍아)였던 것은 동로산에 화성이 그려둔 벽화를 보고 알게 되었고, 인면역을 막고 부스러진 망혼[38][39]이었다는 것은 그보다 더 지난 후, 작품 후반부에 와서야 화성으로부터 알게 된다.
참고로 원작에서는 과거편 회상이 시작된 뒤에야 화성과 사련이 과거에 인연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애니메이션에서는 1기 1화 후반부에서 성루에서 떨어진 꼬마=어느 소년 병사=화성임을 대놓고 암시하는 연출을 넣었다.
3.2. 현재
여군산 사건 때 신부 가마에 홀로 남겨진 사련을 인도했고, 도중에 선희의 결계를 깨부수고 피비를 우산으로 막아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다. 사련이 명광전에 도착한 뒤 그를 붙잡으려 하자 홀연히 사라진다.이후 사련이 고물을 주우러 다니던 길에 얻어 탄 소달구지에서 소년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다. 사련에게 가출한 몸이라고 둘러대고[40] 자신을 삼랑(三郞)[41]이라 불러달라고 소개한 후 사련을 형(哥哥)이라고 부르게 된다. 갈 곳이 없다는 빌미로 사련을 따라가서 보제관에서 신세를 지게 된다.
반월국 사건 때 사련이 그의 정체를 맞추자 긍정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에 사련에게 예쁜 반지 하나를 남기고 사라졌다가, 사청현과 함께 귀시장에 수색을 나간 사련과 재회한다. 그는 귀시장의 주인이기도 해서 귀시장에서 사련이 자유롭게 활동하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로도 사련을 물심양면으로 돕고 헌신하면서 조금씩 연심
작품 후반부에서는 군오에 의해 감금당한 사련
4. 여담
- 화성이 사련에게 불러달라고 한 이름인 '삼랑(三郎)'은 직역하면 '셋째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왜 굳이 셋째인지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다. 실제로 셋째 아들이었을 수도 있고, 사련에게 세 번 바친 목숨이자[46], 사련이 제천유 행사에서 세 바퀴를 돌았을 무렵 성루에서 떨어졌기 때문일수도 있다. 혹은 천관사복이 묵향동후 작가의 세 번째 소설이라서 라는 추측도 있다.
- 어렸을 적 자살을 결심하고 제천유 의식을 망치기로 한 그는 뛰어내리기 위해 성루에 올랐는데 첫눈에 사련을 발견해 멍때리다가 자살하는 것을 잊었고, 사련에게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다가가다가 실수로 떨어졌다고 한다.
- 소년 병사 시절 온유향에게서 지금 기회를 놓치면 팔백 년이 지나도
사련을못 먹는다(...)며 유혹당했는데, 실제로 화성은 팔백 년이 지나서야 사련과 재회할 수 있었다.[47]
- 사련과 처음 재회했을 때 화성은 사련이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게 했는데, 이는 사련을 깊이 은애하고 존경했기에 혹여나 닿았다가 실수를 범할까 봐서다. 이후로도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이 들면 스스로 자신의 신을 건드리지 않는 징벌을 내렸다고 한다.
- 화성이 사련을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귀시장 귀신들은 '성주는 저희 아버지 같은 존재' → '그럼 성주의 형은 큰아버지 같은 존재'라는 기적의 논리를 펼쳐서 사련을 큰아버지라고 부르려고 했다. 사련이 할 말을 잃은 것을 본 화성이 닥치라고 하자 이후부터는 "큰아버……대인!"[48]이런 식으로 부르게 되었다.
- 화성의 통령구령은 작품 내에서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으며 이는 사련
과 군오[49]만 알고 있다. 구령을 들은 사련의 반응은 "너무 부끄럽다(...)." 이에 화성은 누가 자신을 찾는 게 싫어서 일부러 이 말로 정한 것이라고 한다.과연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이에 대해 웨이보 문답에서 작가는 그들만 아는 사실이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 작품 내내 사련을 호위하면서 혹여나 사련이 다치면 그를 지키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나 보이는데, 이는 사련의 시선으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다. 또한 자신의 어려진 모습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과거 사련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자신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나약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일을 고통스러워했기 때문인 것[대사]으로 보인다.
특히 사련이 칼에 찔리는 것을 몹시 경계하는데, 사련이 '그 많은 무기에 일일이 찔리면 다진 고기가 되어버린다'며 농담을 할 때도 안색이 심히 어두워지면서 하나도 재미없다고 한다. 백무상과의 전투에서는 사련 대신 칼에 찔리기도 한다.[대사2][52] 아무래도 과거 사련이 인면역을 두려워한 백성들의 수많은 칼에 찔렸던 일로 인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모양.
[1] '피의 비 아래에서 꽃을 찾다' 라는 의미로, 화성이 한 귀신의 소굴을 소탕하고 돌아가는 길에 피를 맞고 있는 흰 꽃을 발견하고는 피비를 우산으로 막아주었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2] 붉은 옷을 입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3] 귀시장의 귀신들에게는 이 호칭 또는 성주라고 불린다.[4] 본존일 때의 키. 첫 등장 때 위장한 소년(삼랑)은 185cm이다.[5] 음력 5월 6일[애니메이션] [오디오드라마] [오디오드라마] [유년기]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유년기] [애니메이션] [길성고조] [길성고조] [유년기] [18] 조각 실력은 훗날 만신굴에서 드러난다.[19] 다만 손재주가 좋은 것 치고는, 어마어마한 악필이다. 사련도 화성의 글씨를 거의 해독하지 못할 정도.[20] 귀신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이며, 자신의 유골를 가진 이에게 복종해야 하고 유골이 파괴되면 소멸된다.[21] 화성은 그 귀중한 유골을 사련에게 목걸이로 만들어 넘긴다. 여담으로 동로산 에피소드 때 사련이 화성에게 유골은 안전한 곳에 숨겼냐고 물었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며, 유골이 숨긴 그 곳이 사라진다면 자신도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22] 사련을 쫓아낸 대의명분은 사련이 강도짓을 저질렀다는 이유였으나 사련과 군오의 유사성을 생각하면 태자열신으로까지 불렸던 사련이 폄적당하자 다시 오르지 못하게 하기위해 방해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거나 주인없는 산에 후발주자가 집단임을 믿고 홀몸인 상대를 모욕하며 쫓아냈고 굳이 사련을 쫓아내야할 필요까진 없었기 때문.[23] 또한 모정은 화성이 소년 병사이던 시절 병영에서 내쫓았다는 이유와 여타 신관들과 함께 사련에게 산을 떠나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모정이 아니었다면 사련도 남아있겠다는 의지를 관철했겠으나 상대가 모정이였기에 사련은 큰 충격을 받고 하산할 수 밖에 없었다.[24] 이에 우스갯소리로 화성이 글씨만 잘 썼더라면 천관사복의 분량이 반으로 줄었을 것이라는 말이 있다.[25] [26] 사련의 스승의 시점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사기가 넘쳐 심상치 않은 아이였다고 한다. 동로에서 쌓였다가 흩어진 액운을 모조리 빨아들여 운수가 험악했다고 한다. 본디 부모가 존재하면 일찍 죽을 것이고 아니면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학대당할 운명이었으며 18세가 되기도 전에 요절할 운명일 정도로 험악한 탓에 사련에겐 가까이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 둘의 운수는 완전히 정반대가 되었다.[27] 사련의 눈에 열둘이나 열셋 남짓이라고 되어있다.[28] 첫 등장시 사련의 눈에는 열여섯 남짓이었으며, 이후 열여덟 살도 못 되어 죽었을 것이라고 되어있다.[29] 백무상에 의해 살인을 하면 인면역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진 상황이었다. 사련은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수백 번을 심장에 칼이 꽂히는 고통을 겪었다.[30] 사련이 죽지도 못한 채 수차례 칼에 찔리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절규하다가 급기야 불을 일으켜 사련을 찌른 사람들을 모두 태워죽였다. 결국 자기들이 살기 위해 사련을 죽였지만 그로 인해 죽음을 맞이했던 것. 여담으로 사련과의 악연이 있음에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안된다고 말한 차력사는 결국 스스로 바위에 박아 사망했다.그래도 타죽은 사람에 비해 시신은 멀쩡히 남겼다.[31] 작중에서 사련이 우스갯소리로 그 많은 무기에 일일이 찔렸다간~ 운운했을 때 화성이 전혀 재미없다고 정색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 사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화성에게는 평범한 혼령에서 악귀가 되어버릴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던 것.[32] 선락의 태자였던 사련은 자신의 나라가 망한 것으로도 모자라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결국 친구들도 전부 떠나가고 부모 역시 자결했음에도 자신은 죽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신의 나라를 무너뜨린 영안에 대해 죽은 선락 병사들의 원혼과 함께 복수를 결심하게 됐다. 그러나 몇몇 의인들을 만나게 되고 마음을 고쳐먹지만 이미 백무상은 사련을 타락시키기 위해 인면역을 퍼트리고자 했다.[33] 이로 인한 죄책감으로 사련은 군오에게 벌로 주가를 내려달라 청한다.[34] 이름은 안 나왔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대놓고 화성이다.[35] 천살고성이라하며 태생적으로 주변을 해치고 고독할 천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결국 사련과 맺어진 걸 보면 천명도 사랑은 못이겼다.[36] 염원을 이루지 못해 미련이 남은 것이다.[37] 이때 사실 등선을 하였으나 본인이 거부하고 뛰어내렸다. 자신의 유일한 신인 사련을 두 번이나 폄적시킨 상천정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악귀라고 하는데 정작 작중 내 위기에 몰렸을 때도 산 사람을 해치는 등의 악행은 저지르지도 않았다.[38] 당시 백무상이 사련의 마지막 신도가 영혼마저 부서져 완전히 사라졌다고 알려주며 조롱했기 때문에 그 영혼이 남아서 절경 귀왕이 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39]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망가져가던 사련의 정신은 완전히 돌아와 정도를 걷기로 하고 백무상과 맞서게 되었다.[40] 거짓말은 아니다. 죽기 전 인간 시절에 집을 뛰쳐나온 이래 돌아가지 않았기 때문.[41] 셋째 총각이라는 뜻으로 사람 이름은 아닌 느낌인지라 다른 이들도 삼랑이라는 호칭을 듣고 본명이 뭐냐고 묻기도 한다.[42] 중간에 태아령을 제압하기 위해서라지만 사련에게 진하게 키스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남색(男色)은 생각해 본 적도 없던 사련이 잠시 고장 나는 해프닝도 있었고, 법력을 빌려준다는 빌미로 입을 맞추어서 이후로도 그 방법으로만 법력을 빌려주곤 했다. 덧붙여 법력 빌려주는 방법은 그 외에도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목격한 다른 신관들은 기겁한다.[43] 그가 법력을 핑계로 입을 맞추었다는 사실은 훗날 매념경의 지적을 통해 드러나는데, 정곡을 찔렸는지(...) 말을 잃는다.[44] 내내 썸만 타다가 177장 만신굴의 만신, 얼굴을 드러내다 三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다.[45] 이후 외전에선 사련과 야한 짓을 해가며 15금이라 독자들은 볼 수 없으나 묘사를 보면 이미 19금적인 행위를 한 것으로 보인다.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 나도는 서책에 의하면 둘의 관계를 부부로 표현해놨다.[46] 사련이 이끄는 군대에서 전사한 소년병, 인면역을 대신 막은 무명, 마지막에 사련에게 법력을 전부 준 후 나비로 소멸한 화성.[47] 대신 만신굴 온유향 석상은 금방 짝인 화성 석상을 만나 하나가(...) 되었다.[48] 큰아버…… 사도장님![49] 물론 군오의 경우 화성이 직접적으로 알려준 것이 아니라 사련과의 통령 내용을 엿들은 것이다.[대사] "은애하는 사람이 짓밟히고 능욕당하는 모습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것. 그게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대사2] "또 내 앞에서 저 검에 찔리는 꼴을 어떻게 봐?"[52] 백무상의 말에 따르면 이미 죽은 자이기에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53] 제천유 행사에서 사련이 성루에서 떨어지던 꼬마 화성을 받아낸 날을 말한다.[54] 음력 1월 15일로, 중국에서는 원소절(元宵节)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