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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12 20:28:28

화신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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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신산업의 사기(社旗)

1. 개요2. 연혁3. 기업 정신
3.1. 사훈3.2. 사가
4. 계열사 목록5.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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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26~1980년까지 화신산업을 주축으로 존속한 기업 집단. 일제강점기에 친일반민족행위자 박흥식이 설립한 기업으로 일본군의 전쟁수행에 적극 협력한 전범기업이다.

2. 연혁

1926년 유재 박흥식 창업주가 경성부 황금정에 '선일지물'을 세운 게 기원이다. 초기에는 종이 도매업 등을 하다가 1930년에 신태화로부터 귀금속점 '화신상회'를 사들여 이듬해 법인화시켰다. 1934년에 화신연쇄점을 열었으나 이듬해 1월 화재로 전소되는 수난을 겪다가 1937년 종로통에 '화신백화점'을 열어 성업했다. 다른 한편 1935년에 대동흥업을 세우고 1939년 서우사범학교[1]를 인수했으며,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제의 침략전쟁에 적극 협조해 각종 매체에 일본군 지원입대 권유를 하기도 했고, 1941년 화신연쇄점, 화신무역, 화신지물 3개를 통합해 '화신상사'로 개편한 뒤 1944년에는 조선비행기공업을 세웠다.

1945년 8.15 해방 후 1948년에 조선우선으로부터 무역선 '앵도환'을 빌려 마카오 등으로부터 해산물 수출도 개시하고 북한과도 비공식적으로 교역코자 했으나, 1949년 반민특위 설치 후 박흥식이 구속되고 앵도환도 북한 당국에 의해 압류됐다. 1950년 6.25 전쟁 후 화신-화신상사-화신백화점 3개 법인을 '화신산업'으로 개편했고, 1953년 휴전 후 흥한방적을 세우고 1955년에는 화신백화점 근처에 신신백화점을 개점했다. 1961년 5.16 쿠데타 후 '부정축재 기업'으로 낙인찍혔으나 1962년에는 신신무역을 흥한화섬으로 재창립한 뒤, 이듬해에 송도유원지 개발을 위해 인천도시관광을 세웠다. 흥한화섬은 1966년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면 도농리에 공장을 준공했다. 그러나 경영부진으로 한국산업은행에 넘기고 1972년 화신전기, 1973년 화신쏘니 및 화신레나운, 1975년 화신타이거리싱 등을 각각 세워 재기를 꾀하려다 제1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수렁에 빠졌고, 박흥식은 재무부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채 1980년 10월에 최종 부도와 동시에 그룹은 해체되었다.

3. 기업 정신

3.1. 사훈

3.2. 사가

작사는 주요한, 작곡은 김수명이 맡았다.
종로 네거리에 봄바람 불고
화신의 큰 집속에 웃음이 핀다

안으로 화목하고 밖으로 신용
이름도 좋을시고 우리 화신

4. 계열사 목록

5. 참고 문헌



[1] 현 광신중고등학교 및 광신방송예술고등학교[2] 소니는 이후 1990년대 소니코리아를 설립, 한국에 직접 진출하게 된다.[3] 제휴처였던 일본 레나운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로 2020년 11월에 파산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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