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사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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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부여 화지산 유적 | 고성 문암리 유적 |
대한민국의 사적 제425호 | ||
부여 화지산 유적 扶餘 花枝山 遺蹟 Archaeological Site in Hwajisan Mountain, Buyeo | ||
{{{#!wiki style="margin: 0 -12px; border-right: 2px solid transparent; border-left: 2px solid transparent"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1px; margin-top: -6px; margin-bottom: -5px"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05번지 외 |
분류 |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육상유물산포지 / 역사유물 | |
면적 | 156,941㎡ | |
지정연도 | 2001년 1월 4일 | |
제작시기 | 백제시대 | |
위치 |
<colbgcolor=#008080> 발굴조사 중인 화지산 유적의 전경 |
1. 개요
부여 궁남지의 동쪽에 있는 화지산에 위치한 백제시대 유적이다. 사적 제425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2.1. 특징
백제 사비시기의 이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예전부터 현지인들 사이에선 화지산의 서쪽 기슭에는 백제의 이궁이 있었다는 전승이 내려왔다고 하며, 마침 그 부근에는 '어정'[1] 이라 불리는 유적 또한 존재한다고 한다.
<colbgcolor=#008080> 화지산 유적의 어정 |
2.2. 역사
학자들을 보통 기록에 등장하는 망해정과 망해루가 있던 곳이 바로 화지산 유적일 것이라 추정한다. 궁남지, 망해정, 망해루가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신라의 동궁과 월지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 보기도 한다.또 다른 백제왕궁, 사비성 이궁(離宮) 망해정 터, 부여 화지산 유적[해설영상]
2.3. 조사내용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수 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화지산 유적에서는 백제시대의 건물터와 돌로 만든 축대가 다수 발견되었고 능사나 미륵사와 같은 양식의 계단석도 같이 나와 이곳이 백제의 이궁지였다는 지역 전승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다.화지산 유적에서 발굴되는 백제시대 건물터들 상당수가 초석건물지라는 점과 지붕에 연화문 기와를 사용했다는 점 그리고 질서에 맞춰 건물이 배치되어 있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당시에 무척 위계 높은 건축물이 있었다는 것 자체는 확실해 보인다.
백제시대의 나무 삽이 대량으로 출토되기도 하였는데, 의도적으로 10여개의 나무삽을 포개놓고 땅에 묻어 건물의 안녕을 기원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 이후로 화지산은 조선 시대까지 지역 주민들의 묘역로 쓰였기 때문에 상당수의 무덤들이 발견되는데 이들이 이전 시대의 유구를 훼손하면서 무질서하게 만들어진 것은 안타까운 점이기도 하다.
3. 여담
현재 8차까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 미발굴부지도 많아 화지산 유적의 실체가 제대로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것으로 보인다.부여군에서는 화지산 유적의 발굴현장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사업을 진행중인데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관광 프로그램은 백제고도문화재단에서 진행중이다. #
4. 외부 링크
5. 사적 제425호
부여 궁남지(宮南池) 동쪽에 위치한 화지산(花枝山 : 해발 10∼48m인 야산)은 백제 이궁지(離宮址)인 망해정(望海亭)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서, 지난 '86년에 충남대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건물지 초석과 와편들이 다량 출토된 유적지이다.
2000. 5월부터 8월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추가 발굴조사한 결과에서도 백제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건물지, 분묘,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 및 유물(건물지5, 석곽묘11기, 토광묘<민묘>18기, 석축시설, 출토유물 50점 등)이 확인되어 이 일대가 백제시대 이후 계속적으로 거주지 또는 묘역으로 활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부여화지산일원유적 → 부여 화지산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2000. 5월부터 8월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추가 발굴조사한 결과에서도 백제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건물지, 분묘,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 및 유물(건물지5, 석곽묘11기, 토광묘<민묘>18기, 석축시설, 출토유물 50점 등)이 확인되어 이 일대가 백제시대 이후 계속적으로 거주지 또는 묘역으로 활용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부여화지산일원유적 → 부여 화지산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1] 임금이 사용하는 우물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