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dent du Tu-144 au Salon du Bourget
Accident du Tupolev Tu-144 au Bourget
Катастрофа Ту-144 под Парижем
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 1973년 6월 3일 |
유형 | 설계 결함으로 인한 공중분해 |
발생 위치 | 구생빌 |
기종 | Tu-144S |
운영사 | 아에로플로트 |
기체 등록번호 | SSSR-77102 |
출발지 | 파리 르부르제 공항 |
도착지 | |
탑승인원 | 승무원: 6명 |
사망자 | 탑승객 6명 전원 사망 지상 인원 8명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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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불과 하루 전 르부르제 국제공항에서 찍힌 사고기.
1. 개요
1973년 파리 에어쇼 도중 아에로플로트 소속 Tu-144가 곡예비행중 공중분해되며 추락한 사고.2. 전개
에어쇼 마지막날 콩코드의 비행 이후 경쟁이 붙은 Tu-144는 곡예 비행을 시작했다. Tu-144는 카나드를 펼치고 기어를 내려 접근한 뒤, 최대출력으로 상승을 했다.2000ft 까지 상승한 Tu-144는 급강하를 시작했고 이로 인해 하나 이상의 엔진이 꺼졌다. Tu-144는 카나드를 펼치고 최대출력을 내 급강하에서 빠져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카나드가 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며 좌측 주익을 덮쳤고 결국 좌측 주익 부터 공중분해되며 주택 15채를 덮쳤다. 이 사고로 탑승객 6명, 지상에서도 3명의 아이를 포함한 8명이 사망했다.
3. 사고 원인
사고기의 잔해는 An-22기에 실려 소련으로 보내졌으며 조사 결과 콩코드와 경쟁이 붙은 Tu-144는 더욱 인상깊은 비행을 원했고 엔지니어가 Tu-144의 엘러본[1]의 자동 안정기의 제한을 5°에서 10°까지 늘렸다. 이로 인해 상승을 한 Tu-144가 카나드를 접자 엘러본은 -10°로 기수를 내렸고 조종사들이 다시 카나드를 펼치자 카나드가 분해되며 좌측 주익을 치고 폭발해 공중분해 된 것으로 밝혀졌다.3.1. 프랑스 원인 제공설
한편 옆에서 콩코드의 비행 항적을 기록하던 프랑스군 소속 미라지를 피하려다 추락했다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공식 보고서에서는 두 기체가 부딪칠 가능성이 없었던 것으로 나타나있다.3.2. 부기장 실수설
부기장이 카메라를 떨어뜨렸고 이를 줍다가 잘못하고 조종간을 건드려 추락했다는 설도 있다.4. 사고 이후
사고 이후, Tu-144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영국이 파견한 스파이었던 그레빌 윈이 고의로 잘못된 콩코드 설계 도면을 가지고 왔다는 혐의로 1963년까지 루뱐카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건강악화+스파이 교환으로 석방되었다.5. 기타
27년 뒤, 구생빌에서 또 다른 초음속 여객기가 추락했다.[1] 승강타(엘리베이터)와 에일러론을 합친 조종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