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인민군의 기갑부대는 아시아권에서 어느 정도 강력한 세력이었지만,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기갑부대와는 소프트스펙, 훈련 경과, 운용 실력 등의 차이로 고전하였다.
그래도 어느정도 미군의 기갑전력을 상대로 대등한 전과를 내는것에 성공하였는데, 그 비결인 즉슨 북베트남 기갑부대는 미군 기갑부대를 직접 대결하기보다는, 이들을 유인하는 전술을 썼고, 매복해 있던 북베트남군이나 베트콩 보병이 RPG-7과 같은 보병무기로 미군의 기갑부대를 공격하여 전과를 올리는 방식으로 전투를 치렀던 것이다.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강력한 기갑전력이 상실된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이 공세를 감행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고, 이에 주력으로 사용된 59식은 대활약을 했다.
결국 59식을 앞세운 북베트남군은 사이공의 대통령궁을 함락시켰고, 남베트남 최후의 대통령 두옹반민은 북베트남군에 무조건 항복하여 베트남 전쟁을 종결시키고 통일을 이룩하게 되었다.
[1] 1975년 4월 30일에 촬영된 사진으로,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이 때 대통령 관저에는 59식 전차 390호와 소련제 T-54B 전차 843, 844호가 들어왔는데, 843번차가 선두로 들어오고 있었으나 그만 퍼져버려 390번차에게 선두를 내어주게 되었다. 현재 390호와 843호를 재현한 차량이 독립궁에 보존되어 있다. 843호는 현재 하노이에 군박물관에 보존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