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문서는 야구의 FA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축구의 FA 제도에 대한 내용은 FA 제도(축구) 문서
, e스포츠의 FA 제도에 대한 내용은 FA 제도(e스포츠) 문서
참고하십시오.[clearfix]
1. 개요
Free Agent / 자유 계약 선수 제도보류 조항이 존재하는 스포츠 리그에서 선수가 자율적으로 스포츠단과 계약할 수 있는 제도.
원래 폐쇄적인 환경으로 시작한 초창기 미국 스포츠 리그는 모두가 자유계약이었다. 리그 규정이란 게 제대로 잡혀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팀 간 이동도 돈만 있으면 자유로웠고 이 때문에 혼선도 많았다. 그래서 내셔널리그를 비롯한 프로 스포츠 리그가 단합하여 보류 조항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한 번 리그의 팀과 계약한 뒤에는 선수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팀으로 자유 이적이 불가능하다.
이는 선수의 직업선택권을 침해하는 처사이므로 점점 선수들의 저항에 부딪혔는데 결국 후술할 커트 플루드 사건을 통해 '자유계약선수제도'라는 것을 만들어 조건을 충족한 선수에 한해 제한적으로 보류 조항을 해제하여 선수에게 자유롭게 팀과 계약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고, 구단과 베테랑 선수와의 자유로운 계약 체결을 통해 구단은 전력 상승을 꾀할 수 있고 선수는 본인의 의지를 관철하면서 동시에 거액의 돈을 움켜쥘 수 있게 되어[1]서로에게 윈윈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2. 시초
FA제도 탄생의 단초를 제공했던 커트 플러드 |
1970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간의 트레이드를 통해 중심선수이던 커트 플루드가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다.[2] 이에 대해 커트 플러드는 12년 간 가족들이 살고 있는 세인트루이스에서 필라델피아로의 급격한 이전과 필리스의 노후한 홈구장[3], 인종 차별적 팬[4]을 들어 트레이드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1922년의 연방대법원 판결인 '프로야구는 독과점금지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로 선수는 트레이드를 거부할 권리가 없는 상황이었고, 커트 플러드는 이에 대해 MLB 커미셔너를 상대로 비인간적 처사라는 이유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였다. 선수노조는 이에 대해 호응하였으나 은퇴선수를 제외고면 현역선수는 불이익을 이유로 법정에서 아무도 증언하지 않았다. 연방대법원은 1972년, 1922년 판결을 재확인하면서 구단과 사무국의 승소를 선언했다. 커트 플러드는 1970년 시즌은 포기하였고[5], 1971년에 다시 트레이드 돼서 13경기에만 출전한 이후로 은퇴하였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허사가 아니었으며, 선수노조위원장인 마빈 밀러의 노력으로 캣피시 헌터, 앤디 메서스미스, 데이브 맥널리에 대한 '사이츠의 결정' 등으로 메이저리그에서 6년을 뛴 선수는 자유계약을 할 수 있다는 FA 권리가 생겨났다. 이후 MLBPA(선수노조)의 구단 및 사무국과 협상으로 현재의 FA 제도, 연봉조정 제도가 생기는 시발점이 되었다.
1998년 반독점금지법에 프로야구를 포함시키는 법이 제정됨으로서 선수의 권한은 확대되었는데 이 법은 '커트 플러드 법'으로 명명되었다.
3. KBO 리그
자세한 내용은 KBO FA제도 문서 참고하십시오.4. MLB
자세한 내용은 MLB FA제도 문서 참고하십시오.5. 일본프로야구
자세한 내용은 FA 제도(일본프로야구) 문서 참고하십시오.6. 기타
해당 용어가 스포츠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에 쓰이기도 한다. 연예인이 소속사와 계약 만료가 되었을 때 FA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떤 연예인이 연인과 공식 결별했다는 뉴스가 나면 FA가 되었다고 하기도 한다.리그 규모가 작고 발전이 느린 대만프로야구는 2016년 시즌이 끝나고 린즈성이 중신 브라더스로 이적한 게 최초의 FA 이적이라고 한다. 동 시즌에 린즈성과 같이 중신으로 이적한 정다홍이 2호 FA 이적자다. 2019년 FA까지 FA 이적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가 2023년 오프 라쿠텐 몽키스의 천쥔슈가 중신 브라더스로 이적하면서 FA 이적자가 오랜만에 나왔다. FA로 이적하는 선수들의 대우도 그렇게 썩 좋지는 않아, 린즈셩의 경우도 총액 15~16억 정도를 받았으며 가장 최근인 2023년 오프에 이적한 천쥔슈의 FA 액수 역시 3년 13억원 정도라고 한다.
7. 참고 문서
[1] 모든 팀이 영입할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가 무조건 원 소속 팀만 계약할 수 있는 선수보다 몸값이 높은 건 당연하다. KBO 리그에서 순수 비FA 선수들의 연봉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고 하더라도 10억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반면 FA 계약한 선수들은 리그 탑급이 아니더라도 10억을 넘는 경우가 많고, 탑급 선수들은 계약금 포함 연평균 연봉이 30억이 넘는 경우도 있다. FA 자격을 얻으면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선수들은 바로 연봉이 몇배로 뛰어오르는 것이다.[2] 보복이 아닌 팀 보강 차원에서 이뤄진 트레이드이기 때문에 물론 다른 선수들도 포함되었지만 본 문서에서 그것은 중요하지 않기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 베테랑스 스타디움은 1971년에 개장했다. 이전에 썼던 구장은 샤이브 파크(Shibe Park)로 1909년에 개장한 구장이었다.[4] 플러드의 트레이드 상대였던 필리스의 거포 3루수 딕 앨런부터가 필라델피아 팬들의 인종 차별적 욕설과 야유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다.[5] 9만 달러의 연봉을 받으면서 400만 달러의 소송비용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