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DY AND MAR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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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이가라시 코타(드럼), 온다 요시히토(베이스), YUKI(보컬), TAKUYA(기타) | |
장르 | J-POP, 펑크 락 |
활동 시기 | 1992년 ~ 2001년 |
1. 개요
JUDY AND MARY (약칭 주디마리, JAM) 은 1992년에서 2001년까지 활동했던 일본의 인기 펑크 락 밴드이다.2. 활동
밴드의 보컬 YUKI가 고향 홋카이도 하코다테에서 베이시스트 온다 요시히토와 우연히 만나 밴드를 결성하게 되고, 곧이어 드러머 이가라시 코타, 기타리스트 후지모토 타이지가 합류해 활동하였다.기타리스트 후지모토의 탈퇴 후, 새로운 기타리스트 TAKUYA가 가입하게 되어 알려진 멤버로 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밴드명 JUDY AND MARY의 유래는 긍정적인 JUDY와 부정적인 MARY라는 의미로 합쳐진 이름이며[1] 쾌활하거나 우울한 면을 노래하고 싶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인디 시절, 특히 후지모토 타이지 재직 시절에는 메탈의 영향이 상당히 느껴지는 하드한 펑크 록을 했다. 이후 TAKUYA의 영입 이후 90년대스러운 모던 록이나 그런지 요소가 많이 반영되고 음악도 대중적으로 변했다.[2] 반면 온다와 이가라시는 정통 펑크나 하드 록에 좀 더 가까운 음악을 원했고, YUKI의 경우 동화풍의 팝 음악을 지향했다.
이처럼 개개인간의 장르적 차이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90년대의 정서를 추구하며 당시 2차 밴드 붐의 시류를 따라 일본적이고 대중적인 음악을 시도하는 데는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밴드의 유지가 가능했다. 대형 밴드 BOØWY, GLAY 등을 프로듀스했던 'J-Rock의 대부' 사쿠마 마사히데가 프로듀스를 맡은 것도 성공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런 조합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이 바로 주디 앤 마리 특유의 '롤리타 펑크' 스타일이다. 소녀라는 이미지의 풋풋함과 변덕스러움, 신비로움 등을 록에 담아낸 이 새로운 스타일은 그 무렵까지도 남성적인 방향에서만 록 음악으로 접근하던 일본 음악계의 편견을 타파하는 중요한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시도는 의도치 않게 이후 일본의 소위 '모에계' 음악의 형성에도 공헌한다.
실제로 록 스타일이면서도 귀여움과 소녀스러움, 그리고 어린 목소리 등을 강조하는 상당수의 애니송 등에서 그들과의 유사성을 금방 찾을 수 있다. 꼭 모에계가 아니더라도, 당시 일본 10대 소녀들에게 이들, 특히 보컬 YUKI는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었으며 노래 외에도 그녀의 패션 등이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여성으로 록 음악을 하면서도 여성 그 자체(특히, 성인 여성도 아니고 소녀)의 관심사를 노래하는 YUKI의 활약은, 이후 일어나는 걸즈 밴드 붐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물론 이전에도 일본에 레베카,[3] 쇼야, PRINCESS PRINCESS, 바비 보이즈 등의 여러 여성 밴드 혹은 여성 프론트를 가진 밴드들이 있었지만 이들 음악에서 드러나는 여성성이 '쇼와 시대의 성숙한 아가씨'라는 고전적 여성상에 기반을 두고 있거나 아예 특별한 여성성을 드러내지 않았다면, 주디 앤 마리는 '헤이세이 시대의 상큼발랄한 소녀'라는 이미지를 통해 다양하고 솔직한 주제를 노래하고 색다른 매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아이콘이 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보컬 YUKI의 비중이 다른 멤버들에 비해 지나치게 커지고, 올드한 스타일의 그룹 리더 온다와 신식 음악을 지향하는 TAKUYA 사이의 음악적 대립도 점점 강해지며 그룹은 내부적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결국 YUKI의 성대 결절로 인한 휴식기를 거쳐 마지막 음반 WARP를 낸 후 이들은 해산하게 된다.
특히 YUKI는 계속해서 10대 소녀의 이미지를 연기하는 데 지쳤는지, 해산 직전의 음악에서 훨씬 성숙한 스타일을 많이 시도했고, 본인의 음악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다. 남자 멤버 간에는 음악적 성향은 갈렸지만, 해산 후에 모임을 갖거나 서로의 공연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친분을 유지한다.
해산 후 YUKI는 솔로활동을 이어가고 나머지 멤버들은 개인활동을 하거나 프로듀싱, 밴드 활동을 하고 있다. TAKUYA는 일본 록 계에서는 굉장히 알아주는 기타리스트로 이름을 날렸고, 이가라시와 온다는 그들의 밴드 ZAMZA를 결성해서 활동한다. YUKI의 경우는 상업적으로 굉장히 성공해서 도쿄 돔[4]에서 단독 콘서트를 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TAKUYA는 서브컬쳐 음악에도 참여하여, 가면라이더 W의 주제가인 W-B-X ~W Boiled Extreme~를 부르거나, 러브라이브 선샤인의 유닛인 CYaRon!의 첫 앨범 수록곡 중, ある日…永遠みたいに!, Whistle of Revolution, ドラゴンライダーズ를 작곡하였다.
JUDY AND MARY의 재결성을 원하는 팬들이 많으나, 재결성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TAKUYA는 아예 본인의 트위터에서 JUDY AND MARY 재결성의 가능성을 부정했을 정도다. 남자 멤버 3명은 충분히 재결합을 원했으나 YUKI 쪽에서 재결합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만약 재결합을 한다 하더라도 YUKI의 창법은 이전과 많이 달라진 상황이라 이전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
3. 멤버
- 보컬: YUKI (본명: 이소야 유키)
- 기타: TAKUYA (본명: 아사누마 타쿠야)
- 베이스: 온다 요시히토
- 드럼: 이가라시 코타
4. 활동내역
- 1991년 언더 활동 당시 앨범 《BE AMBITIOUS》를 발표하였지만, 기존 기타리스트 후지모토 타이지가 개인 활동을 위해 탈퇴하였다.
- 1992년 JUDY AND MARY라는 밴드명을 확정짓고 인디 활동을 했다.
- 1993년 새로운 기타리스트 TAKUYA가 가입하고 첫 번째 싱글 〈POWER OF LOVE〉로 메이저 데뷔한다.
- 1994년 첫 번째 앨범 《J.A.M》과 《ORANGE SUNSHINE》를 발표.
- 1995년 싱글 〈OVER DRIVE〉와 앨범 《MIRACLE DIVING》이 대흥행.
- 1996년 전국투어 후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
- 1997년 앨범 《THE POWER SOURCE》가 오리콘 차트 1위를 달성. 전국투어 공연 후 YUKI의 목 부상으로 인해 잠시 활동 중단.
- 1998년 앨범 《POP LIFE》를 발표 후 밴드 역사상 2번째로 NHK 홍백가합전에 출전.
- 1999년 라이브 앨범, DVD 발표 후 휴식 기간.
- 2000년 보컬 YUKI의 결혼 발표.[5] 이후 활동을 재개해 공연, 앨범 발표 등 왕성하게 활동.
- 2001년 밴드 해산 발표 후 마지막 전국투어 공연. 그리고 3월8일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밴드 해산.
5. 작품
- 작사는 유키가 맡아서 했으며 작곡의 경우 초창기에는 온다 요시히토가 했지만 후반부에 갈수록 TAKUYA의 비중이 늘었다.
5.1. 미니앨범
번호 | 발매일 | 제목 |
1st | 00.12.16 | BE AMBITIOUS |
5.2. 싱글
번호 | 발매일 | 제목 |
1st | 93.09.22 | POWER OF LOVE |
2nd | 93.11.21 | BLUE TEARS |
3rd | 94.04.21 | DAYDREAM/キケンな2人(위험한 두명) |
4th | 94.08.21 | Hello! Orange Sunshine/RADIO |
5th | 94.11.02 | Cheese "PIZZA"/クリスマス(크리스마스) |
6th | 95.01.21 | 小さな頃から(어릴적부터)/自転車(자전거) |
7th | 95.06.19 | Over Drive[6][7] |
8th | 95.10.21 | ドキドキ(두근두근) |
9th | 96.02.19 | そばかす(주근깨)[8] |
10th | 96.10.28 | クラシック(클래식) |
11th | 97.02.21 | くじら12号(고래12호) |
12th | 97.05.21 | ラブリーベイベー(러블리 베이비) |
13th | 97.10.15 | LOVER SOUL |
14th | 98.02.11 | 散歩道(산책길) |
15th | 98.04.01 | ミュージック ファイター(뮤직파이터) |
16th | 98.09.09 | イロトリドリ ノ セカイ(형형색색의 세계) |
17th | 98.11.11 | 手紙をかくよ(편지를 써요) |
18th | 00.02.23 | Brand New Wave Upper Ground[9] |
19th | 00.07.05 | ひとつだけ(단 하나) |
20th | 00.11.22 | mottö |
21th | 01.01.24 | ラッキープール(럭키 풀) |
22th | 01.03.09 | PEACE -strings version- |
5.3. 앨범
1st | 94.01.21 | J・A・M |
2nd | 94.12.01 | ORANGE SUNSHINE |
3rd | 95.12.04 | MIRACLE DIVING |
4th | 97.03.26 | THE POWER SOURCE |
5th | 98.06.24 | POP LIFE |
6th | 01.02.27 | WARP |
5.4. 베스트앨범
1st | 00.03.23 | FRESH |
2nd | 01.05.23 | The Great Escape -COMPLETE BEST- |
3rd | 06.02.08 | COMPLETE BEST ALBUM「FRESH」 |
5.5. 라이브앨범
1st | 99.03.31 | 44982 VS 1650 |
5.6. 기획반
1st | 01.09.19 | 1992 JUDY AND MARY -BE AMBITIOUS + It 's A Gaudy It 's A Gross- |
2nd | 09.03.18 | JUDY AND MARY 15th Anniversary Tribute Album |
3rd | 09.08.05 | 15th Anniversary Complete Single Box |
- 1st: 인디시절 앨범과 인디시절 라이브영상이 담긴 DVD세트 앨범
- 2nd: 데뷔 15주년 트리뷰트 앨범
- 3rd: 싱글 22장과 굿즈가 담긴 15주년 앨범 박스 세트. 한정판이다.
6. 기타
- 팝픈뮤직 초창기부터 계속 등장하는 여성캐릭터인 '쥬디'와 '마리'는 이 밴드명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하는 카더라가 있다.
- 한 시대를 대표한 밴드 치고는 싱글 성적이 대단하지는 않았다.[10] 유일한 오리콘 1위이자 밀리언셀러 싱글이 '주근깨'인 정도다. 대신 앨범 4집 POWER SOURCE가 200만장을, 이후의 앨범이 모두 100만장을 넘기는 등 앨범에서 강세를 보였다.
- 노래 가사에 '바람'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때가 많다.
- 크라잉 넛의 멤버 한경록이 가장 좋아했던 밴드로 꼽은 적이 있다. 인터뷰 등지에서 밝힌 것은 아니고, 2019 종로콜링에서 자신의 소장품 중 JUDY AND MARY의 두 번째 베스트 앨범인 The Great Escape -COMPLETE BEST-를 판매할 당시 팬에게 직접 언급한 내용.
[1] 베스트 앨범 THE GREAT ESCAPE에 JUDY와 MARY가 캐릭터화되어 표지로 등장하였다.[2] 특히 블랭키 제트 시티나 미셸 건 엘리펀트 같은 당대 일본 그런지 밴드들의 영향과, TAKUYA 특유의 기타 플레이 영향으로 모던 펑크의 영향도 드러난다.[3] 참고로 레베카는 당시 일본에 흔치 않았던 혼성 록밴드를 활성화시키는 데 공헌한 1980년대 최고의 밴드 중 하나였다. YUKI 역시 레베카의 보컬인 NOKKO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YUKI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NOKKO를 게스트로 초대했을 정도로 그녀를 많이 존경했다. 실제로 레베카의 경우 80년대에 이미 10대 소녀의 감성을 담은 가사를 곡에 채용하는 등 일본 록 씬의 감성 변화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4] 주디 앤 마리가 해산 콘서트를 도쿄 돔에서 했다.[5] 마고코로 브라더스의 YO-KING과 결혼했다.[6] 영화 철벽선생에서 학생들이 합창하는 노래로 등장한다.[7] 장난을 잘 치는 타카기 양 3의 2~3화 ED곡으로 사용되었다.[8]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의 오프닝 주제가로 유명하다. 더불어 그룹의 유일한 밀리언셀러 싱글.[9] 포카리스웨트 광고 노래로 삽입되었다.[10] 은근 일본 레전드급 밴드중에 이런밴드가 꽤 있다. LUNA SEA 라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