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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00:24:43

MELODIES

1. 개요2. 트랙리스트
2.1. SIDE A2.2. SIDE B
3. 기타

1. 개요

파일:Melodies.jpg

LP : 1983년 6월 8일 첫 발매 [1]
CD : 1983년 11월 28일 첫 발매 [2]

야마시타 타츠로의 7번째 스튜디오 앨범. 미국에 머라이어 캐리가 있다면, 일본엔 야마시타 타츠로가 있다 할 정도의 크리스마스 연금송 '크리스마스 이브(クリスマス・イブ)'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알파문[3] 이적 후 첫 앨범이며, 이때 30줄을 맞이한 야마시타로서는, 당시 일본 음악판의 흐름으로서 30줄을 넘기면 히트곡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내리막길이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장래 전망과 비전을 모색하기도 이미 글러먹은 상황이었고, 직전해 가을에 담당 디렉터인 코스기가 독립한 레코드 회사로 이적 후의 제 1탄이어서 그 회사의 임원이라는 입장상, 어느정도 실적을 냈어야 했다고 한다. 전작 두 앨범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결국에는 여기서 정점을 찍고 부침이 심한, 이바닥에서 몇년씩이나 활동할 수 있을리가 없다.는 의견이 야마시타 본인과 스태프들의 일치된 입장이었다. '앞으로 몇년 할 수 있을까, 아니 몇년 더 버텨야 할까.. 회사가 자리잡으려면, 앞으로 5~7년' 이란 이야기가 회사 스태프들 사이에 오갔으며, 이 시점에서 라이브 관객 수는 많이 모여들었지만 어디까지나 메인스트림이 될 수 없었다. 나중을 생각하면 이것도 앞으로 3년 하면 가망이 안보일거란 예측에 이르렀다. 그러면 '앞으론 내가 하고 싶은걸 할까. 아무튼 이때는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해야하나, 슈가 베이브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간단히 말하면 '유행타지 않는 음악'이 하고 싶었다. 내 안의 오타쿠스러운 소망을 실현시키고 싶었다고 해야되나, 내가 사춘기에 환타지를 갖고 있었다고 해야되나, 그런 음악을 하고 싶었다.', '앞으로 2,3년 뽑을 만큼 뽕 뽑고, 팟 하고 내려오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건 뮤지션으로서의 내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물론 난 문레코드 임원이고,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번 사람이었지만, 내가 멋대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곤 해도,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걸 하자.', '서른 살에 레코드 회사를 이적하는건 상당히 리스크가 큰 일이었다. 그래도 나로서는 83년까지 살아남은 것 자체가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꽃 한송이를 피웠다고 해야되나. 그래서 아마 앞으로 5년 정도밖에 활동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문레코드에는 제작부장이란 자리가 92년까지는 없었다. 그건 나 때문에 남겨뒀던 것이었다. 당시 예정으로서는 90년에 부도칸에서 이별 콘서트를 하고 그 뒤로는 제작부장 자리에 앉을 예정이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때, 뮤지션, 스튜디오, 매니지먼트에 이르는 레코딩을 둘러싼 환경은 몇년전 과는 아예 딴판일 정도로 개선되었다. 이 위에 뭔가 향상시킬 게 없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처음으로 가사 부분이 생각이 났다. 이때까지는 단어보다도 사운드에 무게를 뒀고, 이른바 사운드 중심의 곡들을 계속 만들고 있었다. 결코 가사를 소홀히 했단 얘기가 아니지만, 스스로가 직접 만든 음악이 원래는 영어로 불러야 할 멜로디를 가진 곡이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단어 수에 제한이 있어서 단어 선택에 답답함이 느껴져, 그 결과 소위 포크송과 가요곡이란, 단어중심의 노래에 비하면 가사가 약하단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 답답한 속에서도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 수 없을까, 직업작사가같은 작사능력은 안 갖고있어도, 자신의 단어로 노랠 만드는 것은, 앞으로 음악을 계속하는 것을 비롯해,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품에 자신의 것을 생각하는 방식, 말하자면 좌우명같은 것을, 더 투영시켜보고 싶다고 바랜 결과가, 가사를 될 수 있는 한 스스로 만드는 것을 선택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 배경에는 '나는 70년 정치적으로 안보에 민감한 시절을 10대로 보낸 세대였고, 서브컬쳐에서 나온 인간으로서, 아무래도 내 노래에 내 말로, 내 사상을 집어넣고 싶단 바램에 사로잡혔다'는 측면도 있다고 한다. 본 앨범에서는 FOR YOU의 아웃테이크 'BLUE MIDNIGHT'과 글렌 캠벨의 커버 'GUESS I'M DUMB' 이외에는 야마시타 본인의 전곡 작사로, 이 이후 작사도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이 앨범 가사의 세계관에 대해 야마시타는 '어느 쪽이든, 직업 작사가가 아니니까, 어느정도 한정된 세계[4]여도 괜찮고, 이때는 처음으로 몰아서 가사를 써서, 이렇게 된 이상 가사 테마를 중복시키자고 생각했어. 이 앨범은 MELODIES and MEMORIES 라는듯한 노스탤지어 스러운 이미지가 테마라서, 가사는 전부 실시간이 아닌, 기억이라고 해야되나 환상이라고 해야되나, 그런 걸 바탕으로 하고 있어. 내가 스스로 가사를 쓴 이상 같이 가져간 테마는, 도시인들이 갖고 있는 소외감같은거긴 한데, 그런거랑 남자의 너저분한 감성이라 해야되나, 로맨티시즘, 또는 레이 브래드버리처럼 SF같은 것을 하려고 했어.' 라고 이야기한다.

발매 후, 오리콘 첫 등장 1위를 기록하고 다음주에는 마츠다 세이코의 '유토피아'에 1위를 내주긴 했지만, 그 다음 주에 다시 1위가 되었다. 결국 본작은 전작 FOR YOU의 판매고를 뛰어넘는 판매량을 기록했고, 2013년 재발매 시 야마시타는 라이너노트에서 이 앨범의 발매 당시에는 여름같지 않고, FOR YOU같은 오픈된 느낌이 빠진, 그런 비판들도 많이 받았지만 그냥 까내리려는거 같아서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 뒤로도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앨범에서 노선변경을 한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2. 트랙리스트

2.1. SIDE A

2.2. SIDE B

3. 기타

2013년, 발매 30주년 기념으로 재발매 되었으며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CD 버전에서는 5곡의 보너스 트랙이 추가되었으며, LP 버전에서는 트랙리스트는 기존과 그대로지만,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180g 중량반으로 2장에 나눠서 발매되었다.


[1] 이후 2013년에 발매 3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되었다.[2] 이후 2013년에 발매 3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발매되었다.[3] 그간 야마시타의 디렉터였던 코스기 류조가 16명을 데리고 독립해서 알파레코드의 사장 무라이 쿠니오와, 당시 외제차 수입 딜러업체인 야나세의 회장이었던, 야나세 지로의 지원을 받아서 '알파문'이란 이름으로 세운 회사인데, 야마시타가 당시 임원 겸 소속 뮤지션으로 이적했으며, 이후 여러 변화 과정을 거쳐 워너뮤직 재팬 산하 레이블로 존재하며, 현재는 사실상 야마시타 타츠로와 타케우치 마리야 부부의 개인 레이블에 가깝다.[4] 단어선택의 폭이나 소재라던지, 가사적 스펙트럼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5] 일본코카콜라 단독스폰으로 진행된 JRN(재팬 라디오 네트워크)의 TBS를 주축으로 한 지방방송국에서 77년부터 90년대 초반까지 방송한 아마추어 뮤지션 및 밴드를 대상으로 한 프레쉬 사운드 콘테스트 방송.[6] 유튜브에 9세대 스카이라인의 CM송으로 이 노래 말고도 야마시타의 다른 노래들도 쓰였다.[7] 이전에 JAL의 오키나와 캠페인송으로 그의 다른 노래가 쓰인 적이 있다.[8] 캬아!~하는 부분인 듯.[9] 스틸리 댄의 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