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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9 16:08:04

Moon Wars


1. 개요2. 배경3. 전개
3.1. 전쟁의 계기3.2. 전쟁 초기3.3. 중기, 난민 반란3.4. 전쟁 후기와 종결

1. 개요

달 전쟁(Moon Wars)Orion's Arm 세계에서 가이아의 대추방 선언으로 인해 추방된 난민들과 달에 거주하는 셀레니언(Selenians) 원주민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The Last War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628AT년 이후인 629AT년에 발발하였고 640AT에 종전했다. 처음 2년 동안 약 1억 5천만 명의 바이온트가 사망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2. 배경

테크노칼립스로 인한 가이아의 대추방 선언으로 지구에서 쫒겨난 사람들은 로 도망쳐왔다. 달은 컴퓨터 시스템, 산업, 숙련된 인력의 파괴로 인해 막대한 양의 기술을 상실하여 피해를 입었고 기술도 한 세기 이상 후퇴했지만 시간이 지나 파괴된 산업이 회복되면서 전체적으로 희망적인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달 궤도의 시스루나(cislunar) 지역 산업이 회복되면서 난민을 어느정도 수용할 역량을 가지게 되었다. 달의 역량으로 가이아와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 했기에 대신 난민 수용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러나 궤도 및 달 산업은 난민 수용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게 발전했고 궤도와 달 식민지가 과밀화 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 문제였다. 539AT년 달 인구는 2억 3천만 명이었다. 테크노칼립스로 인한 사망자와 565~620AT년 지구로의 이민으로 인해, 621AT에는 달 인구가 1억 9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에 반해서 대추방은 19년 동안(621-640AT 기간) 약 20억~30억 명의 난민들을 달로 보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구 과잉을 불러일으켰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처우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10평방미터 이하의 좁아터진 공간에 여러명이 갇혀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로 지냈으며 불만을 표출하는 난민들에게는 가혹한 통제가 계속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자원이 난민 생활 개선과는 관계 없는 분야에 투입되었다. 반면에 셀레니언은 난민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돌아오는게 폭동범죄, 심지어 정부 전복 시도라는 것에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약기구(Treaty Org)가 629AT년에 상황을 악용하여 셀레니언의 자원과 영토를 태양계에서의 통제권 확보를 위해 빼앗으려 한 것은 덤이다.

3. 전개

3.1. 전쟁의 계기

대추방이 시행된 직후, 슈퍼튜링, 슈페리어, 하이퍼튜링 식민지 지도자들은 난민 유입이 거대한 위기가 될 것임을 인식했다. 처음에는 기존의 이민 절차를 따랐으나, 곧 이어질 대규모 유입에 대비해 식민지들은 광업, 건설, 운송을 대폭 확장하고, 정치적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안 및 선전 캠페인, 난민 노동 동원 계획 등을 추진했다. 난민들은 도착 즉시 기술에 따라 분류되고, 생존과 노동 훈련을 받은 뒤 식민지 확장에 필요한 일자리에 배치되었다. 그들은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배급과 사치품을 차등적으로 지급받았으며, 기본 배급은 유지되었지만 노동을 회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이었다. AI에 대한 공포와 자율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많은 식민지에서 난민들은 건설, 유지보수, 광산, 공장 등 인간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에 직접 투입되었다.

이러한 체계는 난민들이 점차 식민 사회에 정착하고 충성심을 가지게 하는 효과를 냈다. 자신들의 노동이 새로운 서식지와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 7년간의 산업 확장으로 초기 난민 수억 명은 점차 개선된 주거와 배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식민지가 인도적인 정책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난민을 계약직 노예로 취급하거나, 회사 상점 제도 등으로 가난과 종속을 유지시키는 착취 구조가 존재했다. 치안 유지 명목으로 감시, 기억 통제, DNI 조작, 심지어 사형까지 이용되기도 했다.

무단 거주자 문제도 심각했다. 일부 난민, 특히 백야더라 불린 집단은 허가 없이 달의 미개척지에 정착하여 자체 공동체를 세웠고, 이는 셀레니아 식민정부와 충돌을 일으켰다. 대부분 강제로 체포되어 장비를 몰수당했고, 다시 노동자로 전락했다. 또한 GAIA가 난민들에게 지급한 휘발성 물질은 달의 자원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필수품이었으나, 많은 식민지들이 이를 몰수해 난민들의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다. 난민들은 차별과 빈곤, 몰수, 과도한 감시 등에 항의했지만, 식민지 정부는 그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여 체제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차별은 셀레니안들 사이의 고정관념을 강화했으며, 난민 수용소의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은 범죄와 부패, 암시장을 확산시켰다.

AT629년경에는 시위, 파업, 농성 등 평화적 저항이 줄어들고, 식민지 당국은 치명적이지 않은 군중 통제나 투옥, 행동 교정 등으로 불만을 관리했다. 극단적인 곳에서는 사형, 부채 노예제, 식량 통제까지 시행되었다. 이러한 억압적 환경은 조약기구(Treaty Org) 같은 외부 세력에게 이용당했으며, 이들은 난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선동해 달 식민지 체제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렇게 대추방 10년 동안 달에 정착한 약 20억 명의 난민 사이에는 체계적인 불평과 저항 의식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3.2. 전쟁 초기

629AT부터 630AT까지 약 5개월간 이어진 첫 번째 달 전쟁은 조약 기구가 대규모 난민 반란을 지원하고 셀레니아의 주요 거점인 아르테미스, 웨위안, 슈미트 지역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태양열 발전소, 질량 동력기, 로터베이터, 광산 등 핵심 인프라를 장악하고 인구 중심지를 점령함으로써 셀레니아 세력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조약 기구는 셀레니아만큼 달의 경제를 장악하진 못했지만, 전쟁 경험이 풍부한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기습을 통해 신속히 승리하고 인류 전체가 복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셀레니아는 이미 이 전쟁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부 반란, 전면전, 사이버전, 특수부대 침투까지 철저히 대비했으며, 이전부터 조약 기구의 개입을 경계해왔다. 반면 조약 기구는 중립 식민지로 여겨졌던 암스트롱이나 코페르니쿠스가 셀레니아 측을 지지하거나, 친지구파로 분류된 올드린 식민지가 배신하는 상황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구군의 물자 손실은 컸고, 전사자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작전 효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초기에는 조약 기구가 유리하게 전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난민 게릴라 단체들이 연이어 붕괴하고 유혈 사태가 이어지자, 셀레니아 측은 내전을 정리한 병력을 재배치하여 조약 기구의 지상군과 수송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피폐해진 지구군은 방어선이 붕괴되고, 셀레니아군은 주요 지하 시설과 수송 통로를 되찾으며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조약 기구는 상호확증파괴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는 직접적인 대량 살상보다는, 반물질 무기를 통해 셀레니아의 핵심 인프라를 파괴하여 심리적이며 산업적인 타격을 주는 방식이었다. 조약 기구는 이렇게 하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상대의 산업 기반을 무력화하고, 자동화 전력의 사용을 억제하며, 정치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의회 기록에 따르면, 조약 기구 내부에서는 만약 반물질 무기를 직접 사용했다면 전면전이 수년간 이어지거나 상호 멸망으로 끝났을 것이라며 부분적 인프라 타격이 더 실용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테크노칼립스 이후 기술 수준이 퇴보한 달 식민지는 어느 정도 중복성과 방호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초반 전투에서 이 방어선이 일부 파괴되면서 전체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졌다. 조약 기구의 반물질 공격은 달의 산업과 교통의 인프라를 마비시켰고, 그 여파로 수많은 생명 유지 시설이 붕괴되었다. 630~631AT의 휴전 기간 동안 긴급 복구가 이뤄지기 전까지 약 1억 5천만 명의 바이온트가 사망했다. 이 중 대부분은 난민 출신이었다.

전쟁 중에도 난민 유입은 계속되었다. 각 달 기지들은 난민들의 유화적으로 관리하거나 강경하게 억압하는 방식으로 이들을 통제했다. 달 전쟁은 달을 통제하기 위한 전쟁이었지 난민을 학살하는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쟁 와중에도 난민은 계속 유입되었다.

3.3. 중기, 난민 반란

가장 성공적인 반란은 아르테미스에서 일어났다. 629 AT, 조약 기구가 보낸 10만명의 난민 호송대는 사실상 5만 명 규모의 무장 반란군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막대한 무기와 장비를 갖춘 상태였다. 이들은 수백만의 난민을 무장시켜 혁명 정부를 세웠고, 이에 맞서 코페르니쿠스, 암스트롱, 올드린, 슈미트 식민지가 연합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진압에 나섰다. 특히 올드린은 항복한 반란군에게 DNI 통제관을 몰래 투입해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등 잔혹한 조치를 취했으며, 이로 인해 셀레니안들은 그를 증오하면서도 필요악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조약 기구는 달 곳곳에서 반란을 유도하기 위해 반(反)셀레니안 밈을 퍼뜨렸다. 달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심리적 침투전의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반란은 셀레니아 보안국의 통제 범위 안에서 예측된 사건이었고, 장기적으로는 실패했다. 내부 불만을 표면화시켜 정리하는 과정이었을 뿐, 실질적인 정권 교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결국 조약 기구가 달을 장악하려던 첫 번째 시도는 수개월 만에 끝났다. 그 후 630 AT에 들어서면서 두 번째 혁명의 물결이 일어났으나, 이번에는 정치적 혁명이 아닌 생존 위기에서 비롯된 폭동이었다. 자원 부족으로 공기와 물이 끊기자 일부 워렌(지하 거주지)에서는 주민들이 서로를 공격하거나, 분노한 군중이 직접 인프라를 파괴해 수백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 시기 약 20억 명의 난민이 달의 거주지로 몰려들었고, 셀레니아와 조약 기구는 물론, 궤도 거주지 세력들까지 모두 이 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했다. 전쟁의 본질은 군사 점령이 아니라, 난민을 누가 더 많이 설득하고 흡수하느냐의 심리전으로 바뀌었다. 각 세력은 난민을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산업 기반을 재건하며, 노동력을 확보하려 했다.

3.4. 전쟁 후기와 종결

아마트 공격 이후 휴전기에 조약 기구는 막대한 민간인 희생보다 군사적 실패의 책임을 이유로 지도부가 전면 교체되었다. 기존의 The Last War 베테랑 대신 기업 대표, 거주지 지도자, 지구 아콜로지 행정관, 고급 기술 전문가들이 들어섰고, 이들은 달 전쟁을 계속하기에 적합한 구성인 동시에 사실상 하이퍼튜링의 영향 아래 있는 지도부였다. 초기 달 전쟁의 혼란과 비효율성 자체가, 지구계 하이퍼튜링들이 조약 기구를 더 직접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발판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후 약 6년 동안 달 전쟁은 총 11차례의 단기적인 소규모 분쟁으로 이어졌다. 양측 모두 629~630AT년과 같은 전면전을 피하려 했고, 조약 기구는 자원 부족으로 인해 분할 정복 전략을 택했다. 전투는 며칠 내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사이버전과 특수부대 침투가 선행되는 제한전 양상을 띠었다. 동시에 셀레니안과 테란 진영은 초지성체식 경제·외교전과 밈 전쟁을 벌였고, 630년대 대추방으로 발생한 난민 확보 경쟁은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핵심 수단이 되었다.

640 AT, 슈퍼튜링 마이크로프트의 중재로 달 전쟁은 종전하고 달 국가들이 창설되었다. 이 시점에서 셀레니안 진영은 근지구 공간의 산업과 경제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달 국가들은 전후 질서를 관리하기 위한 외교적 틀에 가까웠다. 달 식민지들은 주요 자재 공급자가 되었고, 난민 문제는 밈적 조정으로 통제되어 충성심이 셀레니안 식민지로 재편되었다.

조약 기구의 630 AT 초토화 후퇴와 아마트 공격은 난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조약 기구의 정치적 입지를 크게 약화시켰다. 반면 셀레니안들은 산업력과 자원 우위를 바탕으로 더 나은 정착 환경을 제공했고, 기업 세력 역시 조약 기구보다 달 식민지 진영을 선택했다. 그 결과 조약 기구는 생존과 자율성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달 국가 체제에 동의했다.

달 국가들은 느슨한 연합체로서 자원 분쟁을 중재하고 전면전을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를 통해 난민 재정착과 전후 복구를 가능하게 했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약한 존재로 평가되었지만, 737 AT 제노 쿠데타가 국제 분쟁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는 등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달 식민지들은 새로운 동맹 체계를 형성했고, 결국 달 국가들은 영향력을 상실해 983 AT에 최종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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