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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2 07:08:02

WNF

파일:1942 Bf 109.jpg
비너 노이슈타트 플루크초이크베르케(Wiener Neustädter Flugzeugwerke GmbH)

1. 소개

오스트리아의 수도 에서 남쪽으로 50 km 떨어진 인구 2만(2018년 기준 44,800명)의 소도시 비너 노이슈타트(Wiener Neustadt)에 세워진 항공기 생산회사인 WNF1935년에 오스트리아의 국영 항공창으로 설립된 업체였다. 처음에는 비너 노이슈타트 공항 운영주식회사(Wiener Neustädter Flughafenbetriebs GmbH)로 세워졌으나 1938년 3월 12일에 나치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병합시킨 이후 이 업체에 눈독을 들이게 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오스트리아를 통째로 오스트마르크(Ostmark)라고 이름붙여 집어 삼킨 나치는 이 회사를 자국의 베를린 항공법인(Berliner Luftfahrtkontor GmbH) 산하로 포함시켰고, 곧바로 제국 항공성의 관할 아래 두게 된다. 이후 WNF로 불리게 된 공장은 군용기 증산에 힘을 쏟고 있던 나치 정부에 의해서 아낌없이 확장되었다.

이 정책의 일환으로, WNF는 레겐스부르크에 자리잡고 있던 메서슈미트(Messerschmitt GmbH)와 라이프치히의 에를라 공업사(Erla Maschinenwerk)와 함께 독일 공군의 표준 제식 전투기로 채택된 Bf 109의 주요 공급 업체가 되었다. 생산 라인이 크게 확장된 WNF는 1939년부터 Bf 109E를 쏟아내기 시작했고, 이 기체들 중 대다수는 후에 벌어진 2차 대전에서 서유럽을 휩쓸게 된다.

1945년독일이 패전을 맞아 오스트리아 병합이 해체될 때까지 이 공장은 8,545대의 전투기를 수많은 버전으로 생산했으며, 이는 33,000대가 만들어진 Bf 109 전체 생산수의 1/4에 해당된다. 또한 Ju 88 폭격기도 수 백대가 이곳에서 만들어졌고, 임무중 부서진 하인켈 폭격기들이 수리를 받았다. 전성기 시절 이 공장에서는 15,000명 이상의 근로자가 비행기 조립작업에 매달려 있었고, 독일 본토와 점령지 각국에서 끌려온 수 만명의 유태인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되었다.

2. 설립 초기의 역사

비너 노이슈타트는 오스트리아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대량 생산한 곳이었다. 1차 대전이 터지기 직전인 1915년에 오스트리아 항공기 공장(Oesterreichische Flugzeugfabrik AG : Oeffag)로 처음 세워진 이 회사는 1918년에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알바트로스 전투기 같은 군용기를 만들며 운영되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연합군이 오스트리아 정부를 통해 항공기 생산을 중지할 것을 명령하자, 이 회사는 생산품종을 자동차로 바꿔 오스트로 다임러(Austro Daimler)를 위한 차체를 만들기도 했다. 1928년에 오에파그는 오스트로 다임러와 모터사이클을 만들던 푸흐 베르켄(Puch-Werken)을 합병하여 오스트로 다임러-푸흐베르케 주식회사(Austro-Daimler-Puchwerke A.G.)를 형성했다. 이들은 1934년부터 동종 업체인 마그나 슈타이어(Steyr-Werke AG)까지 산하에 두고 슈타이어-다임러-푸흐 AG(Steyr-Daimler-Puch AG)란 자동차 회사로 거듭났으며, 같은 해에 항공기를 만들던 비너 노이슈타트 공장은 폐쇄했다.

3. 두 명의 수퍼 에이스가 세운 항공기 회사

항공기 회사인 비너 노이슈타트 공항 운영주식회사(Wiener Neustädter Flughafenbetriebs GmbH)는 1차 대전에서 전투조종사로 복무하며 32대의 적기를 떨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고의 에이스가 된 율리우스 아리기(Julius Arigi : 1895~1981)와 마찬가지로 28대를 격추한 영웅 벤노 피알라 폰 페른브루크(Benno Fiala von Fernbrugg : 1890~1964)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설립되었다. 이 회사는 슈타이어-다임러-푸흐 사로부터 비너 슈트라세(Wienerstraße)에 버려져 있던 오에파그 공장을 인수했다. 여기에 헝가리 출신의 항공기 설계자인 람피치 아르파드(Lampich Arpad : 1898~1956)가 합세했고 공학을 전공했던 조종사 줄리어스 아리기는 기술이사로 활동하며 운영해나갔다. 항공 기술자 에리히 마인틀(Erich Meindl)은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 보고 회사에 합류하여 설계주임 겸 경영진으로 앉혀졌다. 이들이 처음에 만들어낸 비행기들은 어디까지나 민간 스포츠용의 작은 경비행기였다.
Lampich L 9 (85마력) / NL XXI (95마력) / NL XXII (150마력)
Bànhidi Gerle 16 (100마력) / Gerle 17 (100마력), Gerle 18 (125마력)
Meindl/van Nees "Kadett" A VIIb (95마력)
RWD-13S (폴란드에서 응급 환자를 실어나르는 앰뷸런스기로 운용)

당시만 해도 민간기와 군용기의 구분이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던 탓에 WNF가 만든 기체들은 오스트리아 육군에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