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모에 미러 (일반/어두운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8:47:01

강만선

<colbgcolor=#0047a0> 출생 1872년
경기도 안성시
사망 몰년 미상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지도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만년은 1872년경기도 안성시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1907년 7월 서울에서 동우회(同友會)에 가입해 회장 윤이병(尹履炳) 등이 주도한 고종의 양위와 한일신협약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 윤이병은 7월 19일 종로에서 남대문 정거장으로 가서 고종의 일본행을 저지하자고 대중 연설을 한 후, 군중을 이끌고 덕수궁 대한문포덕문 앞에서 시위를 전개했다. 경관들이 이를 저지하자, 군중들은 돌을 던지며 저항했다.

얼마 후 고종의 일본행은 와전된 것이었지만 양위는 사실로 확인되자, 동우회원들은 다시 회관에 모여 고종의 양위를 반대하는 모임을 이튿날 갖기로 결의했다. 7월 20일, 동우회원 및 민중 수천명이 석고단 앞에 모여 고종 양위 반대 시위를 전개하다가 매국 대신들을 공격하기로 결의하고 결사대를 조직해 서소문 밖 이완용의 집으로 몰려가 방화, 소각했다. 그러나 일본군이 투입되어 이들을 해산시키고 주모자들을 체포했다.

이때 강만선도 체포되었고 1907년 12월 29일 평리원에서 내란 혐의로 유배형 10년을 선고받고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지도로 유배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언제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강만선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