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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08:28:18

강붕해

<colbgcolor=#0047a0> 출생 1915년 1월 23일
전라남도 제주군 중문면 서귀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
사망 2006년 1월 9일
제주도 서귀포시
이명 강성건(姜成健)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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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강붕해는 1915년 1월 23일 전라남도 제주군 중문면 서귀리(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귀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톨릭 신자로, 1938년 겨울 서귀포 천주교회의 아일랜드인 선교사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신부에게 "대정면 모슬포의 해군 비행장에서 비행기가 발진하여 중국상하이, 난징 방면을 도양폭격(渡洋爆擊)하고 있는데, 아마도 비행장 지하실에 폭탄을 저장해 두고 있는 모양이다”라고 말해 군사시설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또한 1939년 9월경에도 라이언 신부에게 "중국군 비행기가 전라남도 목포에 폭격하러 왔다가 일본 해군기에 의해 격추되었다"고 말했고, 1941년 9월 경에는 "중국에 출정하고 있는 일본군은 숫자가 적고, 오히려 다수의 군대는 소련영국, 미국과 일전을 벌이려고 대기 중이다"라라는 말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발언이 외부에 유출되자, 일제는 1941년 말에 그와 라이언 신부 등을 체포해 모진 고문을 했다. 그후 강붕해는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국방보안법 및 군기 보호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과 금고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출옥 후에는 일제의 감시를 받다가 8.15 해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후에는 서귀포시에서 가톨릭 평신도로 활동하다가 2006년 1월 9일에 선종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에 강붕해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