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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08 09:17:07

개와 토끼의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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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논란
2.1. 개 도축 논란
3. 등장 인물 및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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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트로놈을 연재했던 이원진 작가가 그린 다음 만화속세상의 웹툰이다. 매주 화요일 연재이며, 2014년 11월을 끝으로 완결했다. 보는 곳

다음 만화속세상 전체를 통틀어 여러 가지 의미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일단은 작가(주인)와 작가가 키우는 개와 토끼에 관한 일상툰이다. 이원진 작가의 미묘하게 대충 그린 듯한 그림체가 내용과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는 평이 있다.

다른 애완동물 관련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애완동물이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반면에 아 물론 우리집 새새끼는 예외, 이원진 작가는 소소한 일상 말고도 애완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문제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의견을 풀어내고 있다.

2. 논란

개와 토끼의 주인에서 다루는 주제가 애초에 찬반 논란이 벌어지기 딱 좋은 소재이긴 하나, 정작 대부분의 논란은 순수한 의견차 때문이 아닌 작가의 인성 문제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토종고양이 논란, 개 도축 논란, 그 외 이런저런 소소한 논란 등에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작가의 문제는 이하와 같다.

사실 작가의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이 작품이 연재되기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그러한 소란은 대개 작은 규모에서 그쳤으나, 문제는 14화와 그 특별편이었다.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집안에서 키우기는 별로인 것 같아요. 개량 한 번 거친 적 없는 순수한 고양이들이라 개량된 애들보다 야생 습성이 더 강하구요, 활동량이 많아서 말썽도 너무 잦고, 그래서 사람 친화력도 기대하기 힘들고…, 울음소리가 커서 이웃과의 소음도 걱정되고…, 격한 육식동물의 헌터본능…. 제일 큰 문제는 걔네들의 털이예요. 개량된 적이 없으니까 타고난 그대로의 털인데 엄청 빳빳하고 억세고…, 사람 피부에 자극도 세요…. 옷에 박히면 잘 빠지지도 않고 그래서 찔리면 따갑고 피부알레르기도 더 심하고….[3]

이전에도 작품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간간히 있었으나, 개와 토끼의 주인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 토종고양이 비하사건 때부터였다. 사건의 상세 경과는 토종고양이 비하사건 항목 참조. 본 사태의 요약글

이원진 작가의 웹툰 작가 인생 중 이렇게 크게까지 논란이 일어난 적은 없었다. 토종고양이 비하사건 때문에 이 작품을 알게 된 사람들도 적잖이 있을 정도. 사건 이후 한동안 개토주의 댓글창은 작품 내용과는 관계 없이 키보드 배틀의 장, 빠생까까생빠의 장이 되었다.

이런 토종고양이 논란과 같은 대규모 언쟁이 일어나면 사과하고 자숙하며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 일반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이원진 작가는 짧은 사과만을 올렸을 뿐, 자신의 문제점을 고치는 태도를 거의 보이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작가의 지식수준이 얕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사전조사나 사실확인 없이 주관적 편견을 섣불리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작가가 이러한 지식 부족을 보여준 사례는 매우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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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틀린 정보를 지적한다면 그 지적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여 틀린 부분을 빠르게 고치고, 사실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경솔하게 올린 것을 사과했다면 큰 논란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실수에 이렇게 대처했다면, 작가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대부분의 독자들이 합심하여 막아주었을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지식부족이지만, 논란을 키우는 가장 큰 원인은 작가의 태도였다.

명확하지 않은 정보와 얕은 지식을 근거로 한 주관적 판단을 객관적 사실인 것마냥 웹툰에 게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그것은 거짓이지 사실이 아니다."라고 지적해도, 작가는 절대 자신의 주장을 정정한 적이 없었다. 예를 들어 토종고양이 사건 등에서도 토종고양이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던 P양 당사자가 "내가 했던 저 말은 토종고양이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했던 말이었다. 내가 한 말은 틀렸다."라고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토종고양이가 품종묘보다 털이 억세다는 등의 주장을 끝끝내 꺾지 않았다.

계속해서 의견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것 역시 문제다. 직설적으로 말하더라도 정도를 지켜 의견만을 비판하며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면 그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의견 비판을 넘어 사람을 비하하면 그것은 비판이 아닌 비난이 되고, 그것은 주장의 옳고 그름 이전에 예의의 문제가 된다. 독자들은 계속해서 작가의 무례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다.

작가는 공개적인 장소(토종고양이 특별편 등)나 SNS등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수 차례 싸잡아 비하한 바 있다. 일부 예의를 지키지 않은 악플러들이야 그렇다 쳐도, 이것은 자신에게 예의를 갖춰 비판한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짓이다. 어떤 무개념 빠들은 일부 사람들이 작가를 먼저 격하게 비난했으니 작가가 그렇게 말할 만도 하다고 하지만, 애초에 논란의 흐름을 잘 살펴보면 정작 먼저 사람들을 공격한 것은 거의 대부분 작가였지 독자가 아니었다. 일부 광빠들은 작가가 먼저(?) 무고하게(?) 비난을 받았으니 작가가 비난에 비난으로 대응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나, 이 논리대로라면 먼저 작가가 애꿎은 사람을 비난했으니 독자들이 작가를 비난하는 것도 정당한 일이 될 것이다. 거기다 애초에 개 도축 논란이 있던 93화 등에서는 작가를 무례하게 비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했으며, 간혹 욕설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김없이 비추천이 수십 개씩 달리곤 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도 작가는 독자들이 수도 없이 지적한 '개를 비인도적으로 도축하는 것은 괴담이다'라는 주장이 틀렸다고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작가가 주장하고자 하는 논지 자체도 사실 이견의 여지가 많다.

고양이 발톱 수술 편에서 작가는 애완동물과 사람은 같이 살기 위해 서로 양보해야 한다라는 말을 하면서 개의 성대수술, 고양이의 발톱수술은 같이 살기 위해 동물이 양보해야할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박하는 측의 주장은 이러하다 : 애초에 같이 사는 것을 결정한 건 인간이며, 애완동물은 같이 살고 살지 않는 것에 대한 결정권 자체가 없다. 또한 양보라고 하는데, 양보를 하고 하지 않고 여부 역시 애완동물에게는 결정권 자체가 없다. 동물 자신에게 결정권이 없는데 그게 어떻게 '양보'가 될 수 있으며, 애초에 동물 자신이 자신과 함께 살며 먹고 재워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기는 한가? 이것은 예를 들자면 대학교에서 부탁도 한 적이 없는데 반강제로 밥을 사줘놓고는, 내가 밥을 사주는 양보를 했으니 너도 내 과제를 해줘야 하는 양보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웹툰의 내용을 보면 기본적으로 "인간이 동물을 키워주는 것만으로도,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만으로도 동물은 감사해야 한다. 동물의 성대나 발톱을 인간의 편의를 위해 적출하거나 비좁은 공간에서 한평생 갇혀살게 된다고 해도, 그것은 음식과 잠자리와 편안한 삶에 대한 대가이니 애완동물들은 인간이 감수하는 부분 만큼 인간과의 공생을 위하여 감수해야 한다" "자유로운 대신 생명이 위태로운 야생에서 사는 것보다는 먹고 자는 것이 보장된 대신 부자유한 삶이 낫다. 애완동물들은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삶에 만족할 것이다"라는 가치관이 눈에 밟히는 곳이 많다. 이에 대해 너무나도 지독하게 인간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가치관이 아니냐고 불편해하는 의견, '이미 사람이 없으면 야생에서 살아가지 못하게 된 동물들일지라도, 가능하면 사람의 영역 안에서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수술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배려해야 하지 않은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의견이 있다.

댓글창은 정당하게 비판하는 사람, 비판과 비난을 섞어서 하는 사람, 아무 논리 없이 비난하는 사람, 아무 논리 없이 무조건 옹호하는 사람 등이 꾸준하게 언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나 최근 6월 18일자 화에서 독단적인 의견 개진의 행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쉽게 말해 '야생 생태계의 생물에게 공중에서 먹이를 분사하는 행위를 이해못하는 월남인'을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기르겠다는데 그걸 욕하는건 이상한거다'라고 주장을 하고 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첫째 이 작가는 논리보다는 감성을 파는(dig) 일상툰이라 그런지 '멸종 위기 직전인 야생생태계 보존을 위한 자원'과 '넘쳐나는 도시권 동물'을 순식간에 같은 문제로 끌어왔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이 둘은 같은 선에 놓일 수 없다. 전자는 생태계 보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면 후자는 행해지지 않아도 해당 동물들이 멸종하거나 하지 않는다. 물론 두 종류의 생명에 값어치를 어떻게 비교하냐는 이상주의적 관점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아쉽게도 현실은 자원의 희소성이 지배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자. 즉, 이 둘은 같은 선에 놓일 수 없기 때문에 '야생 생태계에 대한 지원'이 '자신이 기르는 동물이나, 유기동물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시킬 수 없다.

둘째, 자신이 동물을 사랑하고 자원을 투입하는 일에 뭐라 하지 말라고 끄트머리에 주장하는데 이 역시 자신의 견해만 존중해달라는 아집에 불과하다. 겉으로는 자신의 자원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투입하니 욕할 것이 아니라는 견해는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하게 내버려두는 것'과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즉 아무도 누군가가 동물을 기른다고 하는 것을 강제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또 작가는 다시 한번 논리의 비약을 통해 '막을 수 없는 일이니 비난하지 말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둘은 엄연히 다른 문제이다. 가령, 우리는 기업의 부당한 사내정책에 의해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위해 기업의 행위를 '막기는 힘들지만', 그 행태를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동물에게 자원을 투입하는 사람은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댓글에서도 일부 제기 되었듯이 사회의 자원은 한정되어있고, 공동체에서 고통받는 인간 동족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 작가조차도 대한민국이라는 인간의 공동체가 개개인의 성장에 일조했음을 기억하자. 치안을 제공하였으며, 교육의 기회를 보장해주었고 생득적 권리를 명문화시켜주었다. 이런 공동체가 없었다면 지금 귀엽다고 먹이를 주는 동물들의 친족에 의해 포식되었을 종이 인간이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안정성'에 취해 다른 공동체의 동족은 포기하고 자신이 '귀여워서' '사랑하는' 동물에게 자원을 투입하는 것은 인간 공동체에 빚을 진 구성원으로서 취할 행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제적으로 막을 수 없는 행위'이다. '다만' 그 행위에는 앞서 말한 이유로 당연히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인데, 이러한 도덕적 책임을 교묘한 논리의 비약으로 회피하려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견해(이 경우 작가의 견해)가 다 존중되어서는 안된다. 견해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존중되어야 한다. 작가의 견해는 사고실험으로 보자면 사람 10명이 굶고 동물 10마리가 굶주리고 있으면 '인간 빈곤문제는 단기간에 해결이 안되니까' 8명은 살리고 나머지 2명은 죽도록 방치하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2012년 세계 사망자 중 1/3이 기아에 의한 사망이라는 점을 기억하자.)즉 동물 10마리 내외를 위해 인간 두명을 '수동적으로' 죽인다는 이야기와 동치이며, 작가의 견해는 아쉽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므로 도저히 존중받을 수가 없는 내용이다.

또한 2014년 7월 1일자는 초등학생 영재반 학생들의 토끼 생체 해부실습을 다루면서,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필수적인 것과 필수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누고, 해당 분량은 후자에 속한다며 비판을 하였다. 하지만 작가가 인정한 바와 같이 이 기준은 상당히 자의적이며, 특히 화장품을 동물에게 실험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분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일을 동물을 위해 폐기하자고 하는 것은 사실 '징징'에 가깝다.

남는 것은 영재반 초등학생에게 생체 실험이 적절한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생체실험의 중요성을 평가해보면, 현재 바이오 선진국들이 과거 인권이 정립되기 이전과 전시의 적절치 못한 인체실험으로 그 위업을 일부 달성했음을 볼 때 생체 실험은 가능만 하다면 생명과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초등학생에게 이것이 적절한가의 물음이 제기되는데 단순히 목적 의식이 없는 일반 의무교육 하의 초등학생이 아닌, 나름의 과학 분야에 비전과 의욕을 가지고(물론 학부모에 의해 등떠밀리는 아이도 있겠으나, 흔한 제도 운용의 문제로 인핸 예외라고 볼 수 있다. 영재반의 설립의도와 일치하는 아이들은 존재한다.) 참여하는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이처럼 생명과학를 초등학생의 살에 와닿게 소개할 수 있는 대안은 없다.

다만 작가의 정황 설명을 보면 어떠한 윤리적인 교육도 사전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사실이라면 생명 경시 풍조의 적나라한 예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취사 선택한 사실에 불과하며, 작가가 관찰하지 못한,(가령 프로그램의 전 커리큘럼이라던가) 혹은 의도적으로 제거한 사실이 존재한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해결된다.

이 웹툰은 작가도 문제이지만 독자들도 위험한 것이 작가의 생각을 과대해석해서 적용하고 공감한다는 점이 문제이다. 가령 이번화의 댓글에서는 앞뒤 문맥없이 '생체실험은 싫어요 ㅠㅠ' '굳이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ㅠ'식의 댓글이 넘쳐나는데, 만약 NGO나 정당(;)에 의해 이런 의견이 수렴되어 현재 대한민국 과학 교육에 적용된다면, 다 죽어가는 대한민국 이공계 교육에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즉, 대한민국 과학 교육의 피폐화와 형식화에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을 사람들이 감성에 치우쳐 의견을 내세우기만 한다면 수렴이 활발한 오늘날의 정치를 통해 좋지 않은 교육 정책을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위 내용은 동물 해부 실험을 정당화하고 있지만 초등학생이 토끼 한 번 해부해서 얼마나 대단한 과학적 진보가 이뤄질지 의문이며, 소위 과학 영재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다른 방법도 있다.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면 보다 덜 생명에게 피해가 가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댓글창은 대체로 이런 주장을 펼치며 작가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2014년 8월 26일자에서 과거 메트로놈 연재 시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의 이야기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병X이라는 욕을 사용했다. 또 악플러의 언행이 얼마나 병신 같았는지어이 없었는지를 설명하느라 해당 화의 분량 대부분을 허비했다. 웹툰에서 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문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개토주가 일상툰이라는 것. 아무리 악플러라지만 작가 본인(의 캐릭터)의 입으로 직접, 그것도 몇 년 전의 일로 독자를 향해 욕을 한 것은 아무래도 좋게 봐주기 어렵다. 해당 화의 중요 내용이 그동안 길러왔던 토끼 슈바르츠의 죽음이었기 때문에 꼭 악플러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길게 나와야했는지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 슈바르츠의 죽음 에피소드를 그리려다 보니 당시의 분했던 기분이 떠올라 감정이 격해졌을 수도 있지만, 작품의 질적인 면에서도 해당 화의 내용이 그리 적절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진다.

또한 이 메트로놈 표절논란 에피소드에서 작가는 '한 사람의 악플러가 자신에게 아무 논리 없는 비난을 펼쳤기 때문에'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SNS로 막말과 인신공격을 퍼붓게 되었다고 말한다. 작가는 예의를 지켜 자신을 비판한 독자에게까지 막말을 한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토종고양이 논란, 개 도축 논란 등등등 수많은 사건 사고에서, 작가는 이미 일부 악플러들이 자신에게 욕을 한다고 온건한 비판세력에게까지 막말을 했다가 빈축을 산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아무런 반성도 없이,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 에피소드에서 '다른 사람을 병X이라 하는 사람에게는 병X이라고 말해도 정당하다'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 한데 개 도축 논란 등에서 작가는 애꿎은 사람들을 '잘 모르는 어린애'라 하여, 비판을 넘어선 비난을 한 바가 있다. 그렇다면 작가에게서 '잘 모르는 어린애'라는 비난을 받았으니, 독자들이 작가에게 비판을 넘어선 비난과 막말을 퍼부어도 그것은 정당한 일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의 주장에 따르면, 사람을 비난하는 인간은 인격모독과 비하를 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예의를 지켜 비판을 하다가 애꿎게 막말을 들은 사람이 작가에게 막말을 퍼부어도, 또는 아무 악의 없이 작품을 보다 억울하게 작가에게 막말을 들은 사람이 작가에게 인신공격을 퍼부어도 그것은 정당한 일이 될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자폭과 다를 바가 없다.

128화에서는 이웃과의 갈등을 상담해준 지인들을 순식간에 편견 덩어리로 만들면서 리얼 미날툰을 만들고 있다.실생활이 웹툰 같은 사람

반면, 대체 어떻게 한밤중에 담타고 들어와 남의 물건을 파손하고 음식물쓰레기를 투척하며 부모 욕을 하는 일이 정당화된다는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7] 결정적으로 그 지인들은 작가가 평소에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인터넷에서 본것만 가지고 툭 던진 말이니 편견이라 볼 수도 있다.

2.1. 개 도축 논란

문제의 93화94화.

2014 2월 18일 업데이트, 93화 인식과 편견 (1)편에서 작가가 광역 어그로를 시전한다. 논란의 소지가 된 만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작가는 먼저 어렸을 때 개를 잡아먹는 걸 봤는데 뜨거운 물에 산 채로 넣어 끓이려다 개가 솥에서 뛰쳐나왔다, 그런데 주인이 이름을 부르자 화상을 입은 개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다가갔다는 이야기를 '인터넷 괴담'이라며 소개한다. 그 후 치킨을 뜯어 먹으며 지인과 작가 캐릭터가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그린다.
작가 : 날조를 하려면 고기가 도축되는 과정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인 : 그러게요.
(중략)
작가 : 살아 있는 채로 개를 끓는 솥에 넣었다간 내장에서 이 흘러나와 고약한 냄새가 밸 거고 피도 그대로... 개털도 둥>둥 떠다니겠지.
지인 : 또 있잖아요. 육질을 연하게 하기 위해 개를 산 채로 때린다네 어쩌네. 살아 있을 때 때려 봤자 사후경직 일어나면 다 똑같이 질긴걸. 이미 죽은 고기를 때려서 연하게 한다면 몰라. 도축 해 봤다는 사람이 그것도 모를까 봐?
작가 : 우리 디엔드는 말이야. 내가 이름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왜 부르는지 의도를 귀신같이 알아채거든? (중략) 개가 얼마나 영리한 녀석들인데 죽을 고비 넘기고도 주인이 이름 좀 불렀다고 다시 왔다는 게 말이 됨?
(중략)
작가 : 그런데 잘 모르는 어린애들 말고 그 헛소리를 진짜라고 믿는 사람 있긴 하나?

개를 도축한 후 산 채로 삶는 일은 작가가 헛소문이며 날조라고 비웃은 것과 달리 실제로 민간에서 종종 벌어져왔다. 다만 그건 개를 산 채로 삶는 게 목적이 아니라 개를 잡으면 털을 뽑아야 하는데 가스 토치가 없던 시절에는 탕박이라고 끓는 물에 튀겨서 털을 뽑는 게 일반적이라 그런 것이었다. 이는 털이 거의 없는 돼지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개가 움직이지 않아서 죽은 줄 알고 끓는 물에 넣었는데 아직 죽지 않아서 솥 밖으로 튀어 나오는 일이 있었던 것. 어린시절에 이를 목격한 경우 개를 산 채로 삶았다고 기억할 수 있는데 산 짐승을 끓는 물에 넣으면 안죽으려고 발광할 거라는 건 상식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발이라도 묶어서 넣지 않을까? 그런데 개는 솥에서 뛰쳐 나왔다. 그럼 발도 묶지 않고 산 개를 솥에 넣었다는 건데 대체 누가 끓는 물을 뒤집어 쓸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정신나간 짓을 하겠는가.

이렇게 매달아 잡던 방식이 전기충격으로 바뀐 건 일단 빠르고 국제적으로 문제가 돼 이제는 개를 아무데서나 매달아 잡을 수도 없고 동물을 고통스럽게 도축하는 것이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작가가 이런 걸 다 무시하고 본래 이러한 헛소문은 개고기를 먹는 데 반대하는 애견인들이 감성팔이를 위해 퍼트린 것이며, 차라리 개고기에 반대하려면 다른 방법을 쓰라고 예시를 들며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주장의 전제 자체가 틀렸다. 살아 있는 개를 물이 끓는 솥에 넣은 일이 실제로 있었던 일[8]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제대로 된 어떠한 근거도 없이 개를 산채로 삶는 모든 이야기는, 전부 다 개고기에 반대하기 위해 애견인들이 지어낸 괴담일 것이라 치부하였다.

작가는 또한 개를 몽둥이로 패 죽인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고 그런다고 정말 고기가 맛있어진다는 건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러니 개를 몽둥이로 패 죽이는 것은 괴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언제나 합리적인 결정을 하는 것은 아니며, 실제로 그 일이 비합리적이라는 것이 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근거는 전혀 될 수 없다.

사실 식당에서 쓰는 개는 거의 때려잡지 않는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럴 시간도 인력도 없다. 이건 개고기가 문제시 되지 않은 80년대 초에도 그랬다. 식당일도 빡센데 언제 개를 죽을 때까지 패고 있겠는가? 개고기는 도축장도 드물고 도축업자 역시 시간과 노동력에 한계가 있다. 정 패서 잡아달라는 주문이 있다면 니가 와서 패라고 할거다. 애초에 개를 때리는 이유가 바로 개를 목졸라 죽이기 때문인데 개가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때리면서 혼자 때리면 께름칙 하니까 고기가 연해진다며 돌아가면서 패는 거다. 다같이 하면 께름칙한 것도 털어낼 수 있으니까.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개를 때려 죽이는 사람도 있다.그러나 그런 사람은 보신탕집이 당당하게 시내 한복판에 있던 시절에도 동네에서 기피했다. 그러니 없었던 일은 절대 아니다.

작가는 개를 비인도적으로 도살하는 증거를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괴담이라고 하지만, 작가가 요구하는 증거, 즉 '개를 두들겨 패 죽이고 산 채로 삶는 동영상이나 사진을 구해오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직접 동물을 죽이고 고문하는 동영상과 사진, 즉 스너프 필름과 같은 자료를 구해오라"는 것이다. [9]
비인도적 개 도축이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동영상과 사진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굳이 직접적인 사진/동영상 자료가 아니더라도 TV동물농장 같은 공영방송에서 '황구사건' 등 폭력적 도축에 대해 여러 번 방영한 적이 있다.

그냥 자신의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된 주관적 판단을 사실인 것 처럼 올린 것만 해도 심한 논란이 일어나기 충분했을 텐데, 작가는 멀쩡한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을 '잘 모르는 어린애' 라고 비하하여 팬들마저도 돌아서게 했다. [10] 이 부분은 이견의 여지마저 없을 정도로 확실한 작가의 잘못이었기 때문에, 의외로 논란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화인 94화에서 이원진 작가는 "다소 과격한 표현이 있었던 점 사과드립니다"라는 한 문장의 사과를 올린다(정말 이것이 끝이다). 문제는 과격한 표현을 사과한다는 말만 있을 뿐, 틀린 정보를 사실이랍시고 올리고 "잘 모르는 어린애도 아니고"라는 소리가 과격한 수준을 넘어 애초에 완전히 틀린 소리였다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 사과도 없다는 점이다.

작가는 94화 도입부에서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라는 프랑스 소설에 '무서운 셰퍼드를 일부러 의식하며 키우는 건달, 안정적인 개키우는 여자 / 변덕적인 고양이키우는 여자, 개가 주류가 되는것을 못마땅해 사사건건 지기 싫어하는 고양이파 사람들'이라는 내용이 나온다며 소개한다.

이렇게나 심각한 논란이 일어난 후에 왜 하필 저런 제목의 소설을 인용하는가에 대해서는 작가의 의도가 의심스럽다고밖에 할 수 없으며, 정말 설령 아주 만약에 작가가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 해도 이런 논란이 일어난 후에 저런 제목의 소설을 인용하는 일은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이후 내용에서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나는 문학 속에서 알게 되는 시대상을 신뢰한다."면서 해당 시대의 문학책을 읽어봤는데 개의 육질이 연해지라고 때리는 장면이 안 나왔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즉 작가는 직접 그 시대를 살았던 목격자, 경험자들의 증언보다, 자신이 읽은 몇 권의 문학책의 내용이 증거로서 더 유효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작가의 이 논리대로라면 위안부가 날조라는 일본 극우 인사들의 주장도 인정해야 한다. 일제 강점기 문학 작품 중 위안부의 끔찍한 참상을 묘사한 작품도 없기 때문이다.

또한 작가는 개를 비인도적으로 도축하는 것을 보았다는 것만을 말하며 반대하는 사람들을 두고, "마치 전부가 비인도적으로 도살된다는 듯이 자신있게 말하지만, (자신이) 따지면 바로 소수라며 꼬리를 내린다" "개고기에 반대하기 위해 법적이고 유효한 합리적 절차를 거치기보다, 번거로운 방법이 귀찮아서 일부러 자극적인 소문만을 내는 저열한 수법을 쓰는 부류" 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지난 화에서도 사람들이 지적했듯 개를 비인도적으로 도축하는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 개고기에 반대하기 위해 그 목격담을 늘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한 것뿐인데, 작가는 사람들의 의도를 심각하게 곡해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다가 꼬리를 내린다는 표현은… 이 부분은 개인의 판단에 맡긴다.

작가는 2월 28일 트위터에서 "나는 유독 개에게만 행해진 잔인한 도축은 "거의 없었다"고 보고있고, 님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꽤 자주 있었던 일이다"고 믿고 싶은가 보죠. 양쪽다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라는 글을 올렸다가 3월2일 삭제했다.

참고로, 논란이 된 개 이야기는 사실 지상렬의 사연이다.

3. 등장 인물 및 동물

작가의 아버지가 가족과 상의 없이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말못하는 짐승은 굶기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면서 돌봐주시는 것이나, 고양이 먹이 에피소드[11]와, 디엔드 입양 에피소드[12] 를 보면 작가가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만들어 준 사람


[1] 예를 들어 토종 고양이는 자신이 경험한 바에 의하면(?) 품종묘보다 털이 억셌다. 그러니 토종 고양이는 개량된 고양이보다 털이 억센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식이다.[2] 파일:attachment/개와 토끼의 주인/dro2.jpg 이 그림은 토종고양이 비하사건 이후 작가가 특별편에서 웹툰에 실었던 내용이다. 감정적으로 일관하며 작가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만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긴 했으나, 작가의 주장이 편견이라고 온건하게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3] 참고로 이것은 작가의 친구인 P양이 작품 내에서 했던 발언이다.[4] 다만 출생 후 외적인 요인에 의해 유전자 발현에 영향이 생길 수는 있으며, 과거 유전학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시절 이와 같이 품종 개량을 빙자한 학대 행위가 일어났을 수는 있다.[5] 현재는 삭제되었지만 작가가 과거 미투데이에 '자기 개가 말을 듣지 않아 30분씩 두들겨 팼다, 그러자 개가 혈변을 봤다' 유의 내용을 올린 적이 있었다. 삭제된 링크 : http://me2day.net/katori31/2010/01/31[6] 개를 두들겨 패서 말을 듣게 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투견을 무조건 두들겨패서 교육시키는 것도 정당한 일이 될 것이다.[7] 현실적으로 이런 행동은 엄연히 무단 침입으로 엄연히 범죄로 이런 행동이 정당화하고 당연하게 여길일이 아니다.[8] 하지만 이는 개 뿐만 아니라 모든 가축들에게 해당되는 일이다.[9] 비밀리에 일어나서 그렇지, 비인도적으로 도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유튜브 같은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실제로 TV에서도 방송된 적이 있다. 자기가 직접 보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한다고 해서 사실이 거짓이 되진 않는다.[10] 실제로 93화 댓글창에는 '아무리 해도 이건 아니다', '이전에 논란이 있을 때도 작품을 잘 봐오던 독자였지만 이건 아니다' 라는 글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11] 애완동물 키우는 것은 해피엔딩이 아니다(애완동물의 기대수명은 사람의 기대수명에 비해 현저히 짧다는 의미)[12] 작가가 디엔드를 처음 입양했을 때 디엔드 전 주인의 부인에 의해서 학대(?)를 받아 왜소하고, 작가의 어머니 스타일을 보면 겁에 질려하였지만, 나중에는 작가보다 어머니를 좋아한다[13] 그런데, 작가는 이 녀석과 맨손으로 싸워서 이겼다! 따라하지 마세요.[14] 현재는 이미 무지개 다리를 건너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