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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연합 (개별 합류) | 민주노동당 (개별 합류) | |||
민중당 (개별 합류) |
건설국민승리21 | |
<colbgcolor=#f5f5f5,#2d2f34> 영문명 | Construction National Victory 21 |
창당일 | 1997년 8월 18일 |
해산일 | 1999년 11월 3일 |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173번지 (삼창플라자, 515호) |
대표 | 권영길, 이창복 |
정책위원장 | 김진석 |
사무총장 | 정형주 |
당 색 | 주홍색 (#FF3D00) |
정치적 스펙트럼 | 좌익 |
선행조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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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민승리21의 창당식에서 당기를 흔드는 권영길 대표 |
건설국민승리21은 1997년 창당, 1999년까지 존속한 대한민국의 진보정당으로, 약칭인 국민승리21로 잘 알려져있다. 사무실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도화동 173번지 삼창플라자 1515호에 소재했다.
이름이 비슷한 국민통합21과는 관련이 없다.[1]
2. 상세
1996년 노동법 날치기[2] 통과 이후,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정치영역에서 노동을 대표하는 세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1997년 3월 27일의 대의원대회에서 정당건설을 결의하고 NL 성향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PD 성향의 진보정치연합과 진보정당 건설에 대한 논의를 하게 된다.1997년 8월 18일 '국민승리21 추진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추진위원회에서는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을 대표로 추대하여 10월 26일 국민승리 21을 결성하고 권영길을 대선후보로 결정했다.
국민승리21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선 포스터 |
그러나 국민승리21이라는 정당명과 일어나라 코리아라는 NL냄새 물씬 나는 선거구호를 사용하는 바람에 PD 계열로부터는 비판받고, 김대중을 비판적 지지해오던 NL 계열 전국연합은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데다[3],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 중 대다수가 사표 방지 차원에서 김대중 지지로 쏠리는 바람에 결국 15대 대선 결과 1.2%를 득표하는데 그쳤다.
이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49명의 후보를 내어[4] 22명을 당선시켰으며, 1999년 11월 해산한 뒤 민주노동당으로 재창당된다.
3. 여담
정식 당명이 건설국민승리21이 된 이유는, 기호 배정에서 앞 번호를 받기 위해서였다. 국회 의석이 없는 정당 소속 후보자는 정당명의 가나다순으로 기호를 배정받기 때문.15대 대선 당시 허경영이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하였으므로, 그냥 국민승리21이라고만 할 경우 허경영 다음 기호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앞에 건설이라는 글자를 붙인 것인데, 박용진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나왔던 아이디어 중에는 가자!국민승리21
4. 역대 지도부
대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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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당 대표 민주노동당 대표 ▶ | }}}}}}}}}}}} |
5. 당가
6. 역대 선거 결과
연도 | 선거 종류 | 후보자 | 득표율 | 결과 |
1997년 | 제15대 대통령 선거 | 권영길 | 306,026표 (1.19%) | 낙선 |
7. 둘러보기
대한민국의 진보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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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정당이 노동조합의 정당이었다면, 국민통합21은 이 정당과 지지층이나 이념적으로 정반대에 있는 친기업 보수정당이었다. 다만 양쪽 다 현대자동차를 기반으로 하기에 울산광역시에 지지세가 있단 접점은 있었다.[2] 이때 국가보안법도 같이 개정되었다.[3] 당시 전국연합은 선거전 막판에 국민승리21을 이탈하여 김대중 지지로 선회했다. 이후 전국연합 상임의장이었던 이창복은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4] 정확히는 국민승리21의 지원을 받는 무소속 후보들이었다.[5] 이는 지금도 군소정당들이 앞 번호와 투표용지 윗부분을 차지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편법으로, 최근의 사례로는 가가국민참여신당의 경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