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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민주당|]] 한국사회민주당 (신설 합당) | (창당준비위원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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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사회민주당 | |
한자 명칭 | <colbgcolor=#fff,#1F2023>綠色社會民主黨 |
영문 명칭 | Green Social Democrats |
약칭 | 녹색사민당/사민당 |
창당일 | 2004년 2월 22일 |
해산일 | 2004년 4월 16일 |
통합한 정당 | [[한국사회민주당|]] |
이념 | 사회민주주의 진보주의 생태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중도좌파 |
해산 전 대표 | 장기표 |
당 색 | 연두색 (#51B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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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4년 제17대 총선 녹색사민당 비례대표 선거포스터
2. 상세
1990년대부터 한국 노동운동에서는 정치참여 문제를 두고 수많은 논쟁이 있었다. 특히 민주노총은 내부 여러 계파들 사이에서 치열한 논쟁이 오고 갔으나, 1997년 대선에서 권영길 초대 위원장이 여러 진보세력들을 결집해서 국민승리21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계기로 조직적으로 진보정당 건설에 합류하였고, 결국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의 주역이 되었다. 반면에 과거 군부독재 시절 어용노조에서 출발한 한국노총은 태생적으로 조직적인 정치참여에 부정적이었다. 이때문에 민주노총과 1996년 노동법날치기 총파업을 함께 했음에도 불구하고, 총파업 이후 권영길 위원장의 진보정당 건설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1] 대신 한국노총 위원장급 간부들이 개별적으로 보수우익 정당을 통해서 정계에 입문하곤 했다. 하지만 1997년 대선과 2000년 총선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민주노동당이 꾸준한 활동 끝에 지지율의 급상승으로 2004년 총선을 앞두고는 원내진출 전망이 가시화되었다. [2] 경쟁세력인 민주노총이 지원하는 민주노동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할게 확실시되자, 한국노총도 질 수 없다면서 정치참여를 결정하고 독자정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과거 반독재민주화운동으로 명성을 날렸지만, 번번히 제도권 정치 진입에 실패하고 있던 장기표를 영입해서 대표로 추대하고 당명을 사회민주당으로 했다가, 일부 환경운동가들이 창당했던 군소정당 녹색평화당과 합당하면서 선거직전에 녹색사회민주당이 되었다.사실상 정치참여에 무관심하다가 경쟁자인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으로 대박날 조짐이 보이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한국노총의 조직력에 과거 민주화운동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러나 지금은 제도권 정치에서 소외되 있던 장기표의 이름값의 결합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일부 환경운동가들까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합류하면서 급조했던 정당이다. 하지만 당연히 이런 시도는 먹히지 않았고, 총선에서 참패한 뒤에 다들 뿔뿔히 흩어졌다.
장기표 전 한국사회민주당 대표를 대표최고위원으로, 박창화·정해훈 전 녹색평화당 공동대표와 박영호 한신대 대학원장, 강성천 한국노총 자동차노련 위원장, 이병균 한국노총 금속노련위원장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한국노동조합총연맹의 조직과 서울 동작갑(장기표)과 울산 울주(신진규), 경기도 이천(김만재), 안산(임이자) 등 지역구 5곳과 비례대표 5석을 합쳐 총 10석 획득을 목표로 2만당원을 모았다. 기사
28명의 지역구 후보를 내고 실질적으로 지역구 1석 획득과 정당비례명부 3%가 목표였으나, 정당비례명부 0.5% 득표율로 당시 선거법과 정당법에 따라 득표수 미달로 등록 취소 되었다.[3] 기사
이후 생태주의, 신좌파계열은 녹색당을 창당하고, 사회민주당계열은 복지국가당과 합쳐서 사회민주당을 실질적으로 재창당하게 된다. 당 창당의 주역인 장기표는 이후 8년간 잠수를 타다가 국민생각을 거쳐서 정통민주당[4]으로 가버렸고, 거기서도 또 낙선하였다가 이후 미래통합당 창당에 합류하였다. 강성천 최고위원은 2008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해서 비례대표로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5], 임이자 후보는 2016년에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비례대표로 환경노동위원회로 들어가게 되었다.
3. 후보자 목록
선거구 | 후보 | 당시 경력 | 기타 |
종로구 | 양성호 | 건국대 교수 | |
| 정해훈 | 전 KBS 기자 | 불출마 |
동작구 갑 | 장기표 | 녹색사민당 대표최고위원 | |
| 박준호 | 대일수능교육 원장 | 불출마 |
사하구 갑 | 박홍렬 | 전 경향신문 기자 | |
사상구 | 김상길 | 권리찾기시민연대 대표 | |
대구 북구 갑 | 박중현 | 녹색사민당 부대변인 | |
남동구 갑 | 신맹순 | 전 인천시의회 의장 | |
| 유종극 | 전 민주당 상무위원 | 불출마 |
부평구 갑 | 김곤 | 녹색사민당 평화통일위원장 | |
부평구 을 | 석금석 | 녹색사민당 제3사무부총장 | |
계양구 갑 | 류태선 | 전국택시노조 인천본부장 | |
서구 강화군 갑 | 정종섭 | 삼양제넥스 노조위원장 | |
대덕구 | 신문휴 | 전 태아산업 노조위원장 | |
울주군 | 신진규 | 한국노총 울산본부의장 | |
수원시 영통구 | 정경식 | 경기도우슈협회 이사 | |
성남시 수정구 | 임미모 | 전국택시노조 경기동부 사무국장 | |
성남시 분당구 을 | 김태수 | 성남시 약사회 부회장 | |
의정부시 을 | 고도환 | 청명환경 고문 | |
| 송재신 | 전 일본 유학생대표자회의 한국대표 | 불출마 |
안산시 상록구 갑 | 임이자 | 대림수산 노조지부장 | [6] |
안산시 단원구 갑 | 이용호 | 안산노동교회 담임목사 | |
하남시 | 정현호 | GM대우자동차 구의영업소 대표 | |
이천시 여주군 | 김만재 | 전 현대전자 노조위원장 | |
| 박순종 | 지구당위원장 | 피선거권 없음 |
태백시 영월군 평창군 정선군 | 전제웅 | 전 한자연수원 교수 | |
청주시 상당구 | 한상관 | 충북발명진흥협회장 | |
제천시 단양군 | 김대한 | 전 국민회의 지구당위원장 | |
천안시 갑 | 곽금미 | 뉴스코어 대표 | |
전주시 완산구 갑 | 양재헌 | 전 국회부의장 보좌관 | |
여수시 갑 | 장세석 | 한국민간조사교육원 교수 | |
순천시 | 설동회 | 민주평통자문위원 | |
양산시 | 이성경 | 넥센타이어 노조위원장 | |
| 김장범 | 전 제주전문대학 RCY회장 | 불출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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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때 권영길 위원장의 주도하에 여러 노동운동, 진보운동 그룹들이 결집해서 국민승리21이 만들어졌고, 이것이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으로 이어진다.[2] 당시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두자릿수에 육박하였고, 실제 2004년 총선 비례대표에서 13%를 득표한다.[3] 2014년 헌법재판소가 이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4] 창당 당시 이름은 녹색통일당이었고, 로고도 녹색사회민주당의 것을 그대로 썼다. # 애초 녹색통일당은 그가 창당한 정당이었는데, 이후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동교동계 세력이 추가로 합류하여 이름을 바꾼 것이다.[5] 여담으로 이분이 바로 어딜 만져 동영상에서 이정희와 몸싸움을 벌인(...) 그 분이다.[6] 이후 국회의원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