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景觀
눈에 보이는 경치. 산이나 강 등 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에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까지 모두 포함하며,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다.2. 警官
경찰관의 준말.3. 京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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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춘추전국시대 기록에서부터 등장하는 시설물로, 전쟁의 승군이 패군 전사자의 시신을 쌓아 만드는 일종의 제단 겸 기념물이다. 그 위에서 승전을 알리는 제사를 올린다. 참고로 전쟁 포로의 시신을 쌓아올리는 것은 '갱'이라고 한다.
대표적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에서 승전 이후 경관을 쌓자고 신하들이 건의하자 초나라 장왕이 '저들은 그들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고, 우리가 잘 한 것도 아닌데 무슨 경관을 쌓자는 거임?'하고 반대한 적이 있다. 위의 사마의는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토벌한 다음 공손연의 근거지 양평성의 백성 중 15세 이상 남자 7천여 명을 모두 죽여 경관을 쌓았다. 등애는 촉한을 멸망시킨 이후 제갈첨을 격파한 면죽에 경관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관의 관습은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계속되었는데 명나라에서도 경관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 아이러니하게도 경관의 관습을 폐지한 것은 당시 오랑캐 취급받던 청나라였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망하게 한 뒤 명나라 군사의 시체를 땅에 묻어주었는데, 이때부터 경관의 관습이 비로소 사라졌다고 한다.
한국의 기록에는 고구려인들이 대 수나라 전쟁 승리를 기념하여 만든 기념물로 등장하는 것이 유명하다.[1] 이것은 영류왕 때 당나라 사신의 항의로 헐어버렸는데 당에게 저자세로 나가던 영류왕조차도 이를 위협적으로 받아들여 천리장성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아즈텍 제국에도 이와 유사한 인골 구조물인 '촘판틀리'가 있다. 인터넷 상에는 촘판틀리에서 13만6천여구의 해골이 발견되었다는 낭설이 퍼져있지만 이 숫자는 코르테스 원정대의 일행이었던 안드레스 데 타피아(Andrés de Tapia)가 눈대중으로 짐작한 바에서 나온 숫자고 이미 당대 기록가였던 디에고 두란(Diego Durán)부터가 13만 설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지적했다. 실제 고고학자들이 찾아낸 해골의 갯수는 현재까지 600여구 정도 된다. #[2]
4. 頸管
자궁 구멍에서 내자궁구에 이르는 부분. 자궁경관, 자궁목관이라고도 한다.5. 扃關
문을 닫고 가로질러 잠그는 막대기.[1]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석탑의 모습으로 등장한다.[2] 인터넷에 퍼진 아즈텍의 인신공희에 대한 많은 부분은 고고학적 실증이 아닌 스페인의 기록을 참조하기에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토리비오 데 베나벤테(Toribio de Benavente) 수사와 디에고 두란은 1487년 대신전의 증축공사 기념으로 3~4일간 진행된 축제 때만 8만 4백 명이 희생되었다고 기록했는데, 아즈텍의 희생방식(1명의 희생자에 5명의 사제가 동원되었다)과 희생도구(철기가 없었으므로 돌로 만든 칼을 사용하였다)를 고려할 때 단일 축제에서 8만 4백 명을 희생시켰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므로 적어도 이 경우 연대기 기록이 과장되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고고학적으로는 1978년부터 2007년까지 진행된 이 신전을 포함한 13개 건물 주위의 발굴에서 오직 126구의 유골만이 출토되었다. 출처:Park, Byong Kyu (2013), Tendencias recientes en los estudios del sacrificio humano de los aztecas, The Korean Journal of Hispanic Studies, 6(2), 249-2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