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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8 08:00:21

경험


1. 개요2. 경험은 중요하지만 만능은 아니다3. 관련 문서

1. 개요

경험(經驗) 「명사」
「1」자신이 실제로 해 보거나 겪어 봄. 또는 거기서 얻은 지식이나 기능.
「2」『철학』객관적 대상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 작용에 의하여 깨닫게 되는 내용. -국립국어원
주로 1번의 의미로 많이 쓰이며, 쉽게 말하자면 개인이 기억할 수 있는 과거 전부를 뜻한다. 즉 이런 '삶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갈 때 판단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또한 개인별로 겪어온 과정이 전부 다르기 때문에 자신에게 없는 경험도 존재하며, 그렇기에 남의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이를 뜻하는 사자성어로 타산지석, 반면교사가 있다. 영어로 'undergo'는 어떤 것을 겪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일본어로는 経験(けいけん)이라고 한다.

2. 경험은 중요하지만 만능은 아니다

"A mule, though he should have made ten campaigns under prince Eugene, would not have improved in his tactics."
"어떤 노새가 오이겐 공 밑에서 전투를 열 번이나 참가했다 한들, 전술 능력을 함양하지는 못했을 걸세."
프리드리히 대왕의 어록으로 전해지는 경구.[1] '노새'는 사유 능력과 이론적 지식을 갖추지 못한 채 경험만 많이 쌓은 이들을 빗댄 단어이다.

경험은 개인의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는다면 변질된다. 또한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경험만이 무조건 옳다고 고집부려 싸움을 일으키는 경우도 잦다. 예를 들어, 이를 바탕으로 남의 우위에 서려고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을 팔아, 돈을 벌어, 먹고 살기 위해 지식을 뻥튀기하거나 날조하는 행위를 들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뜻이 달라 한 사람이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어, 열 사람이 있다면 열 가지 뜻, 백 명이 있다면 백 가지 뜻, 천 명이 있다면 천 가지 뜻이 있게 될 것이며, 사람의 수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되면 곧 그 이른바 뜻이라는 것도 역시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두 자기의 뜻은 옳다 하고 남의 뜻은 그르다고 하게 된다. 그러므로 심한 자는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심하지 않은 자도 다투는 일이 흔하게 된다.
― 《묵자》 상동편

이러한 단점 때문에 개인적인 경험을 위키위키에 적는 행위는 독자연구로 변질될 우려가 높아서, 거의 다 등재 거부 대상이 된다. 예외라면, 유명 인사가 기자 상대로 인터뷰를 하거나 기자회견 등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언밖에 없다. 이쪽은 매스미디어를 통해 기록이 변질되지 않고 오래도록 정확하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서 내에 출처를 제시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경험이 많을수록 다양한 상황을 겪어봤을 확률이 높고 경력이 길수록 그 긴 기간 동안 여러 변화를 접해봤을 확률이 더 높으니, 경력이 길고 경험이 많은 베테랑들이 오히려 훨씬 돌발 상황이나 시대적 변화에 능숙하게 대처할 뿐만 아니라, 변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경우도 많고, 반면에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돌발상황이나 변화를 겪은 적이 없거나 적을 가능성이 높으니 오히려 더 경직된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혹은 말은 그럴싸하지만 현실적인 한계나 변수는 고려하지 못한 공염불을 대안이라고 내놓기도 한다.

다만 오히려 경험의 양이 많을수록 경험에 집착하기도 쉬워지고, 그에 따라 지식을 철저히 배제한 채 해당 경험만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수 있다. 단편적인 경험만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관점의 다양성을 배척하고 경험을 강요하는 태도로 이어지면, 그 경험이 충분히 다각도로 고려되지 않은 단편적 경험이거나 혹은 시대가 변하여 경험의 가치가 퇴색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2] 경험이 적은 사람은 도리어 고정관념이 적고 자유롭게 생각하다보니 이런 면에서는 의외로 창의적인 방안을 내놓기도 한다.

경험주의는 경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고 또 판단한다. 물론 현대 과학이나 인문학에도 실험이나 유물, 표본조사로 대표되는 경험적 자료를 가장 상등의 가치로 두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기는 한다. 그러나 경험에 의한 방법은 100% 완벽한 필연성을 지니지 못하여, 즉 언제나 예외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긴다. 풍부한 예를 통해 개연성을 최대한 높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필연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인간의 감각 능력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표면적인 현상 역시 잘못 관찰될 수 있다.

이와 같이 경험주의는 어느정도 한계를 지니기 때문에 그 보완책이 필요하며, 그 보완책으로 이성에 의한 합리적인 사유 과정이 있다. 경험은 현상을 파악할 수 있지만 본질을 꿰뚫어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고, 이성은 본질을 간파하지만 그 본질을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적용해야 올바른지에 대한 유연한 판단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즉 경험주의의 한계는 이성에 근거한 사고에 의하여 보완될 수 있다. 이성과 경험이 조화를 이루어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예는 역사 속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경험과 이성적 사고는 누가 더 우월하고 열등한지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둘 다 추구하여 서로 보완시켜나가야 할 문제인 것이다.

3. 관련 문서


[1] 다만 1789년에 등장한 최초의 판본에 따르자면 대왕이 프랑스군의 샤를 루이 오귀스트 푸케 원수에게 보낸 편지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다른 판본들에서는 모리스 드 삭스 원수의 어록이라고도 한다.[2] 개인이라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이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도 있다.